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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집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묵상에세이《그러므로 생각하라》

by 최서영


오늘 아침, 마태복음 21장 12절에서 17절 말씀을 펼쳐 묵상하다가 마음이 한참이나 머물러버린 구절이 있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마 21:16)


이 구절에서 딸아이들이 흥얼거리던 찬양이 떠올랐다. 발음도 서툴고, 가사도 제멋대로였지만 그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양. 기도하다가 분에 못 이겨 우는 딸아이 모습도 떠올랐다. 자기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울던 딸아이.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기 전 기도하는 딸아이 모습도 떠올랐다. 갑자기 길다가 기도하는 딸아이 모습도 떠올랐다. 무슨 기도했냐니까 비밀이라고 말하던 딸아이. 어쩌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전한 찬미’는 그런 게 아닐까? 완벽하게 맞는 음정이나 유창한 화음이 아니라, 서툴고 말도 안 되는 소원을 비는 마음이라 하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순전한 기도. 계산되지 않고, 꾸며지지 않은 진심.


이번 말씀은 성전에서 예수님이 분노하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매매하는 사람들, 돈 바꾸는 사람들, 비둘기 파는 사람들” 성전이 더 이상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거래의 장소가 되어버린 것을 예수님은 참을 수 없으셨다. 예수님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 폭발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열심이었다. 그분이 바라보신 성전은, 돈의 냄새보다 기도의 향기가 가득해야 할 곳이었다. 그런데 그 곳은 거룩을 팔고, 은혜를 계산하는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었다. 그 장면을 묵상하면서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성전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지?’ 찬양할 때, 기도할 때, 혹시 마음 한켠에서는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내 감정의 유익만을 따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나도 ‘성전 안의 장사꾼’처럼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면서도, 진심보다는 조건과 계산으로 예배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하신 이유는, 성전이 원래 있어야 할 모습으로 돌아가길 원하셨다. 기도의 장소, 치유의 장소, 찬양의 장소.그리고 그곳에 놀랍게도 어린아이들의 찬양이 울려 퍼진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종교 지도자들은 그 찬양이 불편했고, 시끄러웠고, 마치 질서에 어긋나는 듯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찬양을 기뻐하셨다. 아이들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는 그 순간을, 예수님은 온전하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붙잡은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어야 하며, 나는 그 안에서 전심으로 찬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딸아이들이 부르던 찬양을 떠올리며, 나도 다시 순전한 예배자로 서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복잡한 계산과 책임, 의무감에 찌든 신앙이 아니라, 아이처럼 마음껏 기뻐하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 기도하는 집은 그저 교회 건물만을 말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내 가정이, 내 삶이 하나님과 마주하는 ‘작은 성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 나는 다시 다짐한다. 예배할 때는 전심으로.기도할 때는 진심으로. 찬양할 때는 딸아이처럼, 숨김없이 흥얼거리듯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로.그리고 언젠가, 하나님이 말씀하시겠지.


“너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내가 온전하게 하였다.”


* 본 글은 한소망교회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그러므로 생각하라》 묵상집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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