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이 문을 닫았다

폴댄스 에세이 「폴 타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by 최서영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찍은 예전 사진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내 머리가 이렇게 머리털 빠진 독수리처럼 가르마가 훤했던가. 지나고 나서야 ‘그때 이랬구나’ 하고 놀라는 순간들이 있다. 예전 폴댄스 영상들을 볼 때도 그렇다. 불과 몇 달 전인데도 형편없던 실력에 놀라고, 언제까지고 어려울 것 같던 동작들이 어느새 한결 쉬워져 있는 걸 보면 새삼스럽다. 여전히 부족한 실력이지만, 더 부족했던 과거의 실력과 비교하면 내가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달라진 나를 실감하는 순간은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섰을 때다. 어깨와 팔에 자리 잡은 근육, 어떤 동작을 하다 생긴지도 모를 멍 자국들, 나도 모르게 조금씩 바뀌고 있는 몸의 선들을 바라본다. 특히 팔과 하체 근육은 눈에 띄게 성장했고, 등 근육은 아직 부족하지만 분명히 진행 중이다. 예전엔 굶거나 적게 먹어가며 만든 몸이었다면, 지금은 배고프면 잘 먹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땀 흘리며 만들어가는 몸이다. 지금의 나는 마치 나무에 물을 주듯 내 몸을 돌보고,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켜보는 중이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그렇게 자라나고 있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느끼며 지금의 삶을 천천히 음미하고 있다.


하지만 폴을 잠깐이라도 쉬게 되면 걱정이 드는 게 하나 있다. 다시 살이 찔까봐도 아니고, 실력이 줄까봐도 아니다. 내가 두려운 건 ‘사는 맛’을 잃게 될까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살을 빼기 위해 운동하지 않는다. 나는 살기 위해,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폴을 탄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딸과 손녀, 가능하다면 증손녀와 함께 폴을 타고 싶다. 죽지 않을 만큼만 하고 내려오라고 외치던 원장선생님의 말처럼, 내 힘이 닿는 한까지 해내는 그런 할머니로 살고 싶다.


오늘은 마치 폴 체험을 처음 하던 날처럼 설레고 떨리고 무서운 날이었다. 왜냐하면 오늘은 초급반 수업 첫날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비명소리 나겠는데요.” 선생님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웜업부터 온몸에서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오늘 배운 동작은 ‘시기 스플릿’이었다. 스플릿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와, 내가 드디어 스플릿을 배우는구나!’ 하는 감탄과 동시에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함께 들었다. 폴댄스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설렘과 두려움이 다시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막상 해보니 힘들긴 했지만 생각보다 할만 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시기 스플릿을 하고 있는 내 영상을 돌려보며 엉성하긴 해도 해냈다는 뿌듯함에 웃음이 나왔다. 오늘의 이 막막한 도전도,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힐링콤보'가 되어 있을까? 한때는 도저히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졌던 입문반 콤보들이 지나고 보니 전부 힐링이었다. 그 막막함이 힐링이었고, 그 어려움이 결국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이 막막함과 어려움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또한 언젠가 나를 치유해줄 시간이 될 테니까. 내 힘이 닿는 한, 나는 계속 탈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웃고 울고 흘러왔던 그 폴댄스 학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 슬프고, 아쉽고, 믿기지 않았다. 이 공간에서 쌓아온 몸의 기억들, 선생님의 말투와 표정, 거울 속 나의 변화들, 이 모든 것이 이제는 과거가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공간이 사라진다고 해서 거기서 쌓아온 나의 시간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오늘도 여전히 폴을 생각하며 웃을 수 있다. 이 공간에서 흘린 땀과 비명과 웃음, 그 모든 것이 나를 만든 가장 단단한 힐링콤보였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귀한 시간들이었고, 내 인생의 중요한 챕터였다. 그 챕터의 끝에 서 있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폴댄스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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