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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는 아니지만 호흡기 차고 잡니다

묵상 에세이

by 최서영

한 달 내내 병원을 전전했다. 저혈압으로 사무실에서 우당탕 쓰러진 이후, 어지럼증은 가시질 않았다. 좋아하던 폴도 탈 수 없었고, 일도 버거웠다. 병가는 잦아졌고, 몸은 매일 무너졌다. 이석증이라는 이름을 확인하기 전까지,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했다.


수면클리닉이 있는 이비인후과에서 결국 만성부비동염과 수면무호흡증 진단을 받았다. 낮에도, 걸을 때도, 누울 때조차도 어지러웠다. 어지럼은 내 삶의 모든 동작에 겹겹이 끼어 있었다.


병원에서 받은 약, 약봉지 한 구석에는 ‘공황장애’라는 단어가 조용히 괄호로 묶여 있었다. 산소호흡기를 닮은 양압기 처방을 받았고, 매일 밤 중환자처럼 호스를 달고 잠을 잔다. 처음에는 이거 못 하겠다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하나 싶었지만, 점점 몸이 좋아지니 멈출 수가 없다. 그 후, 어지럼의 팔할은 이할로 줄었다. 불은 급히 꺼졌다.


한의원에서는 내 몸을 끓는 주전자에 비유했다. 이석증은 요동치는 주전자 뚜껑일 뿐, 진짜 문제는 그 아래의 불이었다고. 이비인후과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다. “불우한 유년을 보내셨군요.” 이건 잠깐 무리해서 벌어진 해프닝이 아니었다. 팔팔 끓던 주전자는 38년간 이어진 내 삶의 불우였다.


양압기 치료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코로만 숨을 쉬어야 했다는 사실이었다. 입으로 쉬던 숨이 멈추고 나자, 내 좁은 콧속을 밤새 온몸으로 느꼈다. 이렇게 큰 몸을 이렇게 좁은 통로로 왔다갔다 해야한다니. 그러나 익숙해졌다. 낮에도 코로 숨 쉬는 법을 의식하게 됐다. 38년간의 습관은 한 달 만에 고쳐질 리 없다. 한의원에서는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딸아이를 수면클리닉에 데려간 건, 나의 변화 때문이었다. 내가 변하니,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입으로 쉬는 숨. 그로 인해 자라지 못한 키. 내 어렸을 적 처럼 부정교합이 생길까 우려스러웠다.


CCC창립자 빌 브라이트 목사는 '영적 숨쉬기'라는 훈련을 말한다. 성령 안에서 숨쉬는 법을, 몸이 익힐 때까지 반복하라고. 숨처럼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될 때까지. 죄를 깨닫는 순간, 숨을 내쉬듯 회개하라고. 그러면 마음 안에 성령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고. 입으로 숨 쉬기를 멈추고, 코로만 숨을 쉬는 일. 그 고통스러운 전환을 거치며 나는 알게 됐다. 내게 양압기는 성령과 같다. 호흡을 넘겨드리고, 삶을 맡기는 일. 내 안의 통제권을 그분께 이양하는 일. 그렇게 나는 숨을 다시 배우고 있는 요즘이다. 어서 체질이 바뀌길. 나의 불우가 되물림 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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