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Think 프로젝트 묵상에세이《그러므로 생각하라》
오늘은 누가복음 19장 1절부터 10절까지 말씀을 묵상했다. 핵심내용은 '잃어버린 자'라고 적어두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이르셨을 때, 세리장 삭개오가 그분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키가 작아 무리 사이에서 볼 수 없었기에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했다. 삭개오는 기쁨으로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셨지만, 사람들은 그가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며 수군거렸다.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고, 남에게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인자도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잃어버린 자, 원죄한 인간
예수님이 말씀하신 '잃어버린 자'란 결국 인간이 아닐까. 비단 삭개오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돌이키기만 하면, 쳐다보기만 하면 오시는 거다. '잃어버린 자’는 단순히 삭개오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성경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 돌아온 탕자의 비유처럼 ‘잃어버린 자’의 개념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없고, 하나님이 찾아오셔야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보여준다.
성경에서 이르는 '죄'는 우리말로 해석되었지만, 히브리로는 '과녘을 벗어남'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우리는 신이라는 과녘을 벗어났고, 그 과녘을 벗어난 것 조차 인지하지 못 하고 있다. ‘잃어버린 자’라는 개념은 결국 창세기에서 인간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 원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아담과 하와는 원래 하나님과 함께하며 온전한 관계 속에 있었지만,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짓는 순간 하나님을 피해 숨었고,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9) 하고 먼저 찾아오셨다.
사실 하나님이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어보신 게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알고 계시고, 우리가 숨는다는 사실도 아신다. 우리는 스스로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 할 때가 많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숨을 때도 먼저 다가오셔서, 우리를 찾으시고 부르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이다. 삭개오의 이야기와 똑같다. 삭개오도 자신의 죄를 알기에 사람들에게서 숨었고, 사람들은 그를 죄인이라 손가락질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찾아가셨고,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자 결국 스스로 회개하게 하시고 돌이키셨다.
결국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잃어버려진 존재'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그 상태에 머무는 걸 원치 않으신다. 계속해서 우리를 찾으시고 부르시고, 다시 회복시키기를 원하신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면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창세기에서부터 누가복음까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고, 부당하게 취한 것을 네 배로 갚겠다고 했다. 진정한 회개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을 만난 자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다. 돌아서기만 하면, 바라보기만 해도, 하나님은 즉시 우리에게 오신다. 하나님은 숨은 자를 찾으시고, 부서진 자를 회복시키시며,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신다. 이 부르심 앞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사람들이 죄인이라 수근거리는 사람도 왜 이리 간단하게 구원하시는가. 그 이유는, 신의 시선에서는 죄의 크기란 크고 작음의 우위가 없고, 신과 멀어졌음으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은, 가장 간단하게 가장 쉬운 방법으로 그들을 구원해야 했다.
삭개오는 스스로 예수님께 다가가려고 했지만, 키가 작아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바라봤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삭개오를 먼저 알아보시고,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물겠다”고 하신다. 우리는 삭개오가 먼저 예수님을 찾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예수님이 먼저 삭개오를 찾아오신 것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방식이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하면, 하나님은 주저 없이 우리에게 오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오시면, 인간은 결국 변화될 수밖에 없다.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고, 부당하게 취한 것을 네 배로 갚겠다고 선언했다. 단순한 윤리적 변화가 아니라, 회개의 열매가 맺힌 것이다.
그래서 잃어버린 자의 구원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것이다. 중요한 건 돌아서는 것,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러면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결국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다.
* 본 글은 한소망교회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그러므로 생각하라》 묵상집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