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언니
잠재력의 확장, 오마카세 _언니
어느 날, 남편이 대단한걸 보고 왔다고 나에게 앉아보라고 했다. 뭘 보았길래 호들갑인가 싶었는데, 친구와 ‘오마카세(お任せ)’라는 걸 먹고 왔다는 거다. 오마카세란 '남에게 모두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우리나라 말로는 ‘일임하다’와 비슷한 의미다. 오마카세는 특정음식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고객이 메뉴를 고르지 않고 요리사가 알아서 음식을 내놓는 고급코스요리를 말한다. 값이 제법 비싸지만, 남편은 분기별로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전했다.
나는 남편의 말에서 ‘분기별로’라는 표현이 참 와 닿았다. 남편은 “우리 돈 벌어서 이사 갈 생각만 하지 말고, 가끔씩 비싼 마사지도 받고, 영양주사나 시술도 받고, 오마카세도 먹고 그러자”고 말했다. 남편의 분기별 리스트 안에 ‘오마카세’가 추가 되었다. 살면서 하나씩 분기별로 해야하는 일들이 늘어나는게 좋고, 그래야만 내 인생의 잠재력도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오마카세는 요리가 아니라 쇼”라고 했다. “엄청나고 대단한 쇼”라고 했다. 사람에게서도 오마카세 같은 ‘이야기’가 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오마카세처럼 음미해보자. 영화든, 책이든 상관없다.
최근에 접한 오마카세 같은 이야기가 있어 소개해보려고 한다.
어느 날 TV 채널을 돌리던 한 남자는 한 여자 연예인에게 반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는 '저 여자와 결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 후 꿈에 그리던 그녀를 드디어 사석에서 만난 그가 그녀에게 처음 건넨 한마디는 대뜸 "어디 김씨냐"는 질문이었다. 서로의 성이 다른 김씨인 것을 확인하고는 그는 크게 안도하며 그녀에게 쐐기의 한마디를 더 던진다. "동성동본이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이 이야기는 자우림 메인보컬 김윤아 씨의 남편 김형규 씨의 실제 결혼 전 첫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어지러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럼 나도 유아인이랑 결혼할 수 있었던 거야?' 이렇듯 다른 사람 인생의 한 컷을 내 인생에도 대입해보는 거다. 거꾸로 내 인생을 다른 사람 인생에 대입해볼 수도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내 인생을 맡겼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망상 같지만 이런 생각들이 필요하다.
내가 가장 최근에 상상한 사람은 ‘펭수’다. 작년에 한창 펭수가 모든 매체를 장악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고맙게도 나는 자이언트 펭TV에 출연하게 될 기회가 있었다. 오히려 나는 펭수보다도 먼저 캐릭터 마케팅으로 이름을 알렸던 사람이다. 나에게도 여러 예능프로와 매체에서 인터뷰나 섭외요청이 들어왔고, 회사에 일주일에 서너번은 취재를 오겠다는 사람들과 벤치마킹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예능프로도, 단독으로 매체에 나가지 않았다.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가지 못 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소문들'때문이었다. 나를 둘러싼 안팎이 소문과 폭언으로 무성했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나에 대한 인신공격, 나를 개인적으로 안 다는 댓글들도 보였고, 그런 글들을 보면 볼수록 주변사람들을 더 믿지 못 하게 되었다.
꼭 이 일 때문이라기보다는 복합적인 문제들 때문이었지만, 결국 나는 공황장애에 걸렸다. 길을 걸을 때, 뛰어오는 아이들과 달려오는 자전거 때문에 놀라 주저앉아 울기도 하고, 일할 때, 숨이 안 쉬어져 움직이지 못 할 때도, 자다가도 심장이 터질 거 같아 깨는 날도 여러 번이었다. 의사선생님은 내게 마음 단단히 먹으라는 말과 함께 먹을 약을 지어주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하는지 몰라 약만 열심히 먹었다.
솔직히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면 정말 앞으로 아무 것도 못 하게 될 것 같아 버티면서 일을 해왔다. 펭수를 만나 EBS에서 촬영을 하고 돌아오는 길, 인형 탈을 쓰고 몇 시간 일을 했더니 몸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몇 년 전 이 일을 하며 공황장애에 걸렸던 기억들과 지금까지의 여러 노력들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스스로가 내 잠재력을 막은 순간이 너무도 많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꼭 그러라는 법도 없었는데, 스스로가 그런 법을 만들고 나를 가둬버리던 때가 너무나 많았다. 나를 가둔 건 단지 나일 뿐이다.
나는 나를 과소평가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오마카세 먹으러 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