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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뚫기 Sep 23. 2023

'시간이 흐른다'는 착각이 만들어낸 허상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지음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인생을 바꾸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었습니다. 헤르만 헤세에게 무척이나 감사합니다. 헤르만 헤세는 자기 내면에 이르는 길을 끊임없이 질문했고, 그에 대한 답을 여러 권의 책을 통해 남겼습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저로서는 평생에 걸쳐 고민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헤르만 헤세가 무척 고맙습니다.


⟪싯다르타⟫ 책을 펴기 전부터 무척이나 두근거렸습니다. 저는 ⟪수레바퀴 아래서⟫와 ⟪데미안⟫을 통해 이미 헤르만 헤세의 팬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수행으로서 불교’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런데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불교적 세계관을 만났다? 헤르만 헤세 안에서 ‘내면에 이르는 길’과 ‘불교’가 어떻게 합쳐졌을까? 너무너무 궁금했습니다.



1. 바라문의 가르침


싯다르타는 인도의 한 바라문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괜찮은 양반집에 태어난 모범생이라고 할까요? 수려한 외모, 불타는 지식욕,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 완벽한 예의를 갖춘 싯다르타는 만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장차 바라문 중 우두머리가 될 수도 있는 될성부른 떡잎이었습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늘 갈증을 느꼈습니다. 바라문들의 지혜를 대부분 공부했지만 그의 그릇은 가득 차지 않았습니다. 목욕재계라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정신의 갈증과 마음의 불안을 해소해 주지도 못하였습니다. 제사라는 것은 훌륭한 일이었지만 그것이 행복을 주지도 못하였습니다.


싯다르타는 오직 하나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자아로부터 벗어나 마음을 텅 비운 평정함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초탈하는 것, 일체의 자아를 극복하고 사멸함으로써 마음속에 있는 모든 욕망과 모든 충동이 침묵한 상태. 그 끝에 마주할 가장 내밀한 무언가, 그 위대한 비밀에 닿고 싶었습니다.


결국 싯다르타는 바라문인 아버지께 이별을 고합니다. 아버지는 분노하여 고함을 쳤지만, 싯다르타의 완고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2. 사문의 가르침


싯다르타는 친구 고빈다와 함께 집을 나와 사문들에게 가르침을 구합니다. 사문들은 고행수행자들이었습니다.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그들 곁에서 단식, 가시덤불, 호흡 멈추기, 극한의 상황에서도 평정함을 유지하는 침잠 수련에 매진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감각을 죽이고, 자기의 기억을 죽이고, 자신의 자아로부터 빠져나오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그러나 싯다르타의 갈증을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침잠이란 무엇인가? 육체를 떠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단식이란 무엇인가? 호흡을 멈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아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며, 그것은 자아 상태의 고통으로부터 잠시 동안 빠져나오는 것이며, 그것은 인생의 고통과 무의미함을 잠시 동안 마비시키는 것이야.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1997, p.34


싯다르타는 ‘자기 자신을 초탈하는 길은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하기 이르렀습니다. 바라문과 사문 중에는 해탈에 이른 사람이 없었고, 그 이유는 애당초 해탈은 가르치고 배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야만 가능하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싯다르타는 목마른 갈증을 품고, 친구 고빈다와 사문들의 곁을 떠나기로 합니다.



3. 고타마의 가르침


완성자, 해탈한 자, 고타마(부처)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넘쳐흘렀습니다.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소문을 타고 고타마를 찾아갔습니다.


고타마는 완성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고타마의 설법에 탄복하였고, 고타마의 설법을 듣고 난 수많은 수행자들은 기꺼이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싯다르타의 친구 고빈다도 고타마에게 제자로 받아들여지기를 요청하였고, 고타마는 고빈다를 제자로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완성자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도 고타마의 제자가 되기를 거부합니다. 해탈은 가르칠 수 없다, 배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은 죽음으로부터 해탈을 얻으셨습니다. 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은, 당신이 그것을 얻기 위하여 나아가던 도중에 당신 스스로의 구도 행위로부터, 생각을 통하여, 침잠을 통하여, 인식을 통하여, 깨달음을 통하여 얻어졌습니다. 그것이 가르침을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탈은 가르침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1997, p.55



4. 깨달음 1. 왜 자아를 극복하지 못하였던가?


싯다르타는 완성자 고타마와 친구 고빈다의 곁을 떠났습니다. 비로소 싯다르타는 처음으로 바라문에도, 사문에도, 고타마에도, 어느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홀로 선 자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 싯다르타의 마음에 기쁨과 사랑이 차 올랐습니다.


