brunch

내 가족을 이방인 처럼 대할 수 있을까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묵상에세이《그러므로 생각하라》

by 최서영

기도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어떤 기도는 오래 걸리고, 어떤 기도는 끝내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요즘 하고 있는 이 기도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도, 그 영혼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기도.


말씀을 읽었다.


네 형제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 (마태복음 18:17)


이 구절이 처음에는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이방인처럼 여기라니, 포기하라는 말인가?

더 이상 붙잡지 말라는 뜻인가?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 하지 않았나.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예수님은 언제나 이방인과 세리를 가까이하셨다. 유대인들이 손가락질하던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고, 사람들에게 배척당한 사마리아 여인과 깊이 대화하셨다. 예수님이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고 하셨을 때, 그 말은 단절하라는 뜻이 아니다.


더 이상 같은 방식 말고, 하나님과 멀어진 사람을 바라보듯 기도하며 기다리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잔소리를 늘어놓기보다, 억지로 붙잡으려 하기보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맡기고, 다시 돌아올 길을 열어 두는 것.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부르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그것뿐이다. 그리고 다시 말씀을 읽는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18:19)


구원을 전파하고 있는 내 모습은 지치고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신 적이 없다. 이 두 모습이 상충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치는 마음을 하나님은 아셨던 것 같다. 세 사람, 아니, 두 사람만 모여도 함께 거한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또 그냥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실제로 두 사람이 모여도 그 안에 거한다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꾸짖기도 하지만, 이처럼 위로하시기도 한다.


나는 요즘 중보기도를 하고 있다. 혼자 하고 있지 않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마음을 모으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시고, 그 기도를 통해 누군가를 부르신다. 나를 돕는 자로 쓰시고, 또 돕는 자를 위하여 또 돕는 자를 주신다. 요즘은 그것들을 느끼고 있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포기하지 않고, 대신 붙잡지 않으며.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이 일하시기를 기다리며.


* 본 글은 한소망교회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그러므로 생각하라》 묵상집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