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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발사, 오리궁뎅이 -폴싯, 엔젤스핀, 스완

폴댄스 에세이 「폴 타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by 최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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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연말 모임이 많아서 그런지 수강생들이 수업을 거의 신청하지 않았다. 수강생 한 명으로는 수업이 열리지 않아 신청해도 매번 취소 알람이 오는 일이 잦았다. 어느 정도로 취소 알람을 많이 받았냐면, 폴을 탈 때마다 생기던 멍 자국이 완전히 사라질 정도였다. 폴을 못 탄 지도 일주일이 넘었고, 멍이 사라지니 피부는 뽀얘지고 매끈해졌는데 이상하게도 기분은 좋지 않았다. 이렇게 서운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10분 일찍 학원에 도착했다. 아직 앞 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폴 밑에 쿠션이 깔려 있고 수강생들이 폴 위에서 영상을 찍고 있었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하체를 위로 올리는 고난이도 동작을 하고 있었다. 입문반이 좋은 시기인 것 같았다. 수강생들이 입고 있는 의상도 우리보다 훨씬 화려했다. 서로 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입문반이지만 레벨업하면 같은 수강생들과 계속 함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댄스도 관계를 맺는 운동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 반에서 함께 수업을 듣던 사람들이 상급반으로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오래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폴댄스를 처음 시작했을 땐 폴과 폴 사이의 적당한 거리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관계가 만들어져 실제로는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도 이제는 기꺼이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엔젤스핀’을 배웠다. 먼저 클라임으로 폴에 올라간 후 허벅지 안쪽 깊숙이 폴을 넣고 다리를 펴 폴싯 자세를 잡는다. 폴싯은 기본적으로 허벅지로 폴을 깊게 잡아야 한다. 이후 왼손으로만 폴을 잡고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며 몸을 폴 앞으로 최대한 내민다. 저번에 했던 이카루스와 비슷한 동작이다. 상체를 내민 상태로 머리를 폴에 기대어 돈다. 오른팔은 뒷짐을 지고 다리를 접어 오른손으로 발끝을 잡는다. ‘스완’은 여기서 엉덩이를 더 내밀고 두 팔을 뒤로 깍지 껴서 손을 놓으며 도는 동작이다. 말 그대로 백조처럼 우아하다.


폴댄스를 배우면서 가장 자주 듣는 세 가지 말이 있다. ‘가슴발사’, ‘오리궁뎅이’, 그리고 ‘발끝 포인’이다. 앞의 두 가지는 몸의 곡선을 강조하는 것이고, 발끝 포인은 발끝까지 직선으로 힘 있게 뻗으라는 의미다. 물론 아직 입문자인 나는 셋 다 잘하지 못한다.


오늘 배운 동작은 허벅지 안쪽에 폴을 끼워서 아팠지만, 예전에 역대급으로 큰 멍이 든 이후로 나름 내성이 생겼는지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다만 어지러워서 힘들었다. 스핀 동작은 빠르게 회전해서 무슨 스핀이라는 말만 들어도 겁이 났다. 연습할수록 숙취처럼 울렁거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빠르게 도는 동작이 영상에서는 그리 빨라 보이지 않았다. 동작을 마치고 내려오면 어지러워 중심을 잡기 힘들어 게처럼 옆으로 걸었다. 어지러움이 가시면 다시 연습을 이어갔다.


오늘 수업은 다들 처음 배우는 동작이라 서툴렀지만 각자의 동작이 예뻐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수업이 늦게 끝났지만, 저번처럼 오늘도 인스타그램에 영상을 올렸다. 수업이 끝나면 배웠던 동작 이름마저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영상을 올려두면 반복해서 보며 복습할 수도 있다.


“점점 실력이 느는 것 같다”는 댓글이 달렸다. 정말이다. 폴싯도 예전에는 손을 놓는 게 힘들었는데 이제는 손도 놓고 동작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목표는 동작을 최대한 오래, 정확하게 하는 것이다. 폴을 잡고 지탱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클라임 정도는 기본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여전히 동작의 순서를 외우는 것이 어렵다. 수업이 끝나면 금세 까먹는다. 날이 갈수록 콤보가 길어지는데 걱정이다.


폴댄스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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