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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은 무디게, 한쪽은 차갑게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묵상에세이《그러므로 생각하라》

by 최서영

오늘의 묵상 내용은 마태복음 22장 34절에서 40절 이다.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에게 답하시는 장면이다. 이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이다. 그 앞에서는 사두개인이 예수님께 질문했다. 두 그룹은 유대 사회의 대표적인 종교 지도자들이지만, 성향과 신학이 매우 달랐다.


사두개인은 주로 제사장 가문 출신이며, 상류층, 귀족 계급이 많았다. 사두개인은 성전과 관련된 권한을 갖고 있었고, 로마 제국과의 협조 속에서 정치적 힘을 유지했다. 성경을 오직 모세오경(율법서)만 인정하고, 부활, 천사,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질서 유지, 정치적 안정, 전통 보수를 목적으로 한다.


바리새인은 일반 백성 중에서 배출된 율법학자, 종교지도자, 서기관들도 이 그룹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다. 회당 중심으로 율법 해석과 교육에서 영향력 크고, 성경에서 구약 전체를 성경으로 인정한다. 부활, 천사, 영혼 믿는다. 구전 율법도 중요하게 여긴다. 율법을 철저히 지켜 거룩한 공동체를 유지하려 한다.


나는 오늘 묵상 말씀을 통하여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지금도 존재할까?”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그들은 형태와 시대를 달리하여, 여전히 살아 있다. 현대사회의 ‘사두개인’은 권력과 체제에 적절히 타협하며, 신앙보다 안정과 유익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미키17에 나오던 권력자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신앙을 ‘합리적’이라 포장하면서도, 부활, 기적, 초월적 역사는 믿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전체가 아닌 일부를 수용하며, 믿음을 자기 삶의 문화나 철학으로만 받아들이고, 실제 삶의 방식은 세상의 기준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믿긴 해. 근데 너무 깊이 들어가진 말자”, “지금 이 시대에 그런 걸 문자 그대로 믿는 건 비현실적이지”라고 말한다.


‘종교는 있지만 믿음은 얕은’ 상태 또는 하나님보다 현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때 우리는 쉽게 바리새인이 된다. “그건 말씀에 어긋나 “, ”사람은 제대로 된 신앙인이 아니야 “, “나는 그래도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저 사람은...”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마음보다, 기준과 틀에 더 민감한 사람이다. 믿음이 사랑이 아니라 체크리스트가 될 때, 우리는 바리새인이 된다. 나는 쉽게 바리새인이 되는 것 같다. 아니, 바리새인이다. 아니, 나는 쉽게 사두개인이 된다. 사두개인이다.


현대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어떤 사람’이라기보다, 우리 내면에 일어나는 무형의 유혹이라고 보인다. 한쪽은 믿음을 무뎌지게, 다른 한쪽은 믿음을 차갑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눈빛과 음성이 필요이다. 예수님은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을 한다. “가장 큰 계명은 이것이니,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바리새인 중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다가와 묻는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큽니까?" 그 질문의 속내는 명확했다. 시험하려는 마음. 말꼬리를 잡고 흠을 찾으려는 의도. 하지만 예수님은 흔들림 없이 답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본다. 율법에 갇힌 사람들에게, 율법의 심장을 건네는 하나님. 사랑을 잃고 규칙만 남은 신앙 앞에, 본질을 다시 일깨우시는 주님.


사람들은 묻는다. 무엇이 옳습니까? 무엇이 더 낫습니까? 그 사이에서 나는 판단하고, 줄 세우고, 스스로 의로워지려 애쓴다. 하지만 예수님은 지금도 똑같이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그것이면 충분하다.”


사랑은 율법을 완성하고, 모든 계명의 뿌리가 된다. 그러나 사랑은 계산이 아니다. 시간과 감정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어쩌면 가장 어려운 계명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묻는다. “무엇이 옳습니까?” 그때마다 주님은 대답하신다. “누구를 사랑하고 있니?” 신앙은 답을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답을 살아내는 것으로 해내어야 한다.


* 본 글은 한소망교회 사순절 Think 프로젝트 《그러므로 생각하라》 묵상집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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