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으는 미니멀스트

_언니

by 최서영

모으는 미니멀스트 _언니

나로 따지면, 주변 사람들은 부지런해 보인다는 평을 많이 듣지만 의외로 귀찮음의 늪에 자주 빠지는 편이다. 잘 씻고 영양제도 잘 챙겨 먹는데도 이상하게 감기를 항상 달고 살았던 이유가 집 안에 있는 먼지들 때문이라는 사실을 한참 뒤에서야 알게 되었다.


또, 나는 정리정돈이나, 청소를 자주 하는 편인데, 특별히 정리정돈과 청소를 좋아해서라기보다 깔끔함 그 자체를 좋아한다. 그 말인즉슨 어지럽혀 있는 것을 못 견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우리 집에서 청소 담당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독립하고 자취를 시작한 이후로 나는 나만의 공간을 꾸밀 생각에 기뻤고, 평소 좋아하던 인형부터 소품, 책 온갖 잡동사니를 닥치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다. 색깔 별로 나름의 규칙을 안고 줄지은 물건들을 지켜보며 쾌감을 느꼈다.


물건을 모으다 보니 내 방은 어느 순간 정리를 하고 또 해도 정돈된 분위기를 잃은 공간이 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먼지는 어디선가 자꾸 나타나 소복이 쌓였다. 물건이 많을수록 먼지는 다양한 형태로 쌓여간다. 정리하자면, 깔끔함을 추구하지만 귀찮음의 늪에 자주 빠진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임신, 출산 이후 옷, 장난감류는 내 돈 주고 산 게 손에 꼽힌다. 그런데도 아기 옷과 장난감은 차고 넘친다. 내가 그동안 잘 살아와서인 걸까. 아기 물건을 사지 않는데도, 지인들로부터 끊임없이 아기 물건이 들어왔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래서 우리 집은 육아에 드는 비용이 거의 대부분 생필품이다. 딸 아이의 물건을 산 것들을 보면 대부분 기저귀, 식료품이 전부다.


임신·출산 육아 이야기를 담는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보니 가끔 구독자에게 이런 종류의 고민거리를 상담해준다.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에 있다 보면, 내가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아기의 탯줄이나, 말라 떨어진 아기의 배꼽을 곱게 꾸며 병에 담아 주거나, 액자에 넣어준다. 나는 아이의 배꼽이 평균보다 빨리 떨어진 편이라 병원에서 간호사에게 아이의 배꼽을 받았다. 예쁜 비닐에 담아 주셔서 죄책감이 들었지만 몇 달 고민하다가 결국 쓰레기통에 버렸다. 하물며 비닐에만 담아줘도 이리 부담스럽다.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물건에 추억이 담기고, 의미가 담기기 때문이다. 사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하기 한참 전부터 나는 물건을 잘 버리는 편이었다. 미니멀리스트 4년 차지만, 아직도 한 달에 한 번 아름다운 가게에 보낼 종이상자 서너 개 분량으로 나눔물건이 나온다.


물건을 기증하면 물건이 재활용되는 큰 장점도 있지만, 집에 있는 물건들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물건을 기증한다. 그리고 대부분 버리고 나서 내가 그런 물건이 있었는지 잊어버린다. 나는 나눔 하는 것도 좋아하고, 나눔 받는 것도 좋아한다. 특히 몇 사람의 손을 거친 아기 옷과 장난감은 그만큼 육아 전쟁에서 살아남은 물건들이 건너온 것이기 때문에, 엄마의 편의에 잘 맞춰지기 마련이다.


버리고 후회하는 물건도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버리고 가장 크게 후회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졸업작품, 일기, 사진 그리고 엄마와 주고받은 이메일이다. 졸업작품을 버린 이유는 '내가 4년 동안 배우고 쓴다는 게 이거뿐인가'였고, 일기, 사진, 편지 등을 버린 이유는 정리하는 버릇 때문이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아빠, 엄마, 동생과 이렇게 새롭게 메일함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


공공연히 미니멀리스트임을 알렸지만, 기록물에 대해서만은 물건의 부피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버리지 않기로 했다. 유튜브로 브이로그를 담은 것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상당히 의미 있는 기록물이다. 커가며 하루하루 다른 얼굴을 하는 딸 조아의 일상과 매일 매일 부모가 되어가는 나와 남편의 일상이 담겨있다.



작가의 이전글이런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