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하려면 과학 공부를 하라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by 책뚫기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인생을 바꾸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오늘은 유시민 작가님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고 제 나름대로 재구성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책에 담긴 과학 이야기보다 ‘과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보았습니다.


블로그 썸네일_복사본-001.png 유시민,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돌베개, 2023


1. 우리는 유전자의 생존 기계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물은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존하고 적응하고 번식하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생명체는 모두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고 합니다.


유전자는 다양한 생물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복제하여 살아남습니다. 각 생물은 단 한 번의 탄생과 죽음을 경험하지만, 유전자는 수많은 생물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번식을 통해 수백만 년 이상 살아남습니다.


유전자는 보다 잘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합니다. 생물이 번식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변이가 발생하고, 그중 생존에 유리한 변이가 더 많이 번식합니다. 즉 유전자는 생물을 통해 보다 유리하게 변이, 즉 진화합니다.


모든 생물의 유전자는 똑같이 네 종류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네 종류의 염기는 A(아데닌), T(티민), C(시토신), G(구아닌)입니다. 이를 생명의 언어라 할 수 있는데, 결국 모든 생물은 같은 언어로 쓰여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모든 생물은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했음을 입증하는 증거입니다.


공통의 조상이 탄생했습니다. 공통의 조상은 번식을 반복하며 변이를 경험했고, 그때마다 생존에 유리한 개체가 살아남았습니다. 변이가 누적되며 새로운 종이 탄생했고, 새로운 종은 또다시 새로운 종으로 이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마침내 ‘호모 사피엔스(현재 인류)’가 탄생하기에 이릅니다.


모든 생물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입니다. 유전자는 명령합니다.


성장하라. 짝을 찾아라. 자식을 낳아 길러라. 그리고 죽어라. 너의 사멸은 나의 영생이다. 너의 삶에는 다른 어떤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

유시민,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돌베개, 2023, p.128


그런데 강력한 우세종이 된 호모 사피엔스에게 이상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내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호모 사피엔스는 유전자의 명령을 넘어서 자기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습니다. 자기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지 못해 괴로워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스스로 부여한 삶의 목적과 의미 때문에 번식을 포기하거나 목숨을 희생하기도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묻는 ‘철학적 자아’가 싹텄고, ‘철학적 자아’는 인문학의 탄생과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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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문학의 위기 그리고 과학


호모 사피엔스는 ‘존재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질문합니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어떤 삶이 훌륭한가? 죽은 뒤에 어디로 가는가? 어떤 힘이 사회 질서와 문화를 바꾸는가? 역사에 정해진 방향이 있는가?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유시민,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돌베개, 2023, p.28


인문학은 위 질문들에 대해 그럴법한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인문학에는 진리와 진리 아닌 것을 가르는 분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그럴법한 주장과 그럴듯하지 않은 주장 또는 말이 안 되는 주장이 있을 뿐입니다.


인문학이 같은 질문에 수많은 답을 쏟아낸다면 우리는 어떤 답을 선택해야 할까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베스트셀러와 같은 답? 가장 오래 선택받은 스테디셀러와 같은 답? 짧은 경험에 비추어 가장 끌리는 답?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떤 선택이든 정답은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인문학에는 ‘신앙’의 영역이 있는 듯합니다. 마지막에 어떤 답을 선택하는 순간 무엇을 믿을 것이냐는 문제에 부딪치기 때문입니다. 마치 종교를 선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런 점에서 인문학은 자칫 수많은 종교를 나열하는 수준의 결과에 머무를지 모릅니다.


그런데 인문학에서 신앙의 영역이 커지면 커질수록 인문학은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하려 애쓰는데, 인문학이 다양한 종교를 제안하는 수준이라면 과연 사람들이 인문학을 곁에 두려고 할까요? 보다 분명하고 명확한 답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매력 없는 낡은 유물이 되어버릴지 모릅니다.



반면 인문학과는 정반대 되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과학입니다. 객관적 기준 없이 그럴법한 답을 내놓는 인문학과 달리 과학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물질의 증거를 찾아내어 우주의 실체를 밝힙니다.


과학적 발견은 인문학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밝혀냄으로써 천동설 위에 쌓아 올려진 인문학자들의 주장을 모두 무너뜨렸습니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를 진화론으로 밝혀냄으로써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간이 신의 창조물 중 우두머리)’이라는 신화를 무너뜨렸습니다.


과학은 인문학에 없던 분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제공합니다. 덕분에 인문학자들은 과학적 사실 위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점검하고 다시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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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는 무엇인가?


