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업은 순서만 들어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헐리우드 스핀부터 머메이드, 클라임, 폴싯, 시팅버드, 이지보텍스, 이지임브레스, 그리고 마지막 다운까지. 정신없이 이어지는 콤보였다. 특히 오늘은 아직 해본 적 없는 '임브레스'와 '다운'이라는 동작까지 포함되어 있어 순서를 외우는 것도, 동작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운은 말 그대로 폴에서 내려오는 마무리 동작이다. 지금까지는 그냥 무사히 내려오기 바빴는데, 오늘은 내려오는 순간까지 완성감 있게 연결해야 한다는 걸 또 한 번 반성하게 되었다. 사실 마무리도 문제였지만, 시작부터 삐끗했다. 클라임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원숭이처럼 오르면 안 돼요!” 선생님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오늘 도입은 조금 달랐다. 오른 다리를 ㄱ자로 꺾어 오금과 아킬레스건을 폴에 걸고, 왼발로 바닥을 찍으며 시작했다. 다리를 머메이드로 뻗어주었다가 접으며 헐리우드 스핀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다음이 뭐였더라? 머릿속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지임브레스는 임브레스의 쉬운 버전으로, 손이 아닌 어깨로 폴을 잡는 동작이다. 왼손은 폴 위를 잡고, 오른 오금을 접어 폴 앞에 위에서 아래로 걸어주고, 왼 어깨를 잡은 채 돌았다. 폴싯에서 시팅버드로 연결하고, 마지막은 다운이었다. 전체적으로 엉성한 콤보였지만, 마지막 다운만큼은 자신감 있게 해냈다. 왼 다리는 곧게 아래로, 오른 다리는 발끝을 포인해서 무릎을 접어 세모나게 만든 후 부드럽게 내려왔다.
오늘 콤보에서 가장 큰 문제는 기술보다도 태도였다. 콤보를 완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간 배운 것들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 했다. 발끝 포인으로 온몸의 텐션을 유지하고, 천천히 차분히 올라가야 했는데 영상 속 내 모습은 폴에 오르기 전부터 안절부절이었다. 폴 꼭대기에 매달린 바나나라도 따먹을 기세의 원숭이 같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점점 몸을 사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폴 위에서 동작을 하다 보면 금세 힘이 빠지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동작을 시도하지 않게 된다.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아프니까 살살 타자'는 무의식으로 바뀌어 버렸다. 덕분에 폴 아래에서 허우적대는 연습 태도가 자리잡았다. 결혼도 뭣 모를 때 하라고 하듯, 폴도 뭣 모를 때가 가장 열정적이었던 것 같다. 몸으로 직접 해봐야 얻는 게 있다. 아래서 생각만 해서는 전혀 다가가지 못한다.
동작을 외우는 것도, 이어붙이는 것도 쉽지 않다. 선생님은 어떤 자세에서 다음 동작을 이어야 하는지도 세세히 알려주신다. 예를 들어 다음 동작이 폴싯일 경우, 구부정하게 앉은 자세에서는 이을 수 없으니 먼저 다리를 풀고 정돈된 자세에서 폴싯을 해야 한다. 보텍스를 할 때도 몸이 너무 뒤로 가 눕듯이 되면 안 된다. 같은 콤보를 하더라도 수강생마다 다른 문제에 부딪히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래서일까, 폴 위에서의 훈련은 언제나 똑같은 것이 없는, 나와 타인을 계속해서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