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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뚫기 Jun 30. 2024

한나 아렌트 입문서:
한나 아렌트 10분 스케치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 수업⟫ 이인미 지음

안녕하세요! 책뚫기의 북라디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공동체, 외로움, 관계, 인간의 본성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요. 이와 관련하여 추천받는 책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한나 아렌트입니다.


[책뚫기의 글을 오디오로 즐겨보세요]

https://youtu.be/SHAuqeah8FA


한나 아렌트는 20세기의 주요한 정치철학자로, 인간의 본성과 전체주의의 잔혹감을 깊이 탐구한 학자입니다. 따라서 한나 아렌트의 저서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데요. 자아 정체성, 인간의 본성, 외로움과 고립 문제, 그리고 공동체를 탐구하는 사람들의 필독서로 꼽힌데요.


하지만 인기가 많은 만큼 어렵기로도 유명한데요. 아무래도 학자가 쓴 글이다 보니 어려운 단어도 많고, 오랜 기간 쌓여온 학문적 역사와 배경 위에 쓰였기 때문이에요.


저 역시도 선뜻 도전하기가 망설여졌는데요. 그래서 저와 같은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한나 아렌트에 도전하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난다면, 또는 읽기는 했지만 어려워서 남은 게 없다면, 또는 한나 아렌트에 대해 아는 척하고 싶다면, 오늘 제가 도와드릴게요.


오늘 이야기는 한나 아렌트 입문서라고도 불리는 책, 이인미 님의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 수업⟫을 읽고 책뚫기의 생각과 언어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 명제 두 가지


한나 아렌트의 사상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소개할 게 있는데요. 인간에 대한 기본 명제 두 가지입니다. 이는 제가 1년 9개월 동안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찾아낸 보물이에요. 보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고, 오늘은 간단히 소개드릴게요.


인간에 대한 기본 명제 하나: 인간은 ‘그래야만 한다’를 창조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는 존재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그래야만 한다’를 창조하는데요. 예를 들어, ‘왜 핸드폰에 버튼이 있어야만 할까?’란 질문을 던진 끝에 스티브 잡스는 ‘만져야만 하는 핸드폰’, 아이폰을 창조했죠. 또한 불평등하고 부패한 관리에 문제를 느꼈던 최제우는 ‘새로운 그래야만 한다.’인 ‘동학’을 창시하였고, 이는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졌어요.


이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그래야만 한다’를 창조하는데요. 아이폰이나 동학처럼 거창하지 않더라도, 우리 또한 모두 자기만의 ‘그래야만 한다’를 가지고 살아가요. 예를 들어 ‘늦어도 10시에는 자야 한다.’ ‘나는 웃긴 사람이다.’ ‘국가는 정의로워야 한다.’처럼요. 이를 가치관, 정체성, 신념이라고도 부르죠.


살다 보면 ‘그래야만 한다’가 업그레이드되기도 하고요. 또 ‘그래야만 한다’를 고집하느라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기도 해요. 싸움이 거세지면 폭력, 차별, 전쟁 등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따라서 인간의 역사, 문화, 예술은 ‘그래야만 한다’의 변천사라고 볼 수도 있어요.


인간에 대한 기본 명제 둘: 인간은 타인의 인정을 욕구한다.


인간은 생존을 욕구하는 것을 넘어서 타인의 인정을 욕구해요. 따라서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요. 의식주가 해결된 채 외딴섬에 홀로 살아가는 인간을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인간은 타인에게 무엇을 인정받고 싶어 할까요? 바로 자신의 ‘그래야만 한다’입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자신의 가치관, 정체성, 신념 등을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길 바라요.


반면 누군가 나의 ‘그래야만 한다’를 무시하거나 공격하면 내 존재 자체에 상처를 입은 듯 아파해요. 그래서 화를 내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우울해하기도 하죠. 심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요.


인간에 대한 기본 명제 두 개를 조합하면 이런 문장이 탄생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그래야만 한다’를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지금부터 이 문장을 기초로 한나 아렌트의 핵심 사상을 스케치해 볼 건데요. 함께 출발하시죠!


행위 · 정치 · 인간다움


지금부터 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담은 핵심 단어들을 소개해볼게요.


핵심 단어 1. 행위


아렌트는 다른 동물에는 없고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속성을 ‘행위’라고 보았는데요. 먼저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 수업⟫ 속 관련 구절을 소개해볼게요.


행위는 자신의 의도와 결과를 따지고 헤아리고 내다보는 가운데 음성언어와 몸동작을 의도적으로, 또 자발적으로 구성해 특정한 타인(들) 앞에서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행위는 기본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각자 의견을 주장하고, 그 의견을 겨루는 활동을 가리킨다.

p.26


제 식대로 풀어서 설명해 볼게요. 인간은 자기만의 ‘그래야만 한다’가 있어요. 그리고 이를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이나 몸동작을 하고요.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자신의 ‘그래야만 한다’를 인정받고자 말이나 몸동작을 해요. 이처럼 서로의 ‘그래야만 한다’를 인정받고자 주고받는 말이나 몸동작을 아렌트는 ‘행위’라고 불러요.


