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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뚫기 Jul 13. 2024

니체가 알려준 삶의 통찰

모든 인간은 이 문장 위에 살아간다.

어서 오세요. 책뚫기의 북라디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지난 2년간 매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독서 리뷰 글을 써왔는데요. 그러면서 책이란 결국 ‘사람 이야기’이며, 따라서 모든 책은 인간의 본성 위에 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지난 영상에서는 제가 깨달은 인간의 본성 중 ‘인간의 시간은 직선이다.’를 소개했는데요. 혹시 지난 영상을 안 보셨다면 먼저 보시길 추천드릴게요. 지난 영상에 이어서 오늘 이야기를 들으시면 제가 느꼈던 충격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지난 영상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래요.


인간의 시간은 직선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성장해야만 한다.


오늘 이야기는 이어지는 질문에서 출발하는데요. 인간에게 더 나아진다는 건 무엇일까요? 인간은 언제 더 나아진다고 느낄까요? 즉, 인간이 그토록 열망하는 성장이란 무엇일까요? 그럼 이 질문에 대한 책뚫기의 답과 그 답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 지금 출발합니다.


[책뚫기의 글을 오디오로 즐겨보세요]

https://youtu.be/tbAA8M87wtw


키치를 창조하다


우리는 언제 더 나아졌다고 느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다 ‘새롭거나’ ‘탁월한’ 무언가가 창조되었을 때 우리는 더 나아졌다고 느껴요. 핵심은 ‘새롭다’, ‘탁월하다’인데요.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처럼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무언가가 등장했을 때 우리는 “세상 참 좋아졌다.”라고 말해요. 또는 기존에 있던 것이라도 성능이나 디자인 등이 보다 탁월해지면 우리는 더 나아졌다고 말해요.


그러니까 인간은 보다 새롭거나 탁월한 무언가가 창조되기를 바라는데요. 그런데 이때 창조되기를 바라는 무언가, 보다 새롭거나 탁월해지기를 바라는 무언가, 도대체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요? 혹시 짐작 가는 게 있나요? 제가 찾은 답은 바로 ‘키치’인데요. 키치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등장하는 표현으로 온갖 종류의 ‘그래야만 한다.’를 뜻해요. 기억해 주세요. 키치란 온갖 종류의 ‘그래야만 한다.’ 예요.


예를 들어 ‘나이가 되면 결혼은 해야지.’ ‘결혼을 하면 애는 낳아야지.’ ‘애를 하나 낳으면 둘은 나아야지.’와 같은 온갖 종류의 ‘그래야만 한다.’가 키치예요. 나아가 철학, 가치관, 신념, 사상, 법, 도덕, 윤리, 정답과 오답, 선과 악 등 특정 기준을 세워 옳고 그름을 구분 짓는 모든 것이 다 키치라고 할 수 있어요.


따라서 우리를 둘러싼 거의 모든 것들이 키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지켜야 하는 법, 규칙, 도덕, 상식은 물론이고요. 스티브 잡스가 ‘왜 핸드폰에 버튼이 있어야만 할까?’란 질문 끝에 창조한 ‘만져야만 하는 핸드폰’ 아이폰과 같이 발명품이나 제품 또한 키치의 산물이에요. 또한 뉴턴이 ‘왜 사과는 땅으로 떨어져야만 할까?’란 질문 끝에 창조한 중력과 같이 과학 지식 또한 키치의 산물이고요.


우리 인간은 수많은 키치에 둘러싸인 채 태어나는데요. 부모, 학교, 지역, 국가, 지식의 키치 등 수많은 ‘그래야만 한다.’ 속에 태어나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키치에는 순응하고, 또 어떤 키치에는 저항해요. 또 어떤 때는 ‘왜 꼭 그래야만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 끝에 새로운 키치를 창조하기도 하는데요. 바로 이때를 ‘깨달음’, ‘성장’ 또는 ‘더 나아졌다.’고 표현해요.


이제 질문에 답을 해볼게요. 인간이 그토록 열망하는 성장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보다 새롭거나 탁월한 키치가 창조된 상태를 뜻해요.



군중과 초인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직선의 시간, 즉 성장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요. 오늘 이야기를 덧붙여보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보다 새롭거나 탁월한 키치가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좋아요. 우리 인간답게 살아보자고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보다 새롭거나 탁월한 키치를 얻을 수 있을까요?


보다 새롭거나 탁월한 키치를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외부에서 가져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최신 아이폰을 사는 거예요. 현재 시대에 누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스마트폰을 소유하다니! 내 삶이 보다 새롭고 탁월해지는 거 같지 않나요? 또는 유행을 따라 할 수도 있어요. 유명한 맛집에 찾아가 줄을 서서 맛있는 한 끼를 경험하거나, 지인들과 어울리기 위해 골프를 치거나, 돈이 된다고 하는 자격증을 따거나. 이처럼 유행과 대세를 따르면 내 삶이 적어도 뒤처지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요. 이렇게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키치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니체는 ‘군중’이라고 불렀어요.


