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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으로 들여다본 한국
있는 그대로 한국

⟪쌀 재난 국가⟫ 이철승 지음

by 책뚫기

어서 오세요. 책뚫기의 북라디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끝없는 경쟁과 불평등의 헬조선? 아니면 K-팝, K-콘텐츠를 쏟아내는 문화 강국? 같은 나라에 살고 있어도, 여러분이 처한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일 거예요.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우리나라를 진화론의 관점으로 보면, 어떻게 보일까?”


오늘은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 게 우연이 아니라는 걸 과학적으로 풀어낸 책, 이철승 님의 ⟪쌀 재난 국가⟫ 이야기를 준비했는데요. 오늘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시면 우리나라를 한결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게 될 거예요.


그럼 책뚫기의 북라디오, 지금 출발합니다.


[책뚫기의 글을 오디오로 만나보세요]

https://youtu.be/kYWFDJUkrPk



대한민국은 쌀농사 국가다


있는 그대로 한국, 첫째! ‘대한민국은 쌀농사 국가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왜 하필 밀이 아닌 쌀농사를 지었을까요? 이유는 간단해요. 쌀이 밀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쌀농사는 밀 농사에 비해 무척 어려운 점이 있는데요. 벼를 키우려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벼농사, 쉬워 보이죠? 그런데 아니에요. 벼를 키우려면 논에 물이 항상 찰랑찰랑해야 하고, 가뭄과 태풍에도 대비해야 해요. 이걸 혼자서 할 수 있을까요? 절대 못해요.


진화론적으로 설명하자면, 한반도에서는 농사지을 땅이 적어 쌀농사를 선택한 부족이 살아남았을 거예요. 특히 개미 군락처럼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이는 부족이 쌀농사에 성공했을 건데요.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단기간에 조절하려면 마을 단위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대한민국은 마을 공동체 나라다


있는 그대로 한국, 둘째! ‘대한민국은 마을 공동체 나라였다.’


쌀농사는 물을 다루는 기술이 핵심이었어요. 저수지를 만들고, 물길을 내고, 모내기를 하고, 김을 매고, 태풍이 오면 밤새 물을 빼내야 했죠. 이 모든 걸 혼자 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해요. 그래서 탄생한 것이 마을 공동체 시스템이에요.


‘마을 공동체’의 특징 중 하나는 개인 소유 시스템이에요. 수확한 쌀은 공동 소유가 아닌 각자 소유였는데요. 자기 땅에서 수확한 것만 가져가는 방식이었어요. 그러니까 같이 일해도 땅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쌀을 가져갔어요. 사람들이 땅에 정말 정말 집착할 수밖에 없었겠죠? 그리고 땅에 대한 집착은 현재 대한민국까지 이어지고 있고요.


또 하나의 ‘마을 공동체’의 특징은 자급자족이 가능했다는 거예요. 쌀은 밀과 달리 영약학적으로 완전식품에 가까운데요. 채집 및 밭농사를 통해 비타민과 철분 정도만 보충하면 사실상 육류 없는 삶이 가능했기 때문이에요.



‘관계, 눈치, 비교’는 필수 생존 전략


있는 그대로 한국, 셋째! ‘관계, 눈치, 비교는 필수 생존 전략이다.’


쌀농사 사회에서 중요한 건요, 개인이 아니라 마을이에요. 사람들은 마을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 같은 존재였어요. 따라서 자기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는데요. 자, 그러면!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첫째, 농사 실력을 갖추어야 했어요. 쌀농사 사람들은 서로의 논에 손과 발을 담갔기에 농사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우리 농사를 망치는 진상’이라 욕했기 때문이에요.


둘째, 평판, 인성을 갖추어야 했어요. 평판이란 부모-자식 간, 형제간, 친척 간, 이웃 간의 도리 등 촘촘한 관계 속 의무를 지킬 때 생기는 좋은 이미지인데요. 쌀농사 사람들은 평판이 나쁘면 왕따가 되어 농사를 짓기 어려웠고요. 평판 시스템 덕분에 마을은 위계질서를 지킬 수 있었어요.


