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 로버트 D. 퍼트넘 지음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소개하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저는 두 살 된 아들, 담박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육아휴직을 써서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있는데요. 아이를 키우며 자주 느끼는 점은 ‘어른이 없다.’입니다. 담박이는 아직 친구보다 어른이 필요한 시기인데요. 다양한 어른들과 인사하고 감정을 주고받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돈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던 듯합니다. 명절 때 온 가족이 모이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는 과거에 한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듯한데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네는 어떻게 살고 있네, 누구네 아들이 사고로 죽었네, 누구네 손녀가 결혼을 하네 등등. 듣고 있다 보면 그 당시에는 공동체라는 게 있었구나 싶습니다.
제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니 ‘동네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제 어머니는 만화 가게를 하셨기에 저는 만화방네 아들이었고, 다방집네 아들, 문구점네 아들, 슈퍼네 아들, 정육점네 아들 등등. 지금 생각해 보니 신기하게 아들이 많았네요. 하여튼 저는 ‘동네 친구들’과 매일 놀았는데 돌아보니 ‘동네 어른들’의 눈길과 손길 덕분이었던 듯합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로버트 D. 퍼트넘이 2015년에 출간한 ⟪우리 아이들⟫입니다. 로버트는 밝고 희망찼던 ‘아메리칸드림’이 1970년대 이후로 어둡고 끔찍한 ‘아메리칸 악몽’으로 변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내 아이에게 친절한 어른도 돈으로 사야 하는 세상에서 가난한 아이들이 고립되어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발합니다.
아메리칸드림이란 ‘성공할 수 있는 기회 평등’을 뜻합니다. 미국에서는 동등한 능력과 노력을 하면 누구나 사회적 지위를 높일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지닌다는 겁니다. 따라서 가난한 집에 태어났더라도 능력이 있고 노력을 하면 높이 올라가는 게 당연하고, 부자 집에 태어났더라도 능력이 없고 노력을 하지 않으면 낮게 내려가는 게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합니다. 로버트 또한 아메리칸드림은 옛말이고 아메리칸 악몽이 현실이라고 말하는데요. 지금은 아무리 능력이 있고 노력을 해도 가난한 집에 태어나면 올라갈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현재 미국은 태어나는 순간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나라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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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드림이 아메리칸 악몽으로 변하기 시작한 건 미국의 제조업이 몰락하는 1970년대 이후입니다. 제조업이 몰락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부유한 사람들은 그 지역을 떠났습니다. 서로 이름을 알고 지냈던 이웃들이 부의 정도에 따라 갈라졌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끼리,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끼리 모이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주거지 분리’가 아메리칸 악몽의 핵심 요인인데요. ‘주거지 분리’는 점점 심해져 가난한 마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찾아왔고, 부유한 마을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미국은 극단적인 두 세계로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로버트는 가난한 지역과 부유한 지역에 사는 아이들 및 부모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 속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을 뽑아보았는데요.
부유한 사람들의 세계 속 자주 등장하는 표현들입니다.
공동체, 가족 저녁 식사, 사립학교, 부모의 학교 참여, 과외활동, 학구적인 학교 분위기, 책, 공부, 능력 있는 부모 친구들, 확신, 자신감, 계획적인 결혼과 출생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 속 자주 등장하는 표현들입니다.
알코올, 마약, 근친상간, 강간, 폭력, 폭행, 체벌, 갱단, 배다른 형제자매, 혼외출산, 의도하지 않은 출생, 위탁 가정, 우울, 불신, 교도소, 소년원
앞서 설명드렸듯 아메리칸 악몽의 핵심 요인은 ‘제조업 몰락으로 시작된 주거지 구분’입니다. ‘빈곤’과 ‘주거지 구분’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는 걸 죄로 만듭니다. 왜 그런지 지금부터 소개드리겠습니다.
아이가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는 유년기와 십 대 후반이라고 합니다. 유년기에 인지정서적 발달의 토대가 완성되고, 십 대 후반에는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컨설팅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가난한 집 아이들은 두 시기는 물론 모든 시기에 필요한 지원을 받기 어렵습니다. 첫째, 가난한 집 아이들은 온전한 부모가 없습니다. 돈을 버느라 바쁘기만 하면 다행입니다. 약물, 알코올, 갱단에 빠진 부모가 부지기수입니다. 그 속에 아이들은 방치되거나 심한 폭력과 폭언에 노출되기 마련입니다.
둘째, 부모의 양육 방식의 차이입니다. 부유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장려하는 전략’을 씁니다. 아이가 자기 재능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하고 안전한 환경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을 사용하는데 “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 보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니?” 등의 질문을 통해 아이에게 생각할 시간과 기회를 줍니다.
“해보렴. 실패하면서 배우는 거란다.”
반면 가난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예방적인 전략’을 씁니다. 기회보다 위험이 훨씬 더 많은 거친 이웃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난한 부모들은 강력한 체벌을 사용합니다.
