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댄스 에세이 「폴 타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어느 시점에 이르니 피드백 없이도 내 실력에 대해서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더해야 할지 보인다. 이 정도 왔다면 스스로에게 권위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권위란, 선생님이 시킨 것은 아니지만 폴이 너무 느리다 싶으면 빨라질 수 있도록 힘을 주거나, 폴이 너무 빠르다 싶으면 동작을 천천히 하거나, 선생님의 디렉팅만 의지 하지 말고 최대한 외워서 내 동작이 될 수 있게 태도를 달리 하거나, 보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티도 안 나는 선택들이지만, 스스로는 아는 그런 것들이다.
이제는 폴 동작의 이름은 몰라도 이 사람의 동작이 예쁜지, 안 예쁜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같다. 아무리 폴을 처음 타보는 사람이라도 그 동작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체험 하러 온 수강생의 팅커벨과 시팅버드만 봐도 앞으로 잘 탈 수 있는 사람인지 딱 알 수 있다. ‘저 사람은 잘 탈 수 있는 사람이다’ 속으로 그 사람에게 권위를 부여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못 타는 사람에 대해서만은 계속 못 타리라는 법은 없다. 그게 폴댄스를 두달 동안 다니며 깨달은 바다. 폴 체험을 와서 폴을 못 탄다는 것은 생전 처음 타보는 것이니 못 타는 게 당연한 것이다. 또 그중의 팔 할은 폴에 대한 두려움에 기반 하는 것이기 때문에 폴을 계속 타다보면 이전보다 폴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며 못 타는 사람은 무조건 이전의 나보다 잘 탈 수 밖에 없다. 가끔 잘 타다가도 못 타는 경우들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 이유를 곱씹어보자면 역시나 대부분의 경우는 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연습텀이 길어도 못 탈 수 있겠다.
당연히 실패하겠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폴 앞에 서는 태도를 연습해야 한다. ‘못 한다’, ‘어렵다’라는 인식부터 하게 되면 두려움으로 인해 자연히 몸에 긴장이 붙게 된다. 몸의 감각을 인지한다는 것과 몸에 긴장이 깃든 것은 큰 틀은 얼핏 비슷해보이지만 태도에서부터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미세하게 그 감각은 닮아있어 처음에는 구분 할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권위를 부여해서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오늘은 수업 전에 수강생들과 수다를 떨다가 나보다 잘 하는 수강생(다른 말로 선배님)들과 함께 클라임을 연습했다. 폴에 오르기 전에 폴을 잡고 한 바퀴 도는 것을 연습했다. 이를 ‘플레어링’이라고 부른다. 아직 미숙해서 나름대로는 플레어링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영상에 찍힌 걸 보니 영 아니었다. 폴에 매달려 맥없이 끌려가서는 절대 예쁜 플레어링이 나올 수 없다. 위로 잡은 손은 당겨주고, 다리는 뒤로 밀어준다. 또 어딜가나 폴댄스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정말 중요한 발끝 포인, 발가락까지 꽉 모아 힘을 준다. 발끝포인을 잘 하면 발가락, 발목, 종아리, 무릎, 허벅지까지 한껏 힘이 들어가진다. 아직은 미숙한 사람이라 연습을 하면 할수록 몸에 힘이 빠져 영상을 찍을 때쯤에는 연체동물이 되어있고 발끝도 다 무너져있지만 없는 힘을 최대한 끌어모아 노력한다.
오늘은 시그넷이라는 동작을 배웠다. 팔은 양 팔을 뒤로 깍지 끼고 도는 동작인 보텍스로 해야 했다. 이때 오른 오금은 생각한 것 보다 높게 잡아야 하고 골반이 앞으로 나와 있어야 발바닥이 안정적으로 폴에 댈 수 있다. 뭐가 잘못 된건지 모르겠지만 보텍스를 걸어줄 때 왼쪽 어깨가 너무 아팠다. 왼쪽 어깨가 족히 한 달은 아팠던 것 같다. 매순간 아팠다기 보다 어깨를 쓰는 동작을 하거나 일상에서 가끔 찌릿하게 그날의 기억을 데리고 와줬다.
오금이 제대로 걸리지 않아 그 뒤에 동작들도 다 꼬여버렸다. 동작 자체를 외우는 것이 서툰 편이라 오늘은 선생님의 시범을 영상으로 찍어서 돌려보고 또 돌려보면서 연습했지만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역시 폴댄스는 실전이다. 머리로는 아는데 동작이 마킹이 잘 되지 않아 답답했다. 어깨가 아팠던건 골반이 제대로 앞으로 나오지 않아 생긴 통증 같다. 오금을 허리라인으로 높게 잡아야 된다고 했지만 골반이 전혀 앞으로 나오지 않았고, 오금이 허리라인으로 높게 올라가지 않았다. 하나가 안 되니 그 뒤가 다 안 됐다.
보텍스를 건 후 동작은 ‘시그넷’이라는 동작이었다. 시그넷은 몸 앞으로 오른 다리를 폴에 고리를 끼우듯 끼우고 왼 다리는 발끝 포인해서 발바닥을 폴에 대는 동작이다. 양 손은 뒤로 깍지끼고 시선은 하늘을 본다. 팅커벨, 보텍스 어느 것 하나 안 되는 나를 보던 선생님은 팅커벨과 보텍스 모두 하지 말고 클라임 후 폴싯 부터 해서 시그넷 동작을 해보자고 했다. 폴싯 후 왼 다리를 곧게 아래로 뻗고 발바닥을 폴에 대고, 오른다리를 접어 끌어올렸다. 역시 유연함의 문제였다. 오른다리가 폴에 꽉 고리처럼 끼워져야하는데 양반다리를 한 것처럼 무릎정도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왼 다리가 생각보다 잘 펴지지 않아 다리가 예쁘게 뻗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폴이 너무 빨리 돌아 어지러웠다.
오늘은 턴테이블 그립이라는 것을 배웠다. 손을 뒤로 해서 폴을 잡는 것이다. 턴테이블 그립이 어려웠는데 왼손을 뒤로 완전히 뻗어 오른쪽 내 몸 옆에 있는 폴을 잡아야 하는데 폴이 안 잡혔다. 유연함의 문제라기 보다 무게중심 때문이다. 왼손은 그대로 뻗으면서 상체를 왼쪽으로 기울이면 폴을 겨우 잡을 수 있었다. 연습 내내 시그넷도 겨우 하고 마킹도 제대로 못 하고 영상을 찍었는데 두번 째 영상을 찍을 때 겨우 턴테이블 그립에 성공했다. 복부에 힘이 잔뜩 들어가게 되었다. 허리를 얇게 만들어 간신히 닿은 모양이다. 언제는 열등생이 아니었냐마는 오늘은 특히나 열등생이었다. 유일하게 마킹을 못 하고 영상을 찍은 사람이었다. 한 번이라도 겨우 해낸게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웃긴 건 오늘도 수업이 끝나고 인스타그램에 영상을 올렸는데 “폴댄스 학원을 운영하는 거냐”는 댓글이 달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학원 선생님처럼 보인다는 것일까,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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