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가 나를 살게 해요

_언니

by 최서영

"너의 말에 어떤 부분은 동의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어."


직장에서 만난 한 선배는 내 의견이나 내가 만든 자료를 보고, 곧잘 저런 말을 하곤 했다. 나는 그 선배의 '동의'라는 말이 좋았다. 어떤 날은 내 의견을 주의 깊게 듣긴 한 걸까 싶을 정도로 항상 내 말이 끝나자마자 저 대사를 쳤다. '동의'라는 입력값이 들어간 로봇이 아닐까 싶은 때도 있었다. 보통은 저런 말 뒤로 '그런데'와 같은 접속사와 함께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첨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선배는 대부분 나에게 그 어떤 첨언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의견이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함께 지으면서 말이다.


나 역시 선배의 저런 피드백을 들으면 어떠한 제스처도 할 수 없었다.


그 선배는 그 상태로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저 선배가 하는 일은 상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또 나에게 발언권을 넘기는 것이었다. 나는 선배의 그런 면이 좋았다. 순서야 어떻든 선배와 나의 생각은 1안이 되고, 2안이 되었다. 우리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만, 너와 내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도 당연한 의미가 나에게 큰 위로를 주는지 알 수 없었다. 회의가 끝나면 그 선배 덕에 나의 의견이 채택이 되던 안 되던 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살면서 타인들과 끝없이 다른 생각을 한다. 글쓰기를 공부할 때도 타인과 내가 다르다는 게 장애물처럼 큰 벽이 되곤 했다. 쓰고 싶은 글과 읽고 싶은 글의 간극 사이에서, 많은 날을 헤맸고, 지금도 헤매는 중이다. 처음에 나는 스스로를 '아웃사이더', '비주류'로 치부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향유했다. 대중적인 것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확언했다.


하지만 마케팅 관련한 업무를 하다 보면 결국 사람들이 쫓는 것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아내야 하는 순간들이 온다. 모든 마케팅의 귀결은 '이걸 사람들이 좋아할까?'였다. 마케팅에서도 아웃사이더, 비주류는 존재한다. 다만, 아웃사이더를 소비하는 인사이더와 비주류를 쫓은 주류가 있을 뿐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요즘 뭐가 재밌는 지 묻는 게 사적인 영역에서의 공적인 일이 되곤 했다.


누워서 핸드폰을 보거나, 인터넷 서칭을 하는 당신의 눈을 마케터들은 너무나 알고 싶어 한다. 퍼포먼스 마케팅 같은 것들이 나온 것은, 대중의 눈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세세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더 빨리 알아차리는 후배들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자문하는 시간도 많아진다. 습관적으로 실시간 인기검색을 보고, 쓸 만한 게 없나 밤낮 없이 고민한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핸드폰 좀 그만 봐, 라고 속없이 잔소리를 하지만, 지금 나는 노는 게 아니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도태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열일' 중이라는 거다.


우리가 홍보하고자 하는 것과 사람들이 원하는 홍보는 어떤 때에는 너무나 상반된 지점에 서 있기도 한다. 아이템 앞에서 볼펜만 까딱거리며 고민하는, 바로 이거다! 하는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 계속 생각해야 한다.


상대가 원하는 내 모습과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다를 수 있다. "네가 그렇게 말할 줄 몰랐다"던지 "의외다" 같은 종류의 말들에는, 상대가 원하는 내 모습, 또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포함되어 있다. 이렇다 보니 때로는 상대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짓고 있는 것인지 놀라우면서 무섭다. 내가 보는 나와 상대가 보는 나 사이의 간극에서 느끼는 괴리감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연예인이나 유튜버 같은 보여지는 직업일수록 그런 괴리감 때문에 힘든 순간이 많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스포트라이트에 뒤따르는 그림자라고 쉽게 여길 수 있겠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어 본다면, "나는 사람들에게 정말 효능감이 있는 사람인가?" 그리고 "나는 나에게 효능감이 있는 사람인가?" 반문하는 시간들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다 가끔 나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잃어버리는 때. 나는 어째서 남들 생각만 쫓고 있는 걸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책을 찾았다. 책속엔 문장이나 단어의 형태로, 나 같은 생각이 있었다.


일을 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잘 못 듣는 사람을 가끔 만난다. 계속 듣다 보면 어쩐 이유인지 화가나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그 어떤 말도 먼저 앞서지 못 하고, "그렇군요" 그저 들어주게 된다. 저 사람은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문장을 찾고 있겠구나 싶다.


나도 그런 순간마다 창작활동을 많이 해왔던 것 같다. 블로그에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은 후 요점이나 나의 생각을 적거나, 팟캐스트를 하거나, 유튜브를 했다. 나와 생각도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르지만,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생각 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안다' 라는 말. '그 사람을 안다'라는 말이 버거울 때가 많다. 이렇게 가족과 에세이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얼마나 내가 가족들을 알지 못 하고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나조차도 듣지 않았던 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비로소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내가 되어 있다. 그 안에서 우리의 아가미는 숨을 내쉬며 살고 있다.


공황장애에 걸려 자다가도 식은땀을 흘리며 깨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고단하게 깨는 날이면 불을 켜고 무작정 잡히는 대로 책을 읽거나, SNS에 올라온 남들의 근황을 읽으며, 나의 문장을 찾았다. 쉬는 날 무작정 혼자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제목이 끌리는 책을 읽는 것도 좋았다. 사실 마음이 궁핍해질수록 나의 문장을 찾기 힘들었다. 가끔 단비 같은 문장을 찾으면 저장해두었다가, 두고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그게 책이든 드라마대사든 낙서처럼 필사도 했다. 위로 받은 문장을 발견하면 숨통이 틔어지는 것 같았다.


나의 보잘것없는 생각과 하루도 누군가가 나처럼 이렇게 소리 내어 읽고, 곱씹으며 숨을 쉬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이야기와 당신의 이야기가 1안이 되고, 2안이 되는 날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다르기에, 그리고 발언권은 누구에게나 있었기에, 다양한 이야기가 세상에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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