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엄마
딸이 자신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는 문장에서 내 눈길이 한참 머물고 있다. 공황장애에 걸릴 정도로 삶이 힘들었다는 사실에 엄마로서 좀 더 무언가 해주지 못했다는 것에 마음이 저려온다.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는 딸의 모습을 떠올리니 가까이에서 손잡아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내 지병으로 인해 좀 더 세심하게 살펴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더 이상 잃지 않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썼다는 이야기에 가슴에 손을 얹고 딸을 위해 잠시 기도하게 된다. 딸이 마음에 드는 문장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니 참 좋다. 역시 우린 데칼코마니네. 나도 독서노트에 내 마음을 울리는 것들을 기록하고 있다. 손바닥 크기의 보라색 노트가 두 권이 있는데 하나는 집에, 또 하나는 직장 사무실에 놓고 매일 기록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시 쓰기에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 딸이 기록한 문장들이 삶을 아름답게 수놓기를 바란다.
볼을 쓰다듬으며 지나가는 그 바람엔 흙냄새가 배어 있고, 가까이에서 봄이 오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려주듯이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딸에게 봄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날이 갈수록 딸 주변에 봄꽃이 피어나고 작은 물줄기들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곧 딸의 이야기와 글에 고개 끄덕여 줄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 두 딸이 휴대폰으로 쉴 새 없이 검색하는 모습을 자주 보며 ‘열일’ 중이구나 생각했다. 그런 순간이면 세상을 향해 부드럽게 헤엄쳐가는 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는 기쁨이 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치유 에세이 작업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까 기대된다.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몰랐던 마음을 확인하고, 자신을 들여다보며, 서로를 더 사랑하고 이해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책 한 권 발간하는 것 이상의 것들을 선물로 받으리라 생각한다. 근사한 우리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가 <사람도서관>이라는 시를 쓴 걸 보면 딸과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꽤 있었던 것 같다. 딸이 헛헛한 마음을 정다운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던가 아니면 글을 쓰며 달래길 바란다. 이 시는 며칠 전 타계한 영화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꼬네의 잔잔한 영화음악을 들으며 우리 가족이 모였을 때 읽으면 좋겠다.
<사람도서관>
사람을 대출하는 도서관
한 번 빌리면 30분간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제 말 하기 급급한 시대에
이야기 들어주며 구절양장 마음을 읽게 한다는,
별별 사람 다 있는 세상에서
어떤 사람으로 읽히고 있는지
그대 속을 읽지 못해 속 태운 날들
상처받아도 속 끓이지 않는 나무를 생각하네
그댈 제대로 짚어내지 못해 딱따구리 되어 쪼아댔지
사랑하여 아프다는 말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네
오지 않는다고 울컥 속울음 울며
폭설에 길이 막혀버린 그대를 정독하지 못해
동동 발 구르며 원망했던 시간
오독의 날이 허다했네
또박또박 읽고 싶은데 속독을 하고 마네
오늘도 난, 사람이란 책 속으로
헛헛한 마음을 밀어 넣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