유시민 작가님은 과학적 발견 위에서 자기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유시민 작가님은 ‘나는 누구인가?’란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기 전에 ‘나는 무엇인가?’란 과학적 질문을 던져보라고 제안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들으니 덩달아 ‘인간의 이성’이 떠오릅니다. 과거 인류는 철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이성’을 신성한 것, 생존 본능이 가득한 ‘본성’을 짐승 같은 것이라 여겼습니다. 따라서 인류는 ‘이성’을 잘 가꾸고 발달시키려 했고, 반면 ‘본성’은 억누르고 거세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인류의 수많은 시도는 대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마르크스 이론’입니다. 마르크스는 이기심·소유욕·지배욕 등 착취와 대립을 일으키는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유재산 제도를 폐지하고 이를 거부하는 세력을 탄압함으로써 생산수단을 모두가 똑같이 나누어 가지면 인간의 본성이 이타적이고 배려심 있고 평화를 지향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마르크스 추종자들은 어느 시대 어느 권력자들보다 폭력적이었고 끊임없이 권력을 탐했습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나’ ‘인류’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먼저 인간의 본성을 알고 인정해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핵심 질문이 ‘나는 무엇인가?’입니다.


‘나’는 무엇일까요? 유시민 작가님은 ‘뇌!’라고 답합니다. 그럼 뇌는 무엇일까요? 유시민 작가님은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로 보는 견해’를 받아들인다고 답합니다. 즉 뇌가 내리는 본능적인 판단들은 모두 생존 가능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뇌의 본업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유시민 작가님은 뇌를 이해하기 위해 컴퓨터와 인공지능 이야기를 꺼냅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은 천연지능인 인간의 뇌를 모방해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은 크게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리고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에 ‘데이터’가 늘어나면 ‘소프트웨어’ 성과가 좋아지고 ‘소프트웨어’가 발전하면 ‘하드웨어’ 활용 방식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위 내용을 인간에게 적용하면 뇌가 새로운 ‘데이터’를 학습할수록 뇌 속 ‘뉴런의 연결 패턴’에 달라지고, ‘뉴런의 연결 패턴’이 변화하면 ‘행동 또는 선택’이 바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뇌는 유전자의 생존기계로서 역할에 충실하지만, 새로운 데이터를 학습할수록 생존기계를 넘어서는 차원의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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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왜 선진국에서 인구수가 감소하는가?


동물원에서는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동물 종을 데려와 사육합니다. 사육사들은 자신이 맡은 동물들을 정성껏 돌봅니다. 동물에게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필요한 영양소가 담긴 먹이를 제때 먹입니다.


사육사들에게 가장 벅찬 순간 중 하나는 자신이 키우는 동물이 ‘번식’할 때라고 합니다. 동물들은 환경에 충분히 적응했을 때만 번식을 시도하기 때문에 동물이 번식했다는 것은 사육사가 동물을 성공적으로 사육했다는 증표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다가 한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인류는 그동안 어마어마한 기술 혁명을 이루었고 나아가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저출산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즉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많이 확보할수록 번식이 감소하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요?


제가 추측해 볼 수 있는 가설 하나는 ‘선진국일수록 인류가 적응하기 힘든 환경일 것이다’입니다. 선진국일수록 더 많이 발달된 기술과 문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존기계 뇌’로는 적응하기 힘든 환경입니다. 적응하려면 엄청난 데이터를 학습함으로써 특정 수준 이상의 ‘뉴런의 연결 패턴’을 지녀야만 합니다. 즉 선진국에 태어난 인류는 ‘생존기계 뇌’가 속삭이는 본성을 억누르거나 거부해야 하고, 반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해야 합니다.


추측해 볼 수 있는 또 다른 가설은 ‘철학적 자아의 발달이 인류를 생존기계에서 해방시킨다’입니다. 선진국은 비교적 생존 위험에서 자유롭습니다. 따라서 선진국에 사는 인류일수록 ‘철학적 자아’를 탐구할 시간이 많습니다. 철학적 자아는 자기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음으로써 결혼과 출산이 아니어도 다양한 형태의 행복한 삶이 있다는 걸 발견합니다. 철학적 자아는 어느 순간 ‘생존기계 뇌’를 초월하고 결과적으로 인구수 감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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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책에는 보다 다양한 과학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저는 그중 일부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니 제 이야기로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책의 분위기나 내용을 짐작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으면서 과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습니다. 과학을 알면 나·사회·인류에 대해서 보다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인문학과 과학은 별개라고 생각했었는데 유시민 작가님의 말을 듣고 보니 과학을 알아야 인문학도 깊어진다는 데 깊이 공감했습니다.


과학과 친하지 않지만 과학과 가까워지고 싶으신 분들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정말 추천드립니다. 책 속에 좋은 추천 책들이 담겨 있으니 과학 공부를 시작하는 책으로 마침맞은 책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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