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Think 프로젝트 묵상에세이《그러므로 생각하라》
예수님께서 열 명의 나병환자를 만나셨을 때, 그들은 멀리서 소리 높여 외쳤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7:13) 그 부르짖음에 예수님은 즉각 반응하셨다. 하지만 깨끗함을 허락받은 열 사람 중,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한 이는 한 명뿐이었다. 그는 사마리아인이었고,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7:19)
깨끗해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깨끗함을 주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믿음이었다.
빌립보서는 예수님의 낮아짐을 이야기한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7) 예수님은 신성을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 그 신성을 끝까지 감추고 낮아지셨다. 철저히 비우셨고, 철저히 맡기셨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다시 높이셨다.
비움은 곧 깨끗함이다. 깨끗함을 허락받으려면 먼저 비워야 한다. 동양철학의 비움과 기독교의 비움이 다른 것은 기독교의 비움은 채우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내 욕망, 내 뜻, 내 계획을 고집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공간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내려놓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자신의 것을 버린 사람이다.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은 하나님이 쓰실 수 없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 4:6)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깨끗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먼저 주시는 은혜가 회개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다.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더 이상 나의 길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는 것. 깨끗하지 않은 자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가장 큰 은혜는 바로 이것이다.
윤리적인간이라는건 결국 종교가 없어도 가능하다. 안 믿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비움을 통해 하나님을 채우고, 그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쓰임받는다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윤리적인 인간이 되는 건 종교가 없어도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려고 하고, 선을 행하려고 노력 하지만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단순히 윤리적인 삶을 사는 것과 하나님께 쓰임받는 삶을 사는 것은 다를 수 있다.
<자기 비움>과 <깨끗함>이라는 것도 ‘에고를 내려놓고 겸손해지는 것’ 정도로 이해될 수 있지만, 신앙적으로는 자기 비움이 단순한 자기 성찰이나 윤리적 수양을 넘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자리를 마련하는 과정이다. 즉, 우리가 비워야 할 이유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채우시도록 하기 위해서다.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깨끗함이 하나님의 쓰임과 연결된다"는 개념이 낯설 수 있다. 그들에게는 윤리적인 삶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윤리적인 삶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선을 행하더라도, 동기와 방향이 다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열 명을 고치셨을 때, 아홉은 자신의 치유에만 만족하고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한 명은 예수님께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여기서 중요한 건, 깨끗해지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깨끗함이 누구를 향하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믿음은 단순한 윤리적 삶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자기 비움이 단순한 절제와 도덕적 완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실 수 있도록 내어드리는 과정이 되는거다.
결국 윤리적 인간이라는 것은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믿은 결과물에 불과한 것이다. 기독교는 그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고. 기독교에서 윤리적인 삶은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기독교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윤리적인 행동은 그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열매에 불과하다. 누가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면서 선행을 많이 한다고 해도, 그 행동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삶의 의미가 없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그 관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윤리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빛이 나면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를 때 자연스럽게 선한 삶이 따라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자를 만들기 위해 빛을 비추는 것은 아니듯, 선한 삶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믿음이 없는 선행이 본질적으로 부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신 것도, 그들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리적인 삶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 없이 이루어질 때는 기독교적 의미를 잃는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누가복음의 나병환자들이 깨끗함을 받았을 때, 그들은 먼저 예수님께 간절히 외쳤다.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예수님을 찾았다. 깨끗함은 내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먼저 철저히 비우는 것이다. 빌립보서의 예수님처럼, 자기를 비울 때 하나님이 채우신다. 그리고 그 채우심 안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
* 본 글은 한소망교회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그러므로 생각하라》 묵상집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