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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뚫기 Jan 26. 2024

유토피아로 본 자본주의의 한계와 해결법

『유토피아』 토마스 모어 지음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소개하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요즘 먹고 살기 힘드시죠? 높은 물가, 높은 금리, 높은 환율, 높은 부채, 높은 경쟁률. 반면 낮은 성장률, 낮은 임금, 낮은 워라밸. 월급에서 빚을 갚고 나면 잔돈만 남거나 심지어 빚을 갚지 못해 절망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고 해요.


삶이 지나치게 힘들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뀔 때면 부당한 세상에 분노하곤 해요. 재벌 2세나 건물주 같은 금수저들은 사치스런 삶을 누려도 재산이 불어나는데,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폐지 수거, 청소부, 택배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일해도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져요.


처음에는 전재산을 털어 집을 사게 하더니 이제는 잔뜩 빚을 내서 집을 사게 합니다. 부자들은 서민들의 빚을 이용해 자신들의 재산을 불리고, 서민들은 그 착취 구조 안에서 하루 종일 일해도 갚기 어려운 빚을 져요.


온갖 법과 제도는 부자들은 위한 것인데다가 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지고요. 이 때문에 서민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변호사를 고용할 돈이 없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요.


나라에 절망, 원망, 분노가 쌓이면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는데요. 1500년대의 유럽 또한 마찬가지였나 봐요. 겉으로는 공공의 이익을 주장하는 공화국들이 결국 소수의 가진 자들을 위한 나라가 되어가는 모습에 분노한 ‘토마스 모어’는 정의로운 이상적 국가를 꿈꾸며 《유토피아》를 출간합니다.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2020


책표지 아래에 담긴 출판사의 책소개 문구가 인상적이에요.


이상향에 관한 모든 사상과 실천적 논의의 출발점
새로운 사회를 꿈꿀 때마다 다시 찾는 필독서


우리 사회에 절망과 두려움이 깊어지는 지금.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우리 사회에 어떤 조언과 희망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1. 모든 원흉은 사유재산


토마스 모어는 사회에 정의가 사라지는 가장 핵심 원인으로 사유재산을 꼽았어요. 달리 말하자면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제도, 자본주의를 지적하는 셈이네요.


토마스 모어가 사유재산을 위험하게 여긴 이유는 사유재산이 결국 양극화를 불러오기 때문이에요. ‘돈이 돈을 부른다.’는 말이 있듯 부자는 가난한 자에 비해 돈을 벌기 쉽지요. 따라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기 마련이고, 심지어 부자는 보다 적극적으로 착취 구조를 만들어 가난한 자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어요. 끝내 부자는 자신의 부를 지키려고 부자를 위한 법과 제도가 많아지게끔 힘을 쓰지요.


따라서 토마스 모어는 공공의 이익을 보장하는 진정한 공화국을 만들려면 ‘사유재산’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요.



2. 사유재산이 사라진 이상적 세계, 《유토피아》


토마스 모어가 꿈꾸는 나라, 유토피아에는 사유재산이 없다고 해요. 모두가 공동 소유하고 공동 분배받기에 공산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토마스 모어는 가상 인물의 여행담 형식으로 유토피아의 모습을 그려주는데요. 유토피아의 모습을 지리, 도시, 관리, 직업, 사회 조직, 분배 제도, 양육, 학문, 노예, 전쟁, 종교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줘요.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토마스 모어의 섬세한 상상력이 무척 놀라운데요. 저는 그 중 유토피아의 의식주와 워라밸 문화를 소개드려볼게요.



먼저 의복 문화를 소개드릴게요. 유토피아 사람들은 거의 똑같은 옷을 평생 입는다고 해요. 그들은 작업장에서 일할 때 수명이 7년인 수수한 가죽옷을 입고, 외출할 때는 작업복 위에 외투를 걸친데요. 그 외에 정장 한 벌이 있는데 그 정장을 2년 동안 입는다고 해요.