아렌트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속성을 행위라고 보았는데요. 즉 행위하는 삶이야말로, 자신의 ‘그래야만 한다’를 인정받고자 말이나 몸동작을 주고받는 삶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이라는 거예요.


핵심 단어 2. 정치


마찬가지로 관련 구절을 먼저 소개할게요.


정치는 서로 다른 인간들의 공존과 연합을 다룬다.

정치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의원들만 별도로 모여 수행하는 활동이 아니다. 설득력 있게 내 의견을 발언하고, 신중하게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바로 그곳에 정치가 있다.

p.57


행위란 서로의 ‘그래야만 한다’를 인정받고자 주고받는 말이나 몸동작이라고 했는데요. 그런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을 정치라고 아렌트는 말해요. 그런 점에서 아렌트는 행위와 정치를 같은 의미로 사용한 듯한데요. 즉 행위가 곧 정치고, 정치가 곧 행위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정리하자면 아렌트에게 인간다움이란 ‘행위와 정치’ 예요. 달리 말하면 자신의 ‘그래야만 한다’를 인정받고자 하는 말이나 몸동작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거예요.


바로 이 점을 꼭 기억해 주세요. ‘행위와 정치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그러니까 아렌트에게는 행위와 정치가 곧 인간다움이고요. 반면 행위와 정치를 방해하는 요소는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것이에요. 따라서 아렌트는 행위와 정치에 필요한 요소들을 강조할 것이고요. 반대로 행위와 정치를 방해하는 것들을 비판할 거예요.


그럼 이제 아렌트가 강조하고 비판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러 가시죠.



자유 · 폭력 · 권력


잠깐 상상해 볼게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들은 각자의 ‘그래야만 한다’를 주장하고 또 경청하죠. 그들은 자신의 ‘그래야만 한다’를 열정적으로 주장하지만 강요하지는 않고요. 또한 그들은 다른 사람의 ‘그래야만 한다’를 열정적으로 경청하지만 순종하지도 않아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꼭 그래야만 할까?’ 그들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자신의 ‘그래야만 한다’에 질문을 던지고 탐구해요. 그 결과 새로운 ‘그래야만 한다’를 창조하기에 이르죠.


이게 바로 한나 아렌트가 말한 ‘자유’인데요. 책 속 관련 구절을 읽어드릴게요.


아렌트는 이 행위 개념에 자유 요인이 필수적으로 들어 있음을 강조한다. 행위는 자유로운 것인데, 이때 ‘자유’란 어떤 동기나 목표에 매여 있지 않음을 가리킨다.

p.80


하나 더 읽어볼게요.


자유는 행위의 시작, 전혀 새로운 것의 출현 가능성을 뜻한다. 자유는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는 데 있고, 새로운 행위가 드러나는 곳에 있으며,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는 자리에 있다. 자유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인간은 인간답게 산다. 자유가 행위, 곧 정치를 자아낸다.

p.234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그래야만 한다’를 마음껏 주장하고 토론하려면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한나 아렌트는 말합니다. 이때 자유란 결론을 강요받지 않을 자유, 새롭게 태어날 자유라고 할 수 있어요.


풀어서 설명해 볼게요. 나는 나의 ‘그래야만 한다’를 열정적으로 주장할 수 있고요. 동시에 상대 또한 상대의 ‘그래야만 한다’를 열정적으로 주장할 수 있어요. 달리 말하면 나는 상대에게 강요할 수 없고, 상대도 내게 강요할 수 없어요. 하지만 분명 나와 상대는 영향을 주고받아요. 서로의 말이 자극이 되어 자신의 ‘그래야만 한다’를 업그레이드하니까요.


그러다가 누군가는 굉장히 탁월한 ‘그래야만 한다’를 창조하기도 하는데요. 예수님과 부처님을 예로 들 수 있어요. 예수님과 부처님의 ‘그래야만 한다’는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는데요. 그 결과 예수님과 부처님을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겼죠.


한나 아렌트는 이때 생기는 것을 바로 ‘권력’이라고 말해요. 책 속 관련 구절을 소개해볼게요.


아렌트에 따르면 권력은 ‘다수의 사람이 모여 있을 때 사람들 사이에 자유롭게 발생하는 역동적 현상’이다.

권력은 사람들의 말소리와 움직임을 근절하려 하지 않는다. 권력자는 권력의 한 요소로서 ‘지지’를 최소한일지언정 반드시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아주 소수 측근의 지지일지라도 그것이 있어야 권력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지지가 없으면 권력도 없다.

p.157


쉽게 말해 권력이란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뜻하는데요.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면 할수록 권력은 커진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수천 년이 지나도록 지지하는 사람이 많은 예수님과 부처님의 권력은 굉장히 크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자유’가 파괴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누군가 자신의 ‘그래야만 한다’를 강요하면 어떻게 될까요? 때때로 그런 사람들이 무리를 형성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차별하면 어떻게 될까요? 한나 아렌트는 바로 이것을 ‘폭력’이라고 말합니다. 책 속 관련 구절을 소개해볼게요.


