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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의 작은 일기 - 피겨헤드

폴댄스 에세이 「폴 타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by 최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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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균형으로 봤을 때 나는 손목이 가는 편이다. 엄마에게 항상 “엄마 보다 손목이 얇네. 너는 특히 손목 조심해야 돼!”라고 경고를 받곤 했는데, 엄마의 충고 보다 무서웠던 건 엄마의 손목에 붕대처럼 칭칭 감겨있는 손목보호대였다. 저러고 어떻게 사는건지 모를 정도로 불편해보인다. 최근까지도 엄마는 손목터널증후군으로 고생을 하기도 했고, 설거지를 할 때나 작은 가방 하나를 들 때도 “아프다”는 소리는 하지 않지만 폴 탈 때 아파하는 내 표정처럼 항상 뭐 하나를 들기만 해도 무거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렸을 때야 그려려니 했지만, 나도 막상 아이 둘을 출산하고 나니 산후풍 조심하라는 말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지겹게 듣기도 하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실제로 이따금 손목이 시리고 아파 여러모로 신경 쓰였다.


엄마들은 손목이 아프다. 시어머니도 손주들 돌보고 온 날에는 손목이 아파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오셨다. 그 모습이 곧 나의 미래라는 생각에 나름대로는 조심하고는 싶지만, 육아는 현실이라서 아이를 키우면 조심하며 살 수가 없다. 그저 피해의식만 커갈 뿐 이다.


폴댄스를 배워보자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폴을 손으로 잡고 하는 거라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이 잠깐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신경 쓸 것들을 따지고 보면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걱정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매 수업 차 때마다 손목을 이용한 그립들을 정말 많이 쓰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 수업에서 지난번에 배웠던 구스넥을 다시 하게 되었다. 저번에는 잘 됐는데 이번에는 잘 안 되어 버벅 거렸다. 구스넥 그립은 거울에 비친 내 손이 손가락만 보이도록 폴에 팔을 숨기면서 잘 잡아야 한다. 구스넥 그립은 높이가 정말 중요하다. 너무 높지 않아야 하고 또 너무 낮지 않아야 한다. 위치는 입술과 코 인중 사이 정도가 적당하다.


오늘 수업에서 배운 동작은 처음에는 클라임으로 폴에 올라간 후 구스넥 그립으로 폴을 잡고 다리를 오른 오금을 끼우고 오른 겨드랑이를 폴에 끼운 후 엉덩이를 앞으로 빼서 피겨스케이팅 하는 것처럼 동작을 하는 ‘피겨헤드’ 동작을 배웠다. 마지막은 체어 자세로 우아하게 돌다가 천천히 새털처럼 내려온다. 피겨헤드를 하기 전에 구스넥 그립을 해야 하는데 자꾸 구스넥 그립이 잘못되어 피겨헤드를 시작하지 못 했다.


이 때 폴에 발끝을 포인하여 왼발등을 잘 대고 돌아야 한다. 지난번 수업에서는 구스넥이 쉬웠던 거 같은데 오늘 수업에서는 구스넥에서 부딪혔다. 힘을 주는 방법도, 동작의 중요도도 지난번 수업과 다르게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몇 번 배워보지 않은 폴댄스라서 잘 모르지만, 그립은 같아도 앞뒤에 이어지는 동작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같은 그립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또 그날의 내 몸 상태, 폴이 도는 속도, 내 감정상태 등이 폴 위에서의 여러 변수로 작용한다.


몇 번의 수업만으로 내가 어떤 부분에서 버벅거리는지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폴에 오금을 끼우는 것과 폴에 발등을 대는 것을 잘 못 한다. 거의 지금까지의 매 수업에서 버벅거리던 구간이다. 폴에 발등을 대라는 입력 값이 들을 때면 귀신같이 고장 난 기계처럼 뇌도 몸도 작동이 안 된다. 폴에 발바닥을 대어야 폴에 잘 매달려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존형 사고가 발등 대는 것을 두렵게 만들었다. 분명 발등을 대라고 했는데 발등이 아닌 발바닥을 대거나, 발을 신경 쓰다가 오른쪽과 왼쪽 방향감각마저 상실 한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동작을 잘 못 한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해봐야 늘지’라는 생각으로 하고 부딪히는 중이다. 아직까지는 늘지는 못 하고, 아프고 무섭다.


오늘 배운 동작은 폴에 몸을 가까이 대는 동작이라 폴이 빨리 돌아 너무 어지러웠지만 영상으로 찍힌 내 모습만큼은 피겨선수처럼 우아해보였다. 폴 위에서 동작을 할 때 ‘난 너무 못해’라는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막상 영상으로 찍은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구스넥 그립에서 버벅거린 탓인지 손목이 조금 시큰거리기는 하지만, 손목 뿐 아니라 팔 전체 근육이 단단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구스넥 그립은 정확한 모양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위치도 중요하다. 구스넥은 입술 라인에 맞추는 것이 가장 좋은 위치다.


오늘은 일 하느라 하루종일 오른 손목이 아파서 오늘 폴 타는 게 괜찮을까 싶었는데 타다보니 오른 손목이 씻은 듯이 나았다. 힘을 주어야 힘이 안 드는 마법이다. 손목을 쓰니 손목이 나았다.


폴댄스는 어쩌면 내 손목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손목을 단련시키고 손목 주변 근육들도 단련시켜주니까. 오늘도 일용할 근육이 생성되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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