싯다르타는 질문했습니다. 왜 지금껏 자아를 극복하지 못하였던가?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 싯다르타가 나에게 그토록 낯설고 생판 모르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는 것, 그것은 한 가지 원인, 딱 한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나를 너무 두려워하였으며, 나는 나로부터 도망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1997, p.61


싯다르타는 지금껏 자신이 ‘자아’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자아가 두려웠기 때문에, 자아가 모든 불행의 씨앗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싯다르타는 늘 자아를 거부하고 자아와 싸웠습니다. 그러나 자아로부터 도망치는 건 잠깐일 뿐 여지없다 다시 자아로 돌아와 윤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싯다르타는 자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진정한 극복은 거부도 회피도 투쟁도 아닌 이해와 사랑이 먼저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싯다르타는 그동안 거부했던 ‘감각’ ‘욕망’의 세계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던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새롭게 도착한 마을의 가장 아름다운 여인 ‘카밀라’와 친구가 되어 그녀에게 사랑의 기쁨을 배우기로 결심한 겁니다.



5. 깨달음 2. 깨달음은 가르침이 아니라 체험에서 온다.


싯다르타는 카밀라의 안내에 따라 사랑을 배우고 부자가 되는 길도 걸었습니다. 싯다르타는 속세 사람들이 하는 수많은 일들을 배우고 해냈습니다. 그는 속세 사람들의 일을 사랑했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는 속세 사람들이 짐승이나 어린아이 같고 사유의 방식으로 살아왔던 자신이 더 훌륭하다는 우월감을 놓지 못했습니다.


싯다르타는 속세의 삶에서 점점 욕망의 노예가 되어 갔습니다. 엄청난 부도 쌓고, 카밀라와 사랑의 쾌락을 나누고, 이윽고 도박의 늪에 빠지기에 이릅니다. 방탕한 삶에 갇힌 싯다르타는 어느 날, 카밀라의 얼굴에서 섬세한 선들과 잔 주름살이 만들어내는 가을과 늙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일이 신호탄이 되어 싯다르타는 끝없는 유희의 끝이 불행과 절망이라는 걸 깨닫고, 그 순간 자신의 정원과 도시를 떠났습니다.


‘알 필요가 있는 것이라면 모조리.’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몸소 맛본다는 것, 그건 좋은 일이야. 속세의 쾌락과 부는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어린 시절에 배웠었지. 그 사실을 안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제야 비로소 내가 그것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군. 이제 나는 그 사실을 제대로 안 거야. 그 사실을 단지 기억력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나의 두 눈으로도, 나의 가슴으로도, 나의 위로도 알게 되었어. 그것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로군!’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1997, p.142-143



6. 깨달음 3. 시간이라는 착각


싯다르타는 도시에서 벗어나 강가에 도착했습니다. 강물이 무척이나 아름다웠으며 강물이 싯다르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새로이 깨어난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강물을 사랑하라! 이 강물 곁에 머물러라! 강물로부터 배우라!


싯다르타는 강가에서 일하는 뱃사공의 제자로 들어갔습니다. 그에게 뱃사공의 일을 배우고, 강에게 그 이상의 것들을 쉴 새 없이 배웠습니다.


강으로부터 그는 쉴 새 없이 배웠다. 그는 강으로부터 무엇보다도 경청하는 법, 그러니까 고요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영혼, 활짝 열린 영혼으로, 격정도, 소원도, 판단도, 견해도 없이 귀 기울여 듣는 것을 배웠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1997, p.154


그리고 아주 큰 깨달음. 싯다르타는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아, 일체의 번뇌의 근원이 시간 아니고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그 근원은 모두 시간 아니고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인간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극복하는 즉시, 인간이 그 시간이라는 것을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즉시, 이 세상에 모든 힘겨운 일과 모든 적대감이 제거되고 극복되는 것이 아닌가?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1997, p.155-156



7. 깨달음 4. 감각과 사유의 세계의 단일성(둘이 아닌 하나)


싯다르타가 도시를 떠나던 날, 카밀라의 뱃속에는 싯다르타와 카밀라의 아들이 잉태했습니다. 그 후로 십여 년이 흘러 카밀라와 아들은 뱃사공 싯다르타에게 이어지고, 카밀라는 뱀에 물려 생을 마무리했습니다. 싯다르타는 사랑했던 여인 카밀라의 장례를 치러주었고, 사랑하는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는,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이 허상임을 깨달았던 싯다르타는, 교육이란 허상임을 깨달았던 그 싯다르타는, 깨달음은 직접 체험함으로써 스스로 얻는 것이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자신의 아들에게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싯다르타는 자신의 아들을 사랑했고, 그래서 아들은 덜 괴롭기 바랐습니다. 그는 아들을 교육하려 했으며, 그로써 아들이 자기보다 수월한 인생을 살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싯다르타는 족쇄이자 감옥이었기에 끝내 아들은 뗏목과 돈을 훔쳐 도망칩니다.