폭력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발생하는 다채로운 언어와 각양각색의 행위가 성가신 나머지 ‘한 가지였으면 좋겠다’라고 소망할 때 발생한다.

폭력은 고요함, 적막함을 목표로 한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놀리는’ 입을 틀어막는 것이 폭력이다.

p.157


한나 아렌트는 행위와 정치야말로 인간다운 속성이라고 말하는데요. 다시 말해 사람들이 서로의 ‘그래야만 한다’를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삶이야 말로 인간다운 삶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폭력은 행위와 정치를 파괴해요. 하나의 ‘그래야만 한다’를 강요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벌을 내려요. 다시 말해 폭력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해요.



인간복수성


지금까지 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담은 핵심 단어들을 소개했는데 어떠셨나요?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전달드리고 싶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정리하자면 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담은 핵심 단어는 행위와 정치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행위와 정치야말로 인간만의 속성이며 따라서 행위하는 삶, 정치하는 삶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행위와 정치는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바로 여기에서 서양 전통 철학과 구별되는 한나 아렌트의 독특한 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책 속 관련 구절을 소개해볼게요.


아렌트에 따르면 서양철학은 인간을 단수로 취급하면서 인간복수성을 놓쳤다.

p.65


관련된 구절을 두 개 더 읽어볼게요.


서양철학은 현상과 존재를 구별해 왔고, 그중 존재를 더 근원적인 것이자 더 우월한 것으로 진술해 왔다는 것까지 알면 금상첨화다.

p.264


하지만 아렌트는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와 현상이 일치하지 않는 예를 찾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요약하면 존재하는 생명체는 모두 지각의 주체인 동시에 지각의 대상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보고 듣고 느끼고 감각하는 주체가 따로 있고, 보고 듣고 느끼고 감각하는 대상이 따로 있지 않다. 이 세계 속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공히 대상일 뿐 아니라, 스스로 주체다.

p.265


풀어서 설명드려볼게요. 서양철학은 인간을 단수로 취급해 왔어요. 플라톤은 궁극적 진리인 이데아가 사람이나 사물 밖에 있다고 말했고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가 각 사람이나 사물 안에 있다고 말했어요. 이러한 출발 때문에 서양철학은 존재의 고유성, 개성, 정체성은 각 존재와 별개로 있거나 각 존재 안에 있는 거라 여겼는데요. 따라서 내가 어디에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와 상관없이 나의 고유성, 개성,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 거라고 말해요.


그러나 한나 아렌트는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비판하는데요. 인간은 결코 단수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인간은 행위하는 존재이고, 정치하는 존재이기에 늘 복수로 존재해요. 따라서 존재의 고유성, 개성, 정체성은 어디에 가느냐에 따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죠.


우리는 자기만의 ‘그래야만 한다’를 가지고 살아가는데요. 그런데 나의 ‘그래야만 한다’는 온전히 나만의 창작물일까요? 아니요. 부모님, 친구, 선생님, 동료 등 무수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 탄생한 나와 공동체의 공동 작품이죠. 따라서 우리의 ‘그래야만 한다’는 모두 공동체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책 속 관련 구절을 읽어볼게요.


끝으로 판단에 대해 아렌트는 어떤 인간이든 홀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판단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p.269



끝으로


오늘 제 이야기를 몇 개의 문장으로 요약해 볼게요.   


인간은 자기만의 ‘그래야만 한다’를 창조한다.

인간은 타인의 인정을 욕구한다.

인간들이 자신의 ‘그래야만 한다’를 인정받고자 말과 몸동작을 주고받는 것을 행위 또는 정치라고 한다.

행위와 정치는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 토대, 즉 자유 위에서만 가능하다.

자유 위에 행위와 정치가 꽃 피우고, 그 위에 자연스레 권력이 탄생한다.

반면 자신의 ‘그래야만 한다’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을 폭력이라 한다.

폭력은 자유를 파괴하고, 이는 곧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

행위하는 삶, 정치하는 삶이야 말로 인간다운 삶이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인간단수성이 아닌 인간복수성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 제가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한나 아렌트 입문서인 이인미 님의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 수업⟫을 책뚫기만의 생각으로 풀어보았는데 어떠셨나요? 아마 이 문장들을 가지고 가신다면 한나 아렌트가 왜 전체주의를 비판하는지, 왜 아이히만과 예루살렘 법정을 비판하는지, 또 악의 평범성은 무엇인지 등을 한결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답답한 속이 조금은 뚫리셨나요? 지금까지 책뚫기의 북라디오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구독과 좋아요로 제 마음도 뚫어주세요.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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