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서슬 퍼런 부고장이...

by 책뚫기

오늘도 평온하디평온한 방학의 하루가 흐른다. ‘어째서 이 여유는 방학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뭉쳐 있는 것일까? 일 년의 마디마디에 스며들어 틈틈이 나를 달래주면 안 될까?’ 싶다가도, 방학이 아니라면 꽁꽁 뭉친 몸과 마음이 도저히 풀리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이내 감사함을 느낀다.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정든 교단을 떠나던 교장 선생님들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그러나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그들의 뒷모습이 서슬 퍼런 부고장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방학을 맞이하자마자 한 주를 꼬박 앓아눕는 동료들의 일상도 낯설지 않다. 나 또한 그러했다. 어쩌면 우리 교사들에게 교실은 치열한 전쟁터이고, 교단은 고립된 참호가 아닐까. 온화한 미소 뒤에는 잔뜩 움츠린 채 숨을 죽인 몸과 마음이 숨어 있다. 팽팽한 긴장 속에 하루라는 전투와 한 학년이라는 전쟁을 무탈히 치러낸 자에게만 방학이라는 이름의 휴가가 허락되는 것이다.


다가올 새 학년이라는 또 다른 전장을 앞두고, 차갑게 굳은 몸과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녹여본다. 하루하루 멀어지는 달력의 날짜가 마냥 야속하기만 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방학의 기쁨 뒤로 묘한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과 낯선 적군에 맞서 나를 지켜낼 말과 규칙들을 찾기 위해, 오늘도 이런저런 책과 연수 사이를 기웃기웃 뒤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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