보다 새롭고 탁월한 키치를 얻는 둘째 방법은 스스로 직접 창조하는 건데요. 사실 무척 어려운 길이에요. 먼저 기존의 키치에 ‘왜 꼭 그래야만 할까?’라고 질문을 던져야 해요. 국가 및 사회의 키치에 질문을 던질 수도 있고요. 기술이나 제품에 질문을 던질 수도 있어요. 또는 내 가치관에 질문을 던질 수도 있지요.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거나, 자료를 조사하거나, 실험하거나, 직접 몸으로 부딪쳐보는 거예요. 시행착오 끝에 새로운 키치를 창조하는 순간 우리는 성장하게 되는데요. 운이 좋으면 유명 정치인이나 스티브 잡스처럼 개혁가가 되는 거고요. 그렇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새로 태어난 나를 만나게 되어요. 이처럼 기존의 키치를 파괴하고 새로운 키치를 창조하는 사람, 즉 자기 파괴와 자기 창조를 거듭하는 사람을 니체는 ‘초인’이라고 불렀어요.



군중의 삶과 초인의 삶


군중과 초인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요. 특히 자신의 자녀를 대하는 방식에서 잘 드러나요.


먼저 군중은 가르쳐요. 군중은 세상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정답을 자녀에게 가르치는데요. 풀어서 설명해 볼게요. 부모의 키치와 자녀의 키치 중 누구의 키치가 생존에 유리할까요? 당연히 부모의 키치예요. 아이는 지금 당장 사회에서 자립할 수 없지만, 부모는 군중일지언정 수년간 사회에서 생존해 왔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자신의 키치를 가르쳐요. 다시 말해 자녀에게 스스로 키치를 창조하는 초인이 되라고 하기보다 부모의 키치를 수용하는 군중이 되라고 가르쳐요. 학교도 마찬가지고요.


대개 군중이 정답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대세와 유행이에요. 군중이 대세의 키치를 따르는 이유는 안전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빚을 내서 집을 사야만 한다.’라는 사회의 키치를 따랐다고 해볼게요. 그 순간 군중은 대세의 편에 속하게 되어요. 그럼 안심할 수 있는데요. 왜냐하면 일이 잘못되어서 집값이 크게 떨어지더라도, 대세가 무너지는 일을 국가와 사회가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예요. 대세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지니까요. 이처럼 사람이 많다는 건 그 자체로 힘이 되기에 군중은 가장 안전한 대세의 키치를 따르려 하고, 또 따르라고 자녀에게 가르쳐요.


반면 초인은 가르치지 않고 보여줘요. 초인은 자기 파괴와 자기 창조를 거듭하는데요. 따라서 당장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와 다를지도 모르기에 자신의 키치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요. 더욱이 사람마다 처지와 상황이 다 다르기에 초인은 더더욱 자신의 키치를 가르치지 않아요. 다만 누군가 물으면 ‘지금 내 생각은 이런데, 잘 모르겠어.’라고 답하거나 자기 파괴와 창조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에요.


정리하자면 초인이 살아가는 기준은 자기 자신이에요. 초인은 자신의 ‘그래야만 한다.’를 기준으로 살아가요. 하지만 동시에 ‘꼭 그래야만 할까?’라는 질문을 품고 있어요. 따라서 초인은 공부를 멈추지 않아요. 독서하고, 조사하고, 대화하고, 실험하고, 경험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파괴와 자기 창조를 거듭해요.



군중과 초인에서 엿본 4가지 인간 유형


인간의 시간이 직선인 반면, 다른 생물들의 시간은 원형이에요. 원형의 시간이란 끝없이 반복되고 순환하는 시간인데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 다시 봄이 오는 계절처럼요. 또 매일 아침 일어나고, 산책하고, 밥 먹는 등 똑같은 루틴을 매번 새롭다는 듯 살아가는 반려 동물의 시간처럼요. 따라서 원형의 시간에서는 어제가 오늘이기도 하고, 작년이 올해이기도 해요. 어떠한 성장 압박도 없이 그 자체로 온전하고 순환하는 시간이죠. 따라서 원형의 시간 속에는 ‘그래야만 한다.’는 키치가 없어요.


그럼 군중과 초인을 원형과 직선의 시간으로 풀어볼게요. 군중은 자신의 삶에서 직선의 시간을 추구해요. 보다 새롭거나 탁월한 사회의 키치, 즉 대세나 유행을 쫓아가려고 애써요. 동시에 군중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직선의 시간 속에 살아가요. 다시 말해 자신의 키치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요. “이게 다 너를 위한 일이야!” “내 말대로 하면 성공할 수 있어!” “야! 그건 선 넘었지!” 이렇게요.


초인 또한 군중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에서 직선의 시간을 추구하는데요. 다만 초인은 스스로 키치를 창조하죠. 그런데 군중과 달리 초인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원형의 시간 속에 살아가요. 다시 말해 자신의 키치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아요.


여기서 힌트를 얻으면 인간을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요. 퀴즈처럼 한번 맞혀보세요.


