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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사랑을 기다리고,
분노는 사랑을 파괴한다.

⟪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by 책뚫기

세상에게 억까당해 본 적 있으신가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왜 이렇게 많고, 이제야 풀리나 싶으면 꼭 사고나 병이 나서 우리를 주저앉혀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중한 사람마저 떠나가 마음 둘 곳마저 빼앗기도 해요. 현실은 늘, 우리가 상상하는 최악 그 이상이더라고요.


그런데 왜일까요? 왜 세상은 유독 나를 싫어하는 걸까요?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이유, 그 목적은 무엇일까요?


오늘 소개할 책 공지영 작가 님의 ⟪높고 푸른 사다리⟫에는 이 질문에 대한 놀라운 대답이 담겨 있어요.


그 수작이란 어렵지 않아.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네.
우리가 스스로를 존엄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말이야.


때때로 운명은 우리를 시험하는데요. ‘이래도 분노하지 않을 거야? 분노해! 미워해!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무의미한 장난감일 뿐이라고!’라며 우리를 도발해요. 그리고 그 도발의 목적은 단 하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거래요.


그래서 억까당할 때 분노하면 안 돼요. 분노하면 지는 거래요.


[책뚫기의 글을 오디오로 즐겨보세요]

https://youtu.be/JYggm4_91Zk



분노 = 실패 버튼! 제발 누르지 마세요


공지영 작가님은 ‘분노하면 패배한다’는 진실을 한 인물의 이야기로 아주 탁월하게 보여줘요. 그 인물은 바로 미카엘 수사예요.


신부가 되기 위해 수사가 된 미카엘은 수도원 생활을 하던 중 교회의 부정한 모습을 마주해요.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고 하면서 정작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살피지 않는 교회. 낙태하지 말라고 외치면서 왜 한 여자가 자기 아이를 죽일 지경까지 몰렸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교회.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강대국의 무기 판매에도 아무 말 못 하는 교회. 한편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의 기부금으로 굴러가는 교회.


미카엘 수사는 교회의 더러운 실상에 분노해요. 그리고 그때부터 수도원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기 시작해요. 집회에서는 그들의 목소리가 되고, 삶터에서는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줘요.


하지만 결국 그는 중징계를 받아요. 이에 미카엘은 거센 분노를 삼키며 “나는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라며 반항적 침묵을 선택해요. 외롭고 쓸쓸한 자기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미카엘은 놀랍게도 봉사와 침묵 속에서 스스로 분노를 내려놓게 되는데요. 어느 날 그는 드디어 반항적 침묵을 깨고 이렇게 말해요.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가슴 시리고 찬란한 부분인데요. 읽어 드릴게요.


나는 사랑에 대해 말하려고 했던 거야.
작고 가난한 형제에 대한 사랑…….
나는 예수가 승천하기 전에 주고 갔던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거야.
그런데 내 말투에는 사랑이 없었고
내 편지의 내용에는 평화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어.


미카엘의 깨달음은 한 늙은 수사님, ‘토마스’ 수사님 덕분이었어요. 토마스 수사님은 늙고 병들어서 혼자 대소변도 못 가리고 넣어주는 음식의 반을 흘리지만, 그의 얼굴은 너무도 맑고 잔잔했어요. 미카엘은 봉사 중에 토마스 수사님의 잔잔한 얼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는데요. 그때 미카엘은 깨달았던 거예요.


나는 거기서 사랑을 빙자한 증오로 가득하고
평화를 빙자하여 전쟁을 불사하는
가증스러운 한 영혼을 보게 된 거라구


미카엘은 토마스 수사님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보게 되어요. 분노와 증오로 똘똘 뭉친 그 끔찍한 눈을요. 정작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사랑과 평화는 온데간데없고 증오와 전쟁만 남은 가증스러운 눈에 충격을 받은 미카엘은 결국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게 되는데요. 그때부터 미카엘은 분노가 아닌 사랑으로, 전쟁이 아닌 평화로, 진정한 수도자의 길로 접어들게 되어요. 어때요? 아름답지 않나요?



그래서… 나더러 맞고만 있으라고?