싯다르타는 괴로움에 잠겼습니다. 한동안의 방황 끝에 싯다르타는 자신의 어리석은 욕망을 알아차리고, 욕망으로 인한 상처가 장차 틀림없이 활짝 꽃을 피우고 빛을 발하게 되리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후 싯다르타는 어린 아이나 짐승 같다고 여겼던 속세 사람들의 욕망과 충동들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무한한 업적을 이루고, 여행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무한한 고통을 겪고, 무한한 고통을 감수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들의 바로 그런 맹목적인 성실성을 비로소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유의 방식으로 살아온 자신이 우월하다는 착각이 아들의 상실을 경험함으로써 비로소 부서졌던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강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습니다. 자신의 괴로웠던 기억들이 한데 어우러져 흘러가다가, 모두가 강물이 되었습니다. 강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가 비가 되어 하늘로부터 다시 떨어져서 샘이 되고, 시내가 되고, 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뻤던 기억들이 한데 어우러져 새롭게 흘러가다가, 모두가 강물이 되었습니다. 어느새 그 소리들이 합쳐져 기쁨의 소리와 고뇌의 소리, 선한 소리와 악한 소리, 웃는 소리와 슬퍼하는 소리, 백 가지, 천 가지의 소리들이 끼어들어 그 소리와 한 동아리를 이루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그 수많은 소리들을 서로 구분할 수가 없었으니, 기쁜 소리를 슬픈 소리와 구분할 수도, 어린애 소리를 어른 소리와 구분할 수도 없었다. 그 모든 소리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중략) 이런 것들이 합해져서, 그러니까 일체의 소리들, 일체의 목적들, 일체의 그리움, 일체의 번뇌, 일체의 쾌락, 일체의 선과 악, 이 모든 것들이 함께 합해져서 이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1997, p.195-196



8. 고빈다와의 재회


고빈다는 부처의 제자가 된 이후로 성실하게 구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완성자의 모습에 도달하지 못했고, 인생의 늘그막에 뱃사공 싯다르타와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고빈다는 싯다르타에게서 완성자의 모습을 보았고, 그에게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자신의 깨달음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기 위해 만든 장면인 듯합니다.


‘모든 진리는 그 반대도 마찬가지로 진리이다!’

‘진리란 오직 일면적일 때에만 말로 나타낼 수 있으며, 말이라는 겉껍질로 덮어씌울 수가 있다.’


싯다르타는 인간이 만들어낸 ‘진리’에 사로잡히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진리라는 것은 오직 한쪽만을 비추기에 전체성이나 완전성, 단일성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진리에 집착하는가? 왜 우리는 세계를 일면적으로 보는가?’

‘시간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가 가장 충격 먹었던 부분입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니. 최근 유튜브에서 박문호 교수님의 강의 중 ‘인간은 시간이 흘러간다고 착각한다.’라는 말이 겹쳐지면서 거대한 망치가 저의 무언가를 와장창 깨는 듯한 느낌입니다. 아직은 그 말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만, 거대한 착각의 종말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선과 악, 미와 추, 옳고 그름’ 등으로 구분하려면 ‘시간이 흐른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만물은 둘로 쪼개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언젠가’란 말은 허상이 됩니다. 따라서 ‘언젠가 해탈에 이른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다.’는 식의 말은 모두 허상이 됩니다.


시간이 존재한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돌멩이는 단지 한 개의 돌멩이일 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며, 그것은 마야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순환적인 변화를 거치는 가운데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정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나는 그것에도 가치를 부여해 주는 바이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1997, p.207-208


하지만 시간이 존재한다는 착각을 깨면 달리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돌멩이는 돌멩이다. 그것은 또한 짐승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신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한 부처이기도 하다. 내가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장차 언젠가는 이런 것 또는 저런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항상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민음사, 1997, p.208


‘지혜는 말로 전달될 수 없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해탈, 윤회, 열반이라는 것들도 모두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열반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열반이라는 단어만 존재할 뿐입니다. 해탈은 존재하지 않으면 다만 해탈이라는 단어만 존재할 뿐입니다. 모두 인간의 인식이 빚어낸 허상입니다.



9. 자아가 만들어낸 허상


박문호 교수님은 ‘시간만 있을 뿐 순간은 없다’고 말합니다. 시간을 순간으로 쪼개면 시간이 흐른다는 착각이 만들어진다고 말합니다. 마치 만화영화처럼, 멈춰있는 사진이 연속되면 움직인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중에 먼저 있는 것을 과거, 지금 있는 것을 현재, 앞으로 있을 것을 미래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강물을 어느 한 조각, 한 순간으로 쪼갤 수 없듯이 시간을 순간으로 쪼갤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강물을 과거의 강물, 현재의 강물, 미래의 강물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할 수 없다면 강물은 늘 하나입니다. 마찬가지로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할 수 없다면 시간은 늘 하나입니다.


시간을 여러 개로 구분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자아뿐입니다. 하지만 우주에 멈춰있는 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순간이라는 건 인간 자아가 만들어낸 허상입니다.


시간이 ‘쪼개진 순간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라면, 만물이 둘이 아닌 하나가 됩니다. 저는 아직 이 명제가 마음 깊이, 머리 깊이 이해되지는 않습니다만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저는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이며, 제가 그렇듯 당신도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과 제가 둘이 아닌 하나일 수 있음을 저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싯다르타⟫를 요약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옳음을 주장하면 틀림이 태어나고, 옳고 그름이 선명해질수록 개인성은 희미해집니다.


헤르만 헤세의 언어를 빌리면,

시간을 순간으로 쪼개면, 옳고 그름이 태어납니다. 옳고 그름이 선명해질수록 단일성은 희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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