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딘가, 빨래력

_ 언니

by 최서영

그 어딘가, 빨래력 _언니


많이들 알려진 스티브 잡스의 패션. 검은 터틀니트에 청바지, 회색 뉴발란스 운동화. 선택할 수를 줄여 더 중요한 일에 사용하기 위해 매일 똑같은 옷을 입었다는 스티브 잡스의 패션은 그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다는 게 사실 단번에 정해지진 않았을 것이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초라하지도 않을 그 어딘가를 찾기 위해 무던히도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나는 시그니처까지는 아니더라도, 항상 내 옷장에는 일주일을 돌아갈 외출복들을 분기별로 교체해주는 편이다. 보통 계절 초입에 옷들을 세팅해둔다.


명품에 관심이 없으므로, 저렴하면서도 나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옷들을 입는다. 입었을 때, 옷이 거슬리거나 신경 쓰이지 않으면서도 주변에서 옷에 대해 핀잔을 주지 않을 적당한 분위기를 지키는 코디, 그게 필요하다. 그래서 주로 내가 애용하는 옷가게들이 몇 군데 정해져 있는 편이다.


"너도 참 너 같은 거 입는다"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편이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내심 뿌듯하다. 물건이 물건 값을 한다는 건 바로 이런 순간이다.


나는 이번 계절에 입을 일곱 가지 옷의 세트 구성을 제외한 나머지 옷들은 창고에 넣어둔다. 새로운 옷을 입고 싶은 날이면 창고에서 꺼낼 옷들을 살펴보고 옷장의 옷과 교환을 하거나, 계속 창고에 두게 되는 손이 안 가는 옷들은 나눔 하게 된다.


육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양적 수를 줄이는 것이 우리 집의 기본 설정 값이다. 장난감, 그리고 아이의 옷가지들도 같은 방법으로 반복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온 집안의 물건이 순환한다. 우리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집안일을 줄이는 방법이다.


냉장고도 마찬가지다. 한 달에 한 번 크게 장을 보고 최대한 장을 보지 않는다. 냉장고 파먹기라고 불리는 방법인데, 그 날의 식단을 정하고 필요한 재료만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장터에서 장을 보는 방식으로 한 달을 버틴다.


그러다 보면 식비도 아끼게 되고, 생각보다 요리하고 장을 보는 것이 재밌어진다. 식재료가 얼마 없어서 비슷하게만 먹을 것 같지만, 적은 식재료로도 의외의 요리가 나오기도 한다.


무엇보다 좋은 건 텅 빈 냉장고를 열 때가 가장 짜릿하다. 남들은 채울 때 기분이 좋다는데, 나와 남편은 이상하게 비워질 때 기분이 좋다. 한번 장을 볼 때 한꺼번에 장을 보는 편이라서 사야 하는 물건들은 매번 메모를 남겨둔다. 이럴 때도 기분이 좋다. 사야 할 것을 제 때 살 때 내 마음이 충족된다.


미니멀리스트로 지낸 지 4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집에 물건이 많을수록, 물건을 많이 살수록 가슴이 답답하다. 남편도 그런 눈치다. 소모품이기도 하고, 할인프로모션이 있어서 물건을 사거나, 1+1이라서 쟁여두기라도 하면, 왜 이렇게 많이 샀냐고 남편에게 핀잔을 듣는다.


이렇게 집안일에 대해 나름대로 규칙을 정하고, 또 재밌게 집안일을 하고 있음에도, 유독 빨래에만은 정이 안 간다. 빨래가 너무 싫다.


옷도 많은 편도 아니면서 빨래가 싫은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까지도 나의 최대 고민은 빨래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느냐, 다. 올해 초부터 빨래에 대해 고민했으니 벌써 반 년째다.


안타깝게도 남편과 나는 이미 집안일에 대한 업무분담이 끝난 상태다. 남편은 설거지, 나는 빨래인데, 남편으로서는 빨래마저 전담할 수는 없었나 보다. 여러 번 남편에게 도킹을 시도하였으나, 몇 년째 실패다. 빨래에 트라우마가 있다나 뭐라나.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맨몸으로 집을 짓는 사람의 채널을 본 적이 있다. 나뭇가지 하나로 흙을 파서 계단도 만들고, 수영장도 만들고, 강가에 가서 맨몸으로 물고기를 잡아 장작을 패고 불을 지펴 먹고, 말 그대로 원시시대에나 볼만한 자급자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유튜브 채널을 여러 날을 넋 놓고 봤다. 혼자 30~40분 남짓한 그 영상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흙을 파내고, 파낸 흙을 치웠을까. 게다가 햇볕은 얼마나 뜨거울 것이며, 하다 보면 그만두고 싶을 텐데.

하지만 그 영상엔 흙 퍼다 나르는 소리만 있을 뿐이다.

분명 그만의 기술, 루틴, 레시피가 있을 것이다!


빨래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최근까지도 수건 개수를 늘리느냐, 마느냐가 너무나 고민이었다. 무슨 그런 궁상맞은 고민이 다 있냐고 할 수 있지만, 진짜다.


우리 집에 있는 수건은 총 8장이다. 2장은 발수건으로 돌아가면서 쓰고 있고, 나머지 6장은 나, 남편, 딸 이렇게 3명이 쓰고 있다. 이론상으로 한 명씩 하루 한 장을 쓴다고 가정했을 때, 이 수건은 이틀이면 다 쓰는 것이다. 어쩌다 평소보다 수건을 한두 장 더 쓰다 보면 거의 매일 세탁기를 돌리는 셈이다.

몇 달을 고민하다 결국, 여러 가지 대안들이 나왔다. 빨래가 싫은 이유는 색깔별로 분리하고 빨래를 두 번 돌려야 된다는 점, 어지럽게 섞인 세탁물을 다시 분리하고 예쁘게 개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어지럽게 섞인 빨래 더미에서 제일 먼저 개는 게 바로 '수건'이다. 상대적으로 수건을 고르고 접는 건 쉽기 때문이다. 가끔 어지러운 빨래 더미 앞에서 빨래를 개고 있으면, 남편이 말없이 다가와 빨래 더미에서 수건만 골라 개 놓고 '도와줬다'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 이유에서다.


그래서 처음엔 이틀에 한 번꼴로 하던 빨래를 ‘수건’만 이틀에 한 번 해보았다. 수건만 빨고 개는 건 너무 쉬웠다. 나머지 가족 옷들의 옷과 이불은 하루 '런드리데이'로 정해 남편 옷은 남편 옷, 조아 옷은 조아 옷 분리해 세탁하는 거다. 그러면 옷을 분리하는 일이 덜어지긴 했다. 하지만 빨래양이 어마무시하게 쌓였다. 이 방법도 무리수였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빨래가 안 된 상태로 방치되니 쿱쿱한 냄새도 났다.

"하기 싫은 건 곳 해야만 하는 일이야."


여러 가지 시행착오들을 하는 나에게 남편은 한마디 던졌지만, 그걸 누가 모르나! 그냥 싫은 거다. 그런데 싫다고 계속 내버려 두면 빨래 더미는 더 커져 버린다.


그 다음 대안은, 빨래를 이틀에 한 번씩 하되, 세탁 후 분리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아까처럼 수건은 수건, 남편 옷, 아이 옷, 내 옷 분리하여 다 된 빨래를 옷장까지 넣는 그 동선을 최소화하는 거다. 결과는 만족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빨래가 너무 싫다. 싫은 일을 좋아하는 일이 되도록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 어딘가에 있을 ‘빨래력’을 찾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가랑잎 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