세상이 나를 억까해도 분노해서는 안 돼요. 하필 복수가 성공하기라도 하면, 우리는 분노를 ‘성공의 도구’라고 착각하게 되고, 더 깊이 매달리게 되는데요. 그럼 결국 우리 안에 사랑과 평화가 자리할 공간이 사라지고 사랑할 수 없는 몸, 분노 밖에 할 줄 모르는 몸을 갖게 되어요.


그럼 어쩌라는 걸까요? 억까당하는 데 바보처럼 실실 맞고만 있어야 할까요? 피할 수도 없는데 애써 무시해야 할까요? 소설 속 토마스 수사님은 이렇게 말해요.


“사랑 안에서 패배하세요.”


사랑 안에서 패배하라니 무슨 말일까요? 관련 구절을 조금 더 읽어 드릴게요.


사랑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혀요.
사랑은 자기의 가장 연한 피부를 보여주는 거니까요.
사랑은 자기 약점을 감추지 않는 거니까요.
사랑은 상대가 어떻게 해도 내가 사랑하는 거니까요.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라고, 요한 신부가 그랬죠.
기꺼이 받아들여 봉헌한다고.
그 이후로 음, 그렇구나 상처 입겠구나 하고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더는 상처 입지 않아요.


토마스 수사님은 ‘사랑 안에서 패배하라’고 말해요. 이때 사랑이란 친구에게 배신당할 각오,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각오, 세상에게 억까당할 각오 그리고 내게 주어진 모든 운명에 상처받을 각오인데요. 다시 말해 ‘사랑이란 상처마저도 받아들이는 순명’을 뜻해요.



저도 ‘억까 인생’ 당해봤습니다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저는 학창 시절 사람이 무지무지 싫었어요. 학교 폭력 때문이었는데요. 그 시절이 제 몸에 남긴 아주 강력한 문장 중 하나는 ‘힘없으면 조용히 살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지금도 길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는 건장한 남학생들을 보면 몸이 움찔거리고 피하게 되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왜냐하면 몸이 작고 힘이 약했으며, 집도 부유하지 않고 빽도 없었거든요. 그 덕분에 분노를 품을 생각조차 못했는데요. 분노도 힘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거더라고요. 분노 대신 저를 지배했던 건 불안과 공포였어요. 돌아보면 이게 정말 천운이었는데요. 왜냐하면 불안은 사랑을 기다리지만, 분노는 사랑을 파괴하기 때문이에요.


대학이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어요. 대학에 가니 사람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요. 특히 싫어하는 사람을 안 만나도 되더라고요. 그래서 불안하지 않았고요. 불안하지 않으니 사랑받을 수 있는 여지가 열리더라고요. 마침내 사랑했고, 그러다 상처받았고, 다시 또 사랑했는데요. 이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상처받는 게, 그렇게 무섭지 않아 졌어요. 어쩌다 보니 순명하는 삶에 가까워져 있더라고요.


그런데 만약 제가 불안이 아닌 분노의 길을 걸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폭력과 혐오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웠을 거예요. 왜냐하면 분노는 사랑을 파괴하기 때문이에요. 복수에 성공했더라도 복수는 더 큰 복수를 낳았을 테고, 결국 사랑할 수 없는 몸이 되었을 거예요. 그러니 우리 분노하지 않기로 해요. 차라리 불안하기로 해요.



끝으로


공지영 작가님의 책 ⟪높고 푸른 사다리⟫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듯한 비극들이 등장해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 비명 속에 끝나버린 우정 이야기, 사람 몸에 구더기를 끓게 하는 폭력 이야기, 어린아이들이 숨진 채 강물 위에 떠다니는 전쟁 비극까지.


하지만 그 비극 위에서도 사랑, 즉 순명하는 삶이 피어나는데요. 그리고 순명은 믿을 수 없는 ‘기적’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이 책은 천주교라는 종교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데요. 그게 거슬리지 않는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개인과 시대를 꿰뚫어 인간을 통찰한 공지영 작가님의 사유가 밀도 있게 담겨 있으니까요. 덧붙여 불교 신자인 제게는 괴로움에 대응하는 천주교만의 방식을 이야기로 경험할 수 있어 새롭고 참 좋았어요.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인데요. 어떠셨나요? 오늘 이야기가 좋았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제 마음을 뚫어주세요. 지금까지 책뚫기의 북라디오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봐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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