이처럼 쌀농사 사람들은 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눈치를 보고 비교하며 살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예민하게 비교한 것은 바로 ‘쌀 수확량’이었어요. 만약 옆집이 우리 집보다 쌀을 다섯 가마니나 더 수확했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아니, 내가 저 집 사정을 뻔히 아는데, 어떻게 저렇게 많이 나왔지? 혹시 나 몰래 비법이 있나? 아니면 내 농사 대충 도와준 거 아니야?’ 이런 의심이 들겠죠?


이처럼 서로를 다 안다는 생각은 자연스레 비교로 이어졌고, 비교에서 의심과 질투가 싹텄어요. 그런데 대놓고 티를 낼 수는 없었어요. 왜냐고요? 그랬다가는 평판이 나빠질 테니까요. 억울하고 분한데 말은 못 하니, 한이 쌓일 수밖에 없었겠죠?



재난 대응 시스템


있는 그대로 한국, 넷째! ‘대한민국은 재난 대응 시스템이다!’


쌀농사 마을은 자급자족이 가능했어요. 그런데 왜 국가가 필요했을까요? 문제는요, ‘재난’이었어요. 가뭄과 태풍이 오면 마을이 초토화되니까요.


따라는 국가는 첫째, 재난 대비 역할을 했어요. 각 마을에 가뭄이 오기 전에 저수지를 만들어 주고, 태풍과 홍수가 오기 전에 배수 시스템을 만들어 주었어요.


둘째, 재난 시 구조 역할을 했어요. 거대한 재난 때문에 마을이 굶어 죽게 생겼을 때 국가는 재난 지원금 같은 식량과 구호품을 보냈어요.


진화론적으로 설명하자면, 한반도에서는 개미 군락 같은 부족이 쌀농사에 성공했어요. 자연스레 인구가 많은 부족이 다른 부족을 정복했겠죠? 그러나 단지 힘만 세다고 정복에 성공했던 것은 아니고요. 재난에 잘 대응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성공적으로 통합하여 점차 국가 크기로 커졌을 거예요.



선별복지와 각자도생


있는 그대로 한국, 다섯째! ‘대한민국은 선별 복지, 각자도생이다.’


쌀농사권에서 국가의 핵심 역할은 재난에 대응하는 거예요. 따라서 쌀농사권에서는 선별 복지가 발달했는데요. 쉽게 말해 죽어가는 마을에 산소 호흡기를 달아주는 게 국가의 핵심 역할이었어요.


이런 국가가 국민들의 노후와 복지를 신경 썼을까요? 전혀 아니에요. 그리고 국민들도 위급할 때 아니면 국가가 나서지 않기를 요구했어요. 마을만으로도 충분히 자급자족할 수 있었으니까요.


따라서 노후를 대비하는 건 사람들 각자의 몫이었는데요. 방법은 딱 두 가지, 땅을 사고 자식을 키우는 일이었어요. 농사지을 땅과 노동력만 있으면 먹고살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재난 시에 재난 지원금 마저 부족하면 어떻게 될까요? 농민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는데요. 땅을 팔던지, 자식을 팔아야 했어요. 반면 부유한 농민에게는 재난이 곧 기회였는데요. 소농들의 땅을 헐값에 사들여 대지주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한국 또한 쌀농사 국가로서 선별 복지 전통을 이어왔어요. 아주 가난한 사람에게만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요. 그런데 과거와 큰 차이가 있다면 마을 공동체가 사라졌다는 점이에요. 과거에는 염치 불고하고 이웃들에게 신세 질 수 있었다면 지금은 그마저도 불가능한데요. 한국은 정말로 각자도생의 구조를 갖춘 셈이에요.



쌀농사 DNA의 빛과 그림자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전쟁 그리고 산업화를 아주 짧은 시간에 통과했어요. 놀랍게도 우리 민족은 이 시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여 선진국 반열에 올랐는데요. 그 핵심에는 쌀농사 DNA가 있었어요.


쌀농사에서는 마을이 본체고, 한 사람 한 사람은 부속품과 같아요. 즉 ‘마을이 살아야 나도 사는 구조’에서 사람들은 나보다 내 마을을 위해 살았어요. 그 결과 ‘우리 마을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문화적 DNA가 탄생했고 이는 ‘우리나라는 우리가 책임진다’는 DNA로 발전해요.


