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크리에이티브
"서영 씨, 나는 서영 씨 글이 정말 좋아." 선배는 두 손을 꼭 잡고, 두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브런치에 일주일에 한 번씩 올리는 글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대단한 걸 쓴 것도 아니고, 그냥 일기장에나 쓸 법한 글을 올려놓았을 뿐인데 이런 과분한 반응을 받아도 되는 걸까. 선배는 주기적으로 내 글을 읽고, 피드백을 주고, 어떤 날은 소리 내어 내가 쓴 문장을 직접 읽어주기도 했다. "이 부분이 이런 의미로 해석되면 맞는 걸까?" 묻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끄럽고 민망해서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몰랐고, 결국 입에서 나오는 말은 짧은 한 마디였다. "감사해요."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만하시라는 말을 차마 할 수는 없었지만, 속으로는 ‘으, 못 버티겠어’라는 말이 맴돌았다. 낯간지러움이라는 건 아마 이런 순간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렇게 쑥스러웠는데도, 그 응원은 내 글을 이어가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어느 날은 뉴스레터에서 유명 작가의 글을 읽었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친구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이 글 어때 보여?" 친구는 말했다. “유명한 작가는 똥을 싸도 칭찬받잖아. 이건 그 똥이지 뭐.” 그 말이 웃기기도 했고,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그걸 분석해주는 독자들도 있고, 똥을 관찰하는 사람을 또 관찰하는 나도 있었고. 애잔한 일이다. 그런데 묘하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대상이 되고 싶었다. 비평이든 찬사든, 누군가의 시선이 내 글 위에 머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일이었다.
사람들에게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하면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그거 돈 안 되잖아.” 맞다. 돈 안 된다. 하지만 그 플랫폼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원고 청탁을 받았다. 어느 날 메일함에 도착한 메시지 하나. 브런치에서였다. 제목은 “원고 청탁”.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망상은 아니었다. ‘왜 내 글을?’ ‘왜 사?’ 팔로워도 100명이 겨우 넘는, 그저 무명의 글쓴이일 뿐인데. 메일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작가님의 글이 저희와 잘 맞을 것 같아서…” 누가 봐도 예의상의 문장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날은 그냥 그 말 그대로 믿어보기로 했다. ‘뉘신지는 모르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에세이 한 편에 얼마를 받아야 할까?’ 갑자기 실감도 나지 않는 고민이 찾아왔다. 전업 작가인 아빠에게도, 글쓰기 선생님에게도 물었다. 받은 답은 내 예상보다 훨씬 컸다. '이렇게 큰 돈을요?' 속으로만 되뇌었다. 하지만 내 글들이 그만한 가치를 지닌다고 믿어보기로 했다. 그간 정성껏 써온 글들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 카페에서 대표님과 만났고, “최서영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들었다. 작가라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고, 그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몸을 베베 꼬았던 기억이 난다. 민망했지만, 기분이 무척 좋았다.
대표님은 말했다. “계약서까지 써놓고 연락두절된 작가가 있어서요.”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전 연락두절될 일 없어요.” 진심이었다. 나는 성실한 게 유일한 재능이니까. 청탁받은 원고는 마감 기한보다 한참 먼저 보냈다.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도 머릿속으로 글을 썼다. 기한이 아니라 글을 쓰는 그 순간이 좋았다. 즐겁고 재밌는 일이 돈으로 이어진다는 게, 이상할 만큼 감사했다.
그 이후로 브런치에서 다른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있다. 원고청탁이 없었다 해도 썼을 것이다. 성실함. 꾸준함. 그리고,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사실. 그게 너무 감사하다. 그 누구라도 좋다. 스크롤을 넘기며 한 문장을 읽어주는 그 사람이 어쩌면 나에겐 가장 큰 독자다. 그렇기에 나는 계속 쓸 것이다. 기꺼이, 그리고 즐겁게.
저자 최서영
공공기관에서 14년 차 소셜미디어 담당자로 일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해왔다. ‘미니부부’라는 유튜브 채널을 잠시 운영한 경험이 있으며, 현재는 꾸준한 연재 콘텐츠는 없지만, 인스타그램, 브런치, 유튜브, 블로그 등 여러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단발적으로 콘텐츠를 발행하고 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나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며,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과의 연결을 강화하고, 소셜미디어를 더욱 풍부하고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