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크리에이티브
어렸을 적 내 꿈은 작가였다.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작가는 책상 앞에 앉아서 쓰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하얀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인데, 왜 굳이 등록금을 들여가며 글을 배우느냐고 했다.
요즘의 크리에이터도 마찬가지다.
"사진 찍고 영상 만들면 되잖아."
"편집하고 올리면 되잖아."
맞다. 작가든 크리에이터든 시작은 쉬워 보인다. 그러나 막상 시작해보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노트북을 켜고 블로그 글쓰기 창을 열면, 깜빡이는 커서만이 나를 응시한다.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고, 마음도 하얘진다.우리는 AI를 찾는다. 사고하지 않아도 AI가 알아서 글을 써준다.
"챗지피티한테 만들어달라고 하면 되잖아."
지금은 누구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으로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시대다. 글뿐만 아니라 그림, 영상까지 AI가 다 해주는 시대가 되었다. 이미지를 생성하고, 영상을 편집하며, 심지어 음성까지 AI가 대신 낸다. 우리는 클릭만 하면 된다. 그럴듯한 콘텐츠가 척척 만들어진다.
진입장벽은 낮지만, 그만큼 치열하다. 글, 사진, 영상 모두 쉽게 만들 수 있는 만큼,“잘 만든 콘텐츠”에 대한 기준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AI가 만들어주니 당연히 잘 만든 콘텐츠가 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기술은 쉬워졌지만, 콘텐츠 경쟁력은 고도화되었다. 이제는 단순한 제작능력보다 ‘의도’와 ‘태도’, 그리고 ‘진정성’이 더 중요한 시대다.
6년 전,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유튜브 실습 수업을 한 적이 있다.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매우 자연스러웠고, 창작 과정도 즐거워했다. 어떤 아이는 스크립트를 쓰고, 어떤 아이는 연기를 하고, 어떤 아이는 그저 모든 과정을 즐겼다. 그들의 얼굴에서 ‘진짜 콘텐츠의 즐거움’을 봤다. 아이들에게 유튜브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밥 먹고 자는 것처럼, 유튜브를 만든다. 지금 이 시대에 크리에이터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단지 유명해지고, 돈을 버는 사람이어야 할까?
요즘 유튜브는 숏츠(Shorts) 중심으로 돌아간다. 짧고 강한 임팩트가 조회수를 좌우한다. 눈에 띄어야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 안에 진심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누구나 기술, 경력 무관하게 시작할 수 있는 분야지만, 알고리즘은 냉정하다. 썸네일이 구리면 묻힌다. 첫 5초가 지루하면, 스킵된다. 나는 콘텐츠 홍수의 세상에서 '살아남는다'라는 말이 점점 더 무서워진다. 그래서 요즘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 조차 불편해질 때가 있다. 무엇이 ai고, 무엇이 인간일까?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결국 살아남는 건 창의성과 진정성, 그리고 전략일까. 그 의미조차 점점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는 여전히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 한다. 내가 상상하는 내 모습은, 바다가 보이는 휴양지 호텔 테라스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글을 쓰는 모습이다. 옆엔 라탄 테이블, 손엔 열대과일 주스. 걱정도 없고, 마음도 가볍다. 그 모습이, 행복하고 자유로운 나의 상상이기 때문이다. 장소가 호텔이건, 집이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가 행복한가?” “지금 이 순간이 즐거운가?” 이 질문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 점점 말세가 되어간다는게 이런 의미일까 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앞으로 아이들이 우리보다 더 많은 콘텐츠를 만들게 될 텐데, 우리는 어떤 콘텐츠 문화를 물려줘야 할까?기술은 계속 진화한다. AI는 더 똑똑해지고, 더 정교해지며, 더 감쪽같아진다. 글도, 영상도, 음악도, 이미지도 이제는 사람이 만들지 않아도 되는 시대. AI가 만든 콘텐츠와 내가 만든 콘텐츠, 그 경계는 점점 흐려진다.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기계가 만든 창작물’일까? 우리는 지금 그 모호한 경계 위에 서 있다. 그래서 더욱 콘텐츠의 윤리와 정체성에 대한 개념 정비가 필요하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오히려 창작자의 ‘마음’과 ‘의도’가 더 중요해지는 아이러니. 아이들에게 진짜 물려줘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닌, 창작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 아닐까? 앞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단지 ‘무엇을 만들까’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고, 왜 만들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저자 최서영
공공기관에서 14년 차 소셜미디어 담당자로 일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해왔다. ‘미니부부’라는 유튜브 채널을 잠시 운영한 경험이 있으며, 현재는 꾸준한 연재 콘텐츠는 없지만, 인스타그램, 브런치, 유튜브, 블로그 등 여러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단발적으로 콘텐츠를 발행하고 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나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며,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과의 연결을 강화하고, 소셜미디어를 더욱 풍부하고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