왕이 도망가고 정부가 무너져도 우리나라 국민은 무너지지 않았어요. 겉으로는 순응할지라도 속으로는 한을 품고 때를 기다리며,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투쟁하여 그때를 앞당겼어요. 조선시대 의병 활동,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그리고 최근 우리가 경험한 촛불과 응원봉 모두 쌀농사 DNA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다음으로 쌀농사에서는 일 인분을 해야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었어요. 최소한의 기준이 있었던 건데요. 종종 어르신들이 “FM대로 해!”라고 말하잖아요? 이때 FM이란 군대 용어로 Field Manual, 야전 수칙을 뜻해요.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준과 매뉴얼’을 만들고 그대로 따르려는 문화적 DNA를 가지고 있어요.


‘기준과 매뉴얼’ DNA 덕분에 우리나라는 산업화 시기에 폭풍 성장할 수 있었어요. 모든 제조 공정의 기준과 매뉴얼을 만들고, 모든 직원이 그 매뉴얼에 따르도록 만들었어요. 덕분에 우리나라는 낮은 불량률과 재고율로 가성비 좋은 물건을 만들어 수출했고, 단기간에 폭풍 성장할 수 있었어요. 나아가 현재 K-콘텐츠의 폭풍성장도 바로 이 ‘기준과 매뉴얼’의 힘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고요.


그런데 쌀농사 DNA가 좋은 결과만 가져다주었을까요? 당연히 아니에요. 쌀농사 DNA는 우리에게 큰 선물 못지않게 엄청난 문제도 안겨주었어요.


하나는 부동산 문제예요. 쌀농사 사람들의 땅 사랑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국가가 노후를 보장해주지 않고, 불로소득의 원천인 땅과 부동산이야말로 진정한 노후 대비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한국 사람들의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고 심지어 빚도 많아요.


각자도생에서 벗어나 보편 복지로 나아가려면 많은 세금이 필요한데요. 부동산 빚에 묶여 있는 대한민국 서민들은 세금을 더 낼 형편이 못돼요.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는 세금을 올리자니 서민이 죽고, 세금을 내리자니 각자도생이 심해지는 딜레마에 빠져 있어요.


또 하나는 연공제 문제예요. 신입 사원은 낮은 연봉으로 시작해 경력이 쌓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연봉을 받는데요. 이처럼 기업의 연공제란 근무한 기간과 경력이 많은 사람을 더 많이 대우하는 제도로, 연장자를 우대하는 쌀농사 문화에서 비롯되었어요. 문제는 신입 사원의 연봉은 적고, 경력이 쌓일수록 올라가는 연봉의 기울기가 너무 가팔라진다는 거예요.


과거 신입 직원이던 산업화 세대들이 세월이 흘러 50, 60대가 되었어요. 연공제 덕에 그들이 받는 연봉 또한 10배 가까이 늘었는데요. 이는 기업에게 큰 부담이 되었어요. 이에 기업들은 인건비를 줄이려고 신규 직원을 뽑지 않고 있는데요. 대신 비정규직 자리를 늘리거나 하청을 늘리고 있어요. 이는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증가 문제로 이어지고 있지요.



끝으로


오늘은 ‘대한민국은 쌀농사 국가다’라는 관점에서 한국 사회를 들여다봤어요. 쌀농사, 마을 공동체, 관계·눈치·비교 그리고 선별 복지와 각자도생까지 연결되는 흐름을 살펴보았는데요. 이 흐름 속에서 지금의 한국이 왜 이런 모습일 수밖에 없는지를 그려보았어요.


자, 그럼 이제 중요한 질문! 앞으로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쌀농사 DNA가 만든 문제들, 이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저는 우리가 잘 해낼 거라 믿어요.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킨다는 DNA가 있으니까요. 치열한 토론과 시행착오 끝에 분명 최선의 대안을 찾아갈 거예요.


그런데 오늘 제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인데요. 대한민국은 쌀농사 국가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민족의 피에는 쌀농사 DNA가 흐른다는 거예요. 저는 우리가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진화론의 관점으로 보면 쌀농사 DNA는 우리 민족이 최선을 다해 살아남았다는 증거잖아요? 그래서 오늘만큼은 평소 내가 꼰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살아내주어 고마워요. 참 애썼어요.”라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데서 변화는 시작하니까요.


지금까지 책뚫기의 북라디오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제 마음을 뚫어주세요.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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