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언니
작지만 선명하고 윤리적인 이야기 _ 언니
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을 때의 일이다. 나에게 영화란 창작을 위한 워밍업 같은 것이라서, 독립영화든 뭐든, 마음에 드는 영화가 있으면 몇 달 동안 내리 그 영화만 봤다. 친구가 "왜 봤던거 또 봐?"라고 물어보면, 나는 "볼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있고, 볼 때마다 내가 다른 해석을 내린다"고 말했다. 꼭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나 시집, 소설책, 음악 모든 창작물을 대하는 태도가 그랬다. 마음에 들면 계속 봤다. 아직도 그런 버릇이 남아있어서, 가끔 남편이 옛날 친구들이 나에게 했던 질문을 똑같이 묻는다. 그러면, 나는 "볼 때마다 새로워, 짜릿해!"라고 말한다.
그 때 당시 내가 썼던 글들을 떠올려보면 보고 또 봤던 영화들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렇다고 딱히 그 영화를 원작으로 한 창작 활동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는 머릿속으로 한 장의 그림을 그린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마음 속에 그린 그 그림만 생각하고 글을 쓰면 그 글 위에 일직선으로 쭉 미끄러지는 선이 하나 그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관통하는 선 하나가 그어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그 선 하나만을 떠올렸다. 선이 그어져야 잘 쓴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선 하나를 긋기 위해 미술전이나 사진전도 자주 보러 다녔고, 머릿속에 그려질만한 잔상이 남는 시집도 좋아했다. 4년 내내 창작수업을 들었기에, 창작수업에서 마음에 드는 시를 써온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 시를 모티브로 소설을 써봐도 괜챦냐고 양해를 구하고 소설을 쓴 적도 있다. 그렇게 글을 쓰다보니, 전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호해지고, 글이 추상화처럼 해석하기 나름인 상태가 되었다.
내 창작적 취향은 대부분이 모호하고 그로테스크했다. '환각 증세', '환상' 같은 기법들을 좋아했다. 최승자 시인을 좋아해서 자주 필사를 했고,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의 <변신>도 좋아했다.
다 보고나면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들을 좋아했다. 보는 당시에는 불쾌했을지라도, 오랫동안 영화의 잔상이 남고, 해석하고 싶은 작품들을 좋아했다.
내가 대표적으로 꽂혔던 영화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네이키드런치>다. 사실상 대학을 다니는 내내 몇 백번 돌려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징그러운 영화나, 무서운 공포영화를 안 좋아하지만, 이 영화는 예외다. 대부분의 장면이 벌레와 괴물이 나오기 때문에 굉장히 보기 어려운 영화임에도, 너무 많이 돌려봤기 때문에 지금은 영화를 다시 봐도 벌레와 괴물이 귀여워보일 정도가 되어있다. <네이키드런치>는 마약환자의 시선으로 그린 영화이다. 감독의 초기작들을 보면 대체로 그로데스크하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건지 그 의도를 파악하기도 어려운 아주 난해한 영화다. 나는 그 영화의 난해함이 좋았다. 난해하기 때문에 아무 해석 없이 볼 때도 있고, 영화를 보는 매 순간 몰입해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해석하는 재미가 있었다.
<네이키드런치> 의 원작이 되었던 같은 제목의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은 작가가 실제로 마약을 하며 집필했기 때문에, 더 알아듣기 어려운 책이다. 감독은 원작소설가의 삶이라는 논픽션과 소설원작이라는 픽션을 적절히 배합하여 <네이키드 런치>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의 탄생비화 조차 대단히 좋았다. 마약을 한 소설가가 마약을 하며, 마약을 한 소설가가 나오는 소설을 썼다. 이 영화가 픽션과 논픽션의 구분을 짓기 어려운 이유는 작가의 삶도 그것을 구분 짓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영화를 보던 그 시절, 내 모습이 그랬다. 모든 것이 모호하고 무질서한 상태였다.
나는 좋아하는 영화가 있으면, 그 한 편만 계속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만든 거의 모든 영화들을 찾아봤다. 그게 꼭 영화에만 국한되는게 아니라, 글이 되었든 음악이든, 창작물에 대해서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책을 잡으면 맨 뒤 해설부터 먼저 읽었다. 해설이 마음에 들면, 주로 그 책을 고민 없이 선택하고 읽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인터넷에서 그 책의 서평이나 줄거리를 먼저 파악 한 후 읽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으로 줄거리와 별점 등을 먼저 파악한다. 지금까지도 그런 버릇들이 남아있는데, 그 버릇이 생긴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작가가 되고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의 나는 사실 영화보다는 감독을, 글 보다는 작가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에게, 마음에 드는 영화가 있다는 것은 그 감독을 좋아하게 됐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학을 다니는 내내 '영화를 좋아하고, 감독을 좋아한다'는 나의 창작적 취향 자체에 의구심을 품으며 지내왔다. 그 의구심 때문에 글을 쓰기도 매우 주저했다. 내가 대학을 다니며 고민했던 지점은 '작가와 작품의 윤리성'에 대한 문제였다.
나는 좋아하는 창작자의 인터뷰 보기를 즐겼는데, 작품과 작가가 얼마나 일치하느냐를 두고 본다면, 일치하지 않아서 매력적인 사람이 있고, 일치해서 매력적인 사람이 있다. 소설 <네이키드런치>를 본다면, 실제로 마약을 해서 아내를 죽였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로 작가의 실제 인생은 마약으로 시작해 마약으로 망했다. 그런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내 윤리성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가 그런 작품들을 좋아한다는 것에 한동안 진저리가 났고, 대학을 졸업하며 내 창작적 취향에 스스로 질려버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글쓰기를 멈춘 이유다.
그 때의 고민들이 있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거대담론을 이야기하고 있진 않지만, 대단히 선명하고 윤리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하고 싶다. 책을 쓰고 있는 이 와중에도 나의 수신인은 나, 동생, 엄마, 아빠이다. 적어도 이 네명에게만은 떳떳한 글쓰기가 되어야 모든 이들에게도 떳떳하게 이 책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작지만 선명하고 윤리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다. 나이가 많진 않지만, 대단한 이력을 가진 위인은 아니지만, 나는 내 인생에 대해 관찰하고, 해석하며 작지만 분명한 글을 쓴다. 내 글과 내가 일치해서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