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동생
나는 생리주기가 비교적 규칙적인 편이다. 매 월 생리주기를 어플로 기록하는데, 대체로 예정일이 일치했다. 여행갈 때는 얄궂게도 '맞지 않았으면' 할 때는 기가 막히게 맞고, '예정대로라면 여행 땐 안 하겠네' 할 땐 또 예정일에 어긋나곤 했지만.
회사에서 계속되는 번 아웃으로 몇 달만이라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임신'이 돌파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프레시 휴가라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아직 연차가 되지 않는 나에겐 남의 일이었다. 내가 휴직을 할 수 있는 건 난임휴가와 육아휴직뿐이었다. 결혼도 했겠다, 내 집도 마련했겠다, 아주 여유롭진 않아도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상황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 열심히'까진 아니지만, 나름 배란일을 계산했고 마침 생리를 2주나 안 하니 '이건 임신이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생리주기도 규칙적이었기 때문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테스트기를 해보았는데, 명확하게 한 줄이었다. 초기에는 테스트기도 정확하지 않다고 해서, 회사 근처 산부인과까지 갔는데 임신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아주 열심히 노력한 것도 아니고, 여러 번 시도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괜히 실패한 기분이 들어 크게 아쉬웠다. 가족들에게 임신인 것 같다고 설레발이 요란스러웠기에 더욱 그랬다.
주변에 먼저 임신한 선배들은 그렇게 발 동동 구르면 더 안 된다고, 아무 생각이 없어야 선물처럼 아이가 온다고 했다. 그래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승진이나 빨리 하자며 열심히 일에 몰두했다. 애 썼지만 승진은 뜻대로 되지 않고, 다음 해를 기약하게 됐다. 그래, 올해도 승진에 집중하자고 결심했는데 그 때 선물과 같은 아기가 오고야 말았다.
연말연시 승진 실패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폭음을 하고, 가족들과 해외여행까지 다녀왔는데 이상하게 생리를 2주 동안이나 하지 않는 것이었다. '설마 아니겠지?' 라는 생각으로 테스트기를 해보니 명확하게 두 줄이었다. 전년도에 가슴 두근거리며 테스트했을 때와는 아주 다른 마음이었다. 먼저 드는 생각은 '승진 어쩌지?'라는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그 날 퇴근하자마자 작년에 갔던 그 산부인과에 가서 임신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설마,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작년 임신소동 때와는 정반대의 마음이었다.
상담할 때 선생님이 테스트기는 해보았냐고 물어서, 두 줄이 나오긴 했는데 소변양이 적어서 정확한지 모르겠다고 하자 선생님은 임신 맞을 거라고, 임신 축하한다고 말씀을 하셨다. 초음파로 점에 가까운 아기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은 오른쪽 난소에서 나왔고 아기 옆에 있는 게 난황이라며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셨다. 나는 승진을 위해 달리는 폭주기관차에서, 순식간에 엄마가 되었다. 초음파를 보는 순간, 이제껏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아기에게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 나는 승진과 출산 모두 이뤄내 보겠다고 아등바등 버텼다. 출산 직전인 지금은 아기에 집중해야겠다 결심했다. 그 이유는 아기에게 미안함을 계속 느꼈기 때문이다. 너를 1순위로 생각하지 못해서 미안해, 선물과도 같은 너를 걸림돌처럼 생각해서 미안해, 축복과 같은 너를 처음 알았을 때 행복감으로 처음 맞이하지 못해서 미안해.
솔직히 승진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져서 자포자기 하게 된 것도 있다. 연말에 평가를 받는데 3분기 중간에 휴직 들어간 나에게 승진티켓을 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후회 없이 내 할 도리는 다 해야겠다는 생각에, '임산부라고 저를 업무에서 배제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남들보다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남들이 챙기지 않는 부분을 더 챙겨 '임산부' 티가 나지 않으려 애썼다.
직장인 임산부에게 회사생활과 출산, 육아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매겨질까. 정해진 답은 없지만, 어느 쪽이든 후회만은 남지 않았으면 한다. 아등바등 버틴 임신 시절이 애처롭게 느껴지면서도 훗날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고, 그와 동시에 아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의 출발이 '회사로부터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이었기에 아무리 사죄해도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마도 워킹맘들은 회사에는 억울한 마음을, 아기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안으며 그렇게 나름 마음의 저울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나의 '엄마 도전기'를 돌아보면 이래저래 충돌과 고뇌는 있었지만, 아기를 만나는 순간 그 동안의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