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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뚫기 Sep 03. 2023

죽어서 살아난 아버지

『아버지의 해방일지』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인생을 바꾸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여순사건’ 들어보셨나요? 부끄럽게도 저는 잘 몰랐습니다. 들어보기만 했을 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국가의 독립성을 되찾았습니다. 기쁨도 잠시 우리나라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세력과 민주주의·자본주의 세력으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북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실제로는 전체주의 독재 정부가 들어섰고, 남에는 이승만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자본주의를 표방하는 반공주의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승만이 단독정부를 수립하려 하자 사회주의 세력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특히 제주도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제주 4·3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를 적성지역으로 규정하고 진압하기 위해 지리적으로 가까운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를 제주도에 파견 보냅니다. 그러나 웬걸. 14 연대는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오히려 전라남도 동부 6개 군을 점거합니다. 이승만 정부는 서둘러 진압군을 다시 파견하여 14 연대와 그 지역 민간인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이를 여수·순천 줄여서 여순사건이라고 합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입니다. 소설 속 등장하는 아버지는 14 연대를 이끌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나 봅니다. 아버지는 살아남았지만 아버지는 수많은 동료의 죽음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빨치산·사회주의자로 낙인찍혀 이십 년 가까운 감옥 생활을 보냈고 고문으로 사시가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출소한 뒤에도 전담 순경이 붙어 아버지를 주기적으로 감시하였고, 아버지는 연좌제 때문에 친척들의 출세와 앞길을 막는 존재로 미움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딸이 겪는 이야기입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 때문에 친척들의 미움을 받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도 포기해야 했던, 아버지를 잘못 만나 평생 약자로 살아야 했던 딸이, 원망이 아닌 미안함의 눈물을 쏟기까지, 더 나아가 아버지를 사랑하기까지, 마침내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까지, 덤덤하고 처절한 이야기입니다.



1. 장례식은 왜 할까?


장례식은 왜 하는 걸까요? 사람들은 ‘장례식’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특별한 형식과 법을 만들었습니다. 장례식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전 세계 어떤 곳에서도 그곳만의 형식과 법으로 장례를 치릅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장례식’을 검색해 보니 ‘망자가 편안히 저승으로 가시도록 예를 갖추는 의식’이라 나옵니다. 우리는 예부터 사람이 죽으면 가는 어딘가가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러나 모든 망자가 이승을 쉽게 떠나는 건 아닙니다. 한이 맺힌 망자는 이승을 떠나지 못해 심하면 귀신이나 악령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장례식이란 망자가 귀신이나 악령이 되지 않고 편안하게 이승을 떠날 수 있도록 돕는 의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승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남은 사람 걱정 마시고 이제라도 고단한 삶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저승에 가셔서는 부디 자유롭고 평안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짧지만 삼십 년 조금 넘는 세월 살다 보니 저도 이런저런 장례식장을 다녀오게 됩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다니면 다닐수록 장례식이 의미 있는 일인지 의문을 품곤 했습니다. 허례허식은 아닐까? 일면식도 없는 망자의 장례식장을 수차례 다니면서 저의 조의가 망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수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삼일 내내 바빴습니다. 수많은 조문객들을 대접하고 조의금을 받고 장례식 절차를 밟다 보니 순식간에 삼일이 지났습니다. 마치 외할머니를 추억하지 못하게 하려는 듯했습니다. 도대체 장례식은 누구를 위한 의식인지 의아했습니다. 장례식은 왜 하는 걸까요?



2. 빨치산 아버지의 장례식


자식이라고는 결혼도 하지 않은 딸 하나라 손님이 얼마나 올까, 걱정하는 장례식장 주인의 염려와 다르게 아버지의 장례식장은 북적북적했습니다. 아버지의 빨치산 행적 때문에 출세길이 막혀 평생을 원수로 지내온 몇몇 친척들, 그래도 수십 년을 같은 지역에서 살아가며 크고 작은 일을 함께한 친척들, 아버지의 소학교 동창들, 살아남은 빨치산 동료들, 곡성 가톨릭농민회와 구례 민노당원들까지.


아버지의 사람들 중에는 빨치산 시절 서로 총을 겨누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두 노인네는 매일 아침 투닥거리며 늘그막을 보냈다. 신문을 들고 집에 온 아버지는 어머니와 내 앞에서 평생 교련선생 한 놈이 조선일보만 본다고 박 선생 흉을 보았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말이라 어느 날 짜증이 나서 물었다.

”생각이 다르면 안 보면 되지, 애도 아니고 맨날 싸우면서 왜 맨날 놀아요?”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아랫목에 자리를 잡고 신문을 촥 펴면서 말했다.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

아버지에게는 사상과 사람이 다른 모양이었다.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창비, 2022, p.47


아버지는 순수한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먹고살기 편안한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중요한 것은 사상보다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사상이 다른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건넸습니다. 그래서 배신도 많이 당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속이고 배신한 사람까지도, 아버지는 사랑했습니다.