벌써부터 싸한 느낌이 저를 감싸는데요. 모두가 같은 옷을 평생 입는다니… 으스스한 게 독자님도 조금 무섭지 않나요?



다음은 음식 문화예요. 사람들은 일을 마치고 관청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데요. 모두가 필요한 양만큼의 식료품을 분배받습니다. 추가로 필요한 게 있으면 더 받아올 수는 있다고 해요. 관청 식탁에 앉을 때는 젊은 부부가 앉는 식탁과 나이든 부부가 앉는 식탁이 번갈아 놓여 있어 지정된 자리에서 먹어야 하고, 젊은 사람들의 언행을 감시 감독하기 위해 나이든 사람들을 중간중간 배치한다고 해요.


식사 전에 도덕성을 함양하는 글귀를 읽고, 식사 시간을 통해 마을 사람들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어 서로를 알아간다고 해요.



주거 문화도 비슷한 냄새가 나요. 모든 집은 3층집으로 석재나 벽돌로 지어졌고, 사람들이 살게 될 집은 10년마다 추첨으로 새로 정한데요. 모든 집 뒤편에 자기만의 정원이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 정원을 최고의 정원으로 만들려고 치열하게 경쟁한다고 하네요.



마지막으로는 부러운 그들의 워라밸 문화예요. 유토피아 사람들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고 오전에 3시간, 오후에 3시간, 딱 6시간만 일한다고 해요. 일을 마친 뒤 점심과 저녁을 함께 먹고, 저녁 8시에 잠자리에 들어서 8시간 동안 자는데요. 그 외 나머지 시간은 여가시간이라고 해요.


유토피아 사람들은 여가시간 대부분을 책을 읽거나 강좌를 듣는 데 쓴다고 하고요. 저녁 식사 후에는 공동 식당에서 음악을 연주하거나 담소를 나누거나 보드게임 같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데요.



유토피아 사람들은 사유재산이 없이 모든 물건이 공동 소유예요.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금과 은, 보석을 하찮은 것이라 여기게끔 교육받기에 금은보화에 대한 욕심도 없다고 하고요.


그렇기에 유토피아 사람들은 소유욕, 탐욕, 사치, 교만, 과시욕 등에서 자유롭다고 해요. 그들은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참된 쾌락을 소중히 하고 존중하며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회를 이룩한 것이지요.



3. 《유토피아》의 한계


사실 토마스 모어가 제안한 유토피아 아이디어는 실패라는 걸 역사가 증명했어요. 제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공산주의 국가들이 무너지고 자본주의 국가들이 승리했으니까요.


유토피아가 실패한 핵심 이유는 토마스 모어가 ‘인간의 본성’을 무시했기 때문이에요. 토마스 모어는 사유재산을 없애면 인간의 본성이 도덕적으로 우월하게 바뀔 것이라 예상했어요. 소유욕, 사치, 교만, 과시욕 등이 사라지고 각자의 미덕을 소중히하고 서로 존중하며 배려, 봉사할 것이라 기대했지요.


하지만 역사는 공산주의 국가의 관리들이 자본주의 국가의 관리들 못지 않게, 오히려 더 심하게 부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즉 인간 DNA에 새겨진 이기심, 소유욕, 지배욕은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정도로는 없애지 못한 것이지요.


토마스 모어도 ‘인간의 본성’을 염두했었는지 유토피아에는 서로를 감시하고 감독하는 모습이 꽤 많이 나오는데요. 오로지 감시 감독하는 역할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식당에서도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을 감시하게 하기도 하고요. 교회에서도 가구주가 가구원들을 감시하도록 가구원들 뒤에 앉고, 미성년 자녀들은 성인들 사이사이에 앉혀서 장난치는 일이 없도록 한데요. 심지어 종교적으로는 죽은 사람이 늘 자기들 곁에 있다고 믿음으로써 보이지 않는 감독관도 있어요.