첫째 유형은 자신의 삶은 직선, 다른 사람과 관계도 직선의 시간 속에 사는 유형이에요. 쉽게 말해 “나는 성장하며 살 거야. 그리고 너도 나처럼 성장해야 해.” 유형인데요. 이런 사람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잠깐 멈추고 생각해 보셔도 좋아요. 제 생각은 니체가 말하는 군중,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꼰대가 바로 이 유형에 속하는 듯해요. 특히 꼰대 중에서도 나름 성공한 꼰대가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요?


둘째 유형은 자신의 삶은 직선, 다른 사람과 관계는 원형의 시간 속에 사는 유형이에요. 쉽게 말해 “나는 성장하며 살 거야. 그리고 너는 너의 삶을 살아.” 유형인데요. 이런 사람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잠깐 멈추고 생각해 보셔도 좋아요. 제 생각은 니체가 말하는 초인,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짜 어른’이 이 유형에 속하는 듯해요. 능력이 출중하고 끊임없이 성장하는데도 자신을 고집하지 않는 진짜 어른이요.


셋째 유형은 자신의 삶은 원형, 다른 사람과 관계도 원형의 시간 속에 사는 유형이에요. 쉽게 말해 “나는 성장 압박 없이 자연의 흐름대로 살 거야. 그리고 너는 너의 삶을 살아.” 유형인데요. 이런 사람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제 생각은 자연인과 참된 종교인이 이 유형에 속하는 듯해요. 성장 압박과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요.


넷째 유형은 자신의 삶은 원형, 다른 사람과 관계는 직선의 시간 속에 사는 유형이에요. 쉽게 말해 “나는 성장 압박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 거야. 그런데 너는 성장해야만 해!” 유형인데요. 이런 사람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제 생각은 실패한 꼰대가 이 유형에 속하는 듯해요. 상처를 입은 뒤 스스로 성장하는 건 포기했지만 자신의 키치를 강요하는 사람들인데요. 예를 들어, 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 『스토너』에 등장하는 ‘이디스’의 삶이 그래요. 이디스는 자아실현에 실패한 뒤 대리만족을 꿈꾸면서 자기 딸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교육하거든요.



토리노의 말 사건


토리노의 말 사건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이탈리아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토리노의 한 거리를 지나다가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요. 한 마부가 움직이지 않는 말을 무섭도록 잔인하게 채찍질하는 장면이었어요. 이에 충격을 받은 니체는 곧장 달려가 말의 목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무언가 속삭였다고 해요. 이 사건 이후 니체는 정신 분열 증세를 보이며 철학가로서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동물들은 원형의 시간 속에 살아가요. 끝없이 반복하며 순환하는 원형의 시간은 더 나아질 것도 더 나빠질 것도 없이 그 자체로 온전한 시간이에요. 따라서 동물들에게는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고, 따라서 키치도 없어요.


그런데 유독 인간은 직선의 시간 속에 살아가요. 인간에게는 똑같이 반복되기만 하는 하루하루가 저주와 같아요. 따라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성장해야만 하는데요. 이때 인간이 말하는 성장이란 보다 새롭거나 탁월한 키치의 창조예요. 달리 말하자면 인간은 끊임없이 ‘그래야만 한다.’ 또는 ‘옳고 그름의 기준’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동물이에요. 애초에 원형의 시간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키치를 만들어내야만 해요.


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키치를 고집하면서 시작되는데요. 인간은 존재하지 않던 키치를 만들고 고집하고 끝내 움직이지 않는 말을 채찍으로 때리기에 이르러요. 말에게 어떠한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인간은 말에게 자신의 키치를 채찍으로 강요해요. “말은 움직여야만 해. 말은 마차를 끌어야만 해. 마차를 끌지 못하면 말이 아니야!” 이렇게 마부의 키치는 잔인한 폭력으로 바뀌어요. 그런데 심지어 이를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 또한 어떠한 이상함도 느끼지 않아요. 마부의 키치가 곧 인간의 키치였고, 마부의 폭력성이 곧 인간의 폭력성이었던 셈이에요. 혹시 이 잔인한 폭력성이 니체를 미치게 만든 건 아닐까요?



끝으로


초인, 군중, 자연인, 실패한 꼰대 중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저는 누가 뭐래도 군중의 삶을 무척 열심히 살아왔어요. 권위자나 유명인의 키치를 마치 제 것인 양 떠들면서 제가 정답인 것 마냥, 옳은 것 마냥 살아왔어요. 심지어 남에게 설명하고 가르치기까지 했는데요. 얼마나 주제넘고 어리석었는지 이제야 깨달았어요. 이제는 정말 겸손하게 살아야겠어요.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저를 위해 댓글로 여러분의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세요.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예요. 지난 2년간 독서와 글쓰기를 하며 깨달은 내용을 들려드렸는데 어떠셨나요? 재미있으셨나요? 아참!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제가 깨달은 문장이 하나 더 있어요. ‘인간은 타인의 인정을 욕구한다.’는 문장인데요. 충분히 숙성되면 또 영상으로 준비해 볼게요. 혹시 궁금하시다면 제 영상 중 ‘한나 아렌트 10분 만에 스케치하기’와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데 꼭 필요한 핵심 요소. 제3의 장소’ 영상에 이미 담겨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지금까지 책뚫기의 북라디오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제 마음도 뚫어주세요. 그럼 또 봐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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