“오죽흐먼 나헌티 전화를 했겄어, 이 밤중에!”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중략)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그렇다한들 상처받지 않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창비, 2022, p.102


사람을 사랑한 아버지는 가족들에게는 다소 가혹했습니다. 아버지는 가족보다 사회주의가 먼저였습니다.


“시끄러. 오죽흐먼 밤도망을 쳤겄어! 그 사람이라고 호의호식허고 삼시로 그 돈 안 갚겄는가. 오죽흐먼 친정에 연락도 못허고 죽은디끼 살겄어!”

아버지 말끝에 어머니는 서러운 눈물을 쏟았다.

”넘 사정은 그리 빤함시로 마누라 사정은 워째 깜깜 봉사까이. 팔다리가 쑤세서 밥도 제우 해묵고 끙끙 앓니라 잠도 못 자는디, 그 돈 있으먼 나 벵원이나 보내주제.”

아버지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버지는 서늘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노려보더니 나지막이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자네 혼차 잘 묵고 잘살자고 지리산서 그 고생을 했는가? 자네는 대체 멋을 위해서 목심을 건 것이여!”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창비, 2022, p.60-61


장례식장 손님들은 대부분 아버지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손님들의 입을 통해 아버지의 파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화자 기억 속 깊이 숨었던 장면이 되살아나고, 화자는 전혀 몰랐던 아버지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유년 시절 화자의 전부였던 아버지. 껌딱지처럼 아버지와 붙어 다녔던 딸. 강에서 몸을 씻고 나온 아버지, 내게는 없는 걸 가지고 있는 아버지, 그 충격으로 다음날 서서 소변을 보기 시작한 딸. 한 번도 목숨을 걸어본 적 없는 자기와 달리 무언가를 위해 목숨을 걸어보았던 아버지. 감옥살이를 하며 자기와 어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했을 아버지. 이차원에 갇혀 있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기 시작하자 화자는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의 마음속을 헤아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구의 딸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데 나는 평생을 바쳤다.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아버지를 위한 울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울음이었다.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창비, 2022, p.224-225



3. 마음을 헤아린다는 건


장례식을 치르면서 딸의 마음속에 아버지가 조금씩 조금씩 입체적으로 살아납니다. 딸은 어떻게 자기 마음속에 아버지를 살려낼 수 있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딸이 아버지를 살려낼 수 있었던 핵심은 ‘마음을 헤아리는 일’입니다.


장례식을 치르며 딸은 아버지의 사람들을 차례로 만났습니다. 덕분에 딸은 어릴 적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때때로 자기도 모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손님들은 말과 사진으로 들려주고 보여주었습니다. 비로소 딸은 아버지의 삶에 자신을 넣어봅니다. 아버지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해 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을 추측해 봅니다. 상상해 본 적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 딸의 기억 속에 덧붙여집니다.


질 게 뻔한 싸움을 하는 이십대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목숨을 살려주었던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려 했던 이십대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정 속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는 듯했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창비, 2022, p.181




4. 죽어서 살아난 아버지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딸은 비로소 살아있는 아버지를 마주했습니다. 원망 속에 갇혀 있던 아버지가 비로소 해방되어 한 명의 사람으로 살아났습니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소중한 사람을 욕심과 기대 속에 가두었다가 잃고 나서야 비로소 한 명의 사람으로 마주하는 것처럼요.


우리는 왜 죽음 뒤에야 소중함을 깨달을까요? 왜 죽고 사라진 뒤에야 망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걸까요? 아마도 영원할 거란 착각. 그제도, 어제도 그랬으니, 오늘도 그냥 그렇게 사는 관성. 영원이란 착각과 속도가 붙어버린 관성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끝이 납니다. 죽음은 비로소 소중함을 돌아보게 하는 힘인가 봅니다.


장례식은 왜 하는 걸까요? ⟪아버지의 해방일지⟫ 읽고 제가 내린 답은 영원이란 착각과 속도가 붙어버린 관성에서 벗어나 망자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일면식도 없는 망자의 장례식장에 왜 가야 할까요? 망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잃은 지인에게 망자를 추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가신 분은 어떤 분이셨어? 어쩌다 돌아가시게 되었어? 돌아가신 지금, 머릿속에 가장 맴도는 모습이 있어? 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때 그분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해.”


지인이 망자를 추억하고, 망자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그리고 함께 추억해 주는 일.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곳, 그곳이 장례식장이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장례식이 주는 교훈을 미리 깨닫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영원이란 착각과 속도가 붙어버린 관성을 죽음 이전에 끊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요? 매 순간의 인연에 감사하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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