타락할 기회도 없고, 숨을 곳도 없으며, 비밀리에 만날 장소도 없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살아가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나갈 수밖에 없고, 여가 시간을 건전하게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p.131


이 구절에도 담겨있듯 토마스 모어도 인간이란 언제든 타락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겼던 듯해요. 그리고 토마스 모어의 염려는 역사에도 드러났지요. 비교적 감시와 감독으로부터 자유로운 공산주의의 높은 관리들은 여지없이 타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요.



또 한 가지, 저는 《유토피아》를 읽으면서 소름 돋을 때가 있었는데요. 돌아서 생각해보니 ‘지독한 집단주의’ 때문인 거 같아요. 토마스 모어가 생각한 정의는 ‘공공의 이익’이었기에 ‘공공의 이익’이 ‘개인’을 삼켜버리곤 해요.


예를 들어, 아이는 부모의 직업을 배워 가업을 잇는데요. 아이가 다른 직업을 갖고 싶다면 그 직업을 가진 가정에 입양되어야 해요.


또한 유토피아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인구수를 통제하는데요. 한 가구에 속한 성인이 10명보다 적거나 16명 보다 많아서는 안 되는 법이 있다고 해요. 그래서 정원을 초과한 가구의 성인을 미달한 가구로 보내야 한다고 해요.


마지막으로 유토피에는 환자에게 안락사를 권장하기도 하는데요. 의사가 회복 기미가 없는 환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해요.


당신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감당해야 하는 의무를 이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어, 다른 사람과 스스로에게 무거운 짐만 되고 있습니다. 병이 회복되거나 나아질 가능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병과 고통이 날마다 당신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고 있어, 당신이 살아가는 것은 마치 고문을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죽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P.168


이런 장면들은 유토피아가 '개인'보다 ‘집단을 위한 의무’를 강조하는 걸 보여줘요. 제가 유토피아에 있었다면 집단을 위한 부속품이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 거 같아요.



4. 그럼에도 《유토피아》가 주는 메시지


공산주의가 실패한 사상이더라도 《유토피아》가 주는 메시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예요. 그랬다면 《유토피아》가 고전 리스트에 오르지는 못했을 테니까요.


먼저 자본주의의 한계가 공산주의에 대비되어 확실히 드러나는데요. 자본주의 한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소수가 부를 독점한다.’예요. 소유욕, 지배욕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수가 부를 독점하게 되고, 이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지옥을 경험하게 되어요. 자본주의가 극에 달할수록 “차라리 공산주의가 낫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 있겠죠?


하지만 자본주의가 가진 문제도 크더라도 공산주의 또한 유토피아는 아니라는 거예요. 공산주의가 혹여 성공하더라도 공산주의는 지나치게 개인의 욕망을 무시하고, 모든 개인이 집단을 위해 희생 및 봉사하기를 요구해요. 그로 인해 개인이 얻는 보상은 ‘생존’인데요.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자아실현하려는 존재이기에 생존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어요. 억압 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요.


정리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자아실현의 가능성이 열려 있어 꿈을 꿀 수 있지만 생존을 보장받지 못할 수 있어요. 반면 공산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생존을 보장받지만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무척 제한받아 꿈을 꿀 수 없어요.



우리 사회가 지닌 부가 결코 적지 않을텐데 하루종일 일하고도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유토피아》의 관점에 따르면 이는 소수가 부를 지나치게 독점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어요.


《유토피아》에게 해결책을 묻는다면 아마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사회의 부를 공동으로 소유해야 한다고 말할 거에요. 하지만 이는 극단적이고 실현 불가능하며 비합리적이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어요.


그래도 《유토피아》에서 힌트를 얻을 수는 있을 듯해요. 결국 문제의 원인은 분배의 불균형, 양극화 때문이라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소수가 독점한 부를 조금씩이라도 사회에 다시 분배할 수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거예요. 그런 맥락에서 ‘기본소득’, ‘기초자산’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부자들에게 돈을 걷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공산주의다!”라고 반박해요. 그 반박에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어요.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무너지면 부자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부자들이 과연 공동체에 전혀 빚을 지지 않고 그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예요. 오늘도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아참! 마지막으로, 공감과 댓글은 사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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