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서영 Sep 28. 2020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

_언니

놀이터에서 만난 엄마들 _언니

일하는 엄마는 일터에서는 회사일을 해야 하고, 집안에서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 그 사이에서 또 멘탈 관리도 꾸준히 해줘야 한다. 돌봄 노동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시간안배, 체력안배, 멘탈 관리다. 


주변 사람들이 요즘 종종 내게 하는 말이 있다. "대단하다, 어떻게 그걸 할 시간이 있어?"


나도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애초에 부지런한 타입도 아니거니와, 아침형 인간 같은 건 할 자신도 없었다. 체력이 저질인 건 두 말하면 입이 아프다. 


나도 나에 대해 잘 몰랐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 시간’이 특히나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워킹맘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전 받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매일은 아니지만, 새벽에 글을 쓰고, 영상편집을 하거나, 내가 내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나를 위한 일들을 한다.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 눈에는 안쓰러운 일이고, 또 그게 결혼을 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들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중요한 지점이 있다. 누구나 ‘나’라는 사람을 길러내고 있다는 것. 결혼을 했건, 안 했건, 아이가 있건, 없건, ‘나’는 나의 애인이며, 나의 딸이며, 나의 엄마이다. 사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까진, 항상 나를 배제 시키며 살아오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나를 사랑해야 아이도 아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을 때, 더 이상 나를 내 인생에 배제하는 일은 내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자존감’이라고 부른다.  


뜬금없지만, 나를 챙기고 싶은 날엔, 배달음식을 자주 시킨다. 요즘의 한국배달문화는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만족스러운 이유는, 첫째, 낯선 사람과 통화를 안 해도 된다. 둘째, 누워서 핸드폰으로 주문버튼만 누르면 된다. 셋째, 돈도 그냥 선결제하면 되고, 대면을 원치 않는다면 문 앞에 두고 가라고 할 수도 있다. 넷째, 배달의 민족답게 주문버튼을 누른 후 한 두 시간 이내에 배달음식이 도착한다. 


내가 오늘도 배달음식을 시켰다는 건, 오늘은 꼭 멘탈 관리를 해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 저녁밥도 차리기 싫어서 배달을 시켜먹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그럴 수가 없다. 정말 힘들 때는 이유식을 주문해서 먹여본 적이 있었다. 아기 유아식 배달은 너무나 불만족스러웠다. 첫째, 내용물이 너무 부실하다. 둘째, 정말이지 너무 부실하다. 셋째, 이 코딱지만 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그에 달려오는 아이스 팩과 포장박스가 너무나 유해하다. 넷째, 또 그 부실함을 채워보겠다고 재료를 첨가하는 것에 내 시간과 감정이 소비된다. 다섯째, 그냥 차라리 처음부터 내가 만드는 게 낫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여섯째, 그렇게 다시 유아식 만들기를 시작했다. 낮에는 일하는 엄마, 퇴근 후에는 가사 노동하는 엄마. 내 몸이 부서질 거 같이 힘든 날에는 내 밥은 굶어도 아이 밥은 만들었다. 누가 말 한마디 건네면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같은 아파트 단지 엄마들을 만나게 되었다. 놀이터에서 엄마들을 만났다. 한 엄마가 내게 물었다. 


"요즘 반찬 어떻게 해요? 힘들지 않아요? 우리 돌아가면서 반찬 만드는데 같이 할래요?" 


그렇게 나는 엄마들과 함께 아기반찬 품앗이를 시작했다. 반찬품앗이는 나까지 동참하게 되어 7명의 엄마, 7개의 반찬, 총 7일의 담당제가 완성되었다. 당번인 일요일이면 닭고기 완자, 동그랑땡 같은걸 만든다. 아직 두 돌이 안 된 아가들이라 반찬양도 그리 많지 않다. 손톱만한 완자를 다섯 알씩 담고 배달을 나선다. 


"다들 집에 있어요? 지금 배달 갑니다." 


반찬품앗이지만, 반찬만 주고받는 건 아니다. 서로의 사는 이야기, 반찬 이외에도 많은 것을 나눈다. 그렇게 매일 문 앞에 아기 반찬 하나가 배달된다. 


아기들은 기억하지 못 할 뿐이지 부모의 사랑 이외에도 훨씬 다양한 사랑을 먹고 자란다. 아이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것이 평생 그렇다. 누군가에게 내 인생을 넘겨주고 싶지 않은 마음, 책임지기 싫고 손해 보기도 싫은 마음들은 늘 내 마음 속 한 켠에 자리 잡아 있지만, 몸서리치게 도망가고 싶은 순간도, 도움 받고 싶은 순간도 동시에 존재해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흔들어 놓지만, 결국은 그 순간들은 언젠가, 언제나, 내 앞에 우두커니 찾아오고, 우리는 결국 혼자로는 길러낼 수 없다. 


때 마침 고민하지 않고 손 내밀 수 있는 용기, 그거 하나만 있으면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