“하지 마! 그러다 다쳐! 사람을 믿어서는 안 돼!”
셋째, 사회적 자본의 차이, 쉽게 말해 인맥 차이입니다. 부유한 부모들은 부유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의사, 변호사, 사업가, 고위 공무원 들입니다. 인맥이 부족하면 돈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바이올린 선생님, 전문 심리상담가, 진로 컨설턴트가 필요하면 지인에게 소개를 받아 능력 있는 사람을 고용합니다.
반면 가난한 부모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인맥이 없습니다. 지인이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따라서 가난한 집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찾아볼 기회도 부족하고,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볼 수조차 없습니다. 심지어 가난한 아이들을 지원하는 국가 정책이 있어도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돈입니다.
평균적으로 아이들은 태어난 후 첫해 동안에 엄마가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을 때 더욱 잘 살아간다.
아동발달 전문가 제인 월드포겔
로버트는 부모가 아이를 키울 때, 특히 아이가 어릴 때, 돈 때문에 허덕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국가나 시에서 아동수당, 육아지원금, 출산축하금 등을 지원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시작된 정책인가 봅니다.
또 하나의 해결책은 ‘유료 과외 활동 폐지’입니다. 미국 공교육에서는 무료 과외 활동을 강조해 왔습니다. 무료 과외활동을 강조한 이유는 학생들이 미식축구, 밴드, 프랑스어 동아리, 학생 신문 등의 과외 활동을 통해 ‘소프트 스킬’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프트스킬이란 사회와 조직 생활에 필요한 의사소통, 협상, 팀워크, 리더십 등을 활성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과외활동은 소프트 스킬은 물론 훌륭한 멘토를 만날 기회도 제공합니다. 예를 들면 럭비부 감독이나 코치는 아이에게 가족이 아닌 어른으로서 훌륭한 멘토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은 다양한 과외활동에 참여하고, 실제로 과외활동에 참여한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더 큰 사회적 성공을 이룬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 학교가 과외활동을 유료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소프트 스킬을 배울 수 있는 기회와 더불어 훌륭한 멘토를 만날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로버트는 과외활동을 얼른 무료로 전환하라고 강조합니다.
(위에 소개한 해결책은 즉시 시작할 수 있는 해결책들입니다. 장기적인 해결책이 궁금하신 분들은 책 속에...)
이기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 아들 담박이는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우선 돈이 허락하는 한 육아 휴직을 통해 아이를 안정적인 환경에서 돌봅니다. 돈이 부족하여 복직을 하게 되는 순간부터 지인보다는 ‘전문적인 돌봄 기관’에 아이를 맡깁니다. 더불어 다양한 어른들과 만나게 해 주어 아이가 다양한 상호작용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합니다. 물론 따뜻하고 허용적인 어른들이어야만 합니다.
가족 저녁 식사는 꼭 함께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이에게 책을 읽어줍니다. 이를 미국에서는 ‘굿나이트 문’이라고 하더군요. 또한 아이가 책과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집에는 TV를 없애고 저와 아내가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함께 도서관에도 가고 서점에도 가며 일상 속에 늘 책이 함께 하도록 합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면 좋은 학군으로 이사 갑니다. 잘 사는 학군이란 지지와 격려를 받고 자란 아이들이 많은 지역입니다. ⟪우리 아이들⟫ 속 한 부유한 어머니는 치열 교정기를 한 아이가 많은 동네로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치열 교정기를 지지와 격려가 있는 가정의 표상으로 여겼나 봅니다. 좋은 학군의 집값은 비싸겠지만요.
아이가 다양한 과외 활동에 참여하게끔 합니다. 특히 신체 활동 종목은 꼭 하나 넣습니다. 주기적인 신체 활동이 두뇌 활성화에 중요하다고 하니까요. 과외 활동을 선택할 때는 지도자가 멘토로 삼을만한 사람인지 판단합니다. 기계적으로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인지 자신의 삶과 직업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인지를 봅니다. 훌륭한 지도자의 과외 활동은 비싸겠지만요.
아이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발전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충분히 시도하고 충분히 실패하게끔 기회를 줍니다. 틈틈이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으로 아이가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점검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아이를 위해 인맥 관리도 합니다. 되도록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주로 모여있는 단체 활동에 참여합니다. 특히 저의 인맥은 아이가 십 대 후반 자신의 진로를 고민할 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인맥을 유지하는 데 돈이 많이 들겠지만요.
돈이 많이 필요하겠군요. 어라 저는 교사라 겸직이 불가능한데요… 유튜브나 블로그, 출간 등으로 돈을 버는 건 가능하니 그쪽에 시간을 쏟아야겠어요! 어라 그러면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부족해지는데요? 능력이 없기도 하고… 됐다 됐어. 담박이 너는 그냥 아빠 사랑이나 받고 자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