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맞히기 식 삶에서 벗어나기
유튜브가 최근 나의 고민을 알고 있나? 뜬금없이 개그맨 고명환 님의 영상이 추천 영상에 떴다. 개그맨 고명환 님은 교통사고로 죽음 직전까지 갔던 사람이다. 몸 안 출혈로 온 몸에 피가 퍼지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였다. 모든 의사가 치료를 포기했다. 죽음을 앞둔 고명환 그 역시 주마등을 경험했다. 고명환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뇌가 보여주는 장면을 자신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고 표현했다. 죽음을 앞둔 뇌가 보여준 삶은 치열하게 공부하던 시절, 단 몇 개월뿐이었다.
기적처럼 고명환은 살아났다. 몸이 피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모든 출혈을 기적처럼 흡수하고 고명환은 또 하나의 삶을 선물 받았다. 고명환은 삶에 대해 생각했다. 죽음을 앞둔 자신의 뇌는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지위도 아니고, 치열하게 공부했던 단 몇 개월만을 반복하여 보여주었다. 고명환은 그때가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살았던 순간임을 깨달았다. 병원 침대에 누워 가까스로 새로운 삶을 선물 받았던 그는 비로소 질문했다.
끌려다니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명환은 책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고명환은 답을 찾기 위해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병실에서 책 수십 권을 읽었다. 그는 간절했다. 끌려다니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다. 아마 자기 계발서 같은 책들을 읽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지금도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양치를 하고, 긍정 확언을 하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그는 매일 30분씩 책을 읽는다. 동시에 그는 앞으로 어떤 삶을 어떻게 살지 고민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중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게 글쓰기와 요리였다. 학창 시절 친구와 주고받았던 시가 있었다. 그 시 중에는 자신이 썼지만 스스로 감동받은 시들이 있었다. 간혹 자신이 만들었지만 감동받은 요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작가와 요식업의 길을 자기 삶의 일부로 선택했다.
고명환 님의 말은 최근 나의 고민을 긁어주었다. 나는 정답 맞히기 식 삶에 익숙한 사람이다. 인생에 정답이 없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늘 정답을 선택하며 살았다. 나는 정답을 잘 찾았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기대와 요구를 잘 읽고 무엇이 정답인지 금방 파악했다. 그리고 거기에 내 삶을 올곧게 쏟았다. 나도 모르게 그랬고, 그런 나의 삶을 한 번도 따져본 적이 없었다. 어른들은 올곧은 나를 늘 칭찬했기에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정답에 끌려다니며 살면서 그게 잘 사는 건 줄 알았다.
덕분에 나는 ‘교사’라는 사회적 지위를 얻었다. 세상이 기대하는 정답을 잘 파악하고, 그 정답에 내 인생을 쏟은 결과였다. 교사라는 지위는 내게 안정적인 수입을 대가로 학생들에게 정답을 전파하는 역할을 맡겼다. 나는 마찬가지로 올곧게 그 길에 내 인생을 쏟았다. 연수, 독서, 연구회 활동까지 열정적으로 내 인생을 쏟았다. 교직 사회가, 그리고 교사를 바라보는 외부인들이 그게 정답이라고 기대했다. 나는 나름 괜찮은 교사, 참 교사의 길을 걷는 교사가 되었다.
‘교사’라는 사회적 지위는 내 또래의 친구들이 쉽게 누리지 못하는 것을 보장했다. 교사인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내 그리고 아이와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도 얻었다. 나는 나의 부모님이 누리지 못했던 넓은 집과 월급을 불과 30대 초반에 얻었다. 서울, 경기권에 태어나지 않은 덕분이기도 했다.
부부 교사라는 지위는 육아 휴직도 보장했다. 눈치 보지 않고 아내는 올해 육아 휴직을 썼다. 1년 동안의 유급 휴직이었다. 물론 월 수입은 많이 줄었지만 고민하지 않고 휴직을 선택할 수 있었다. 내년에는 나 또한 1년 동안의 유급 휴직을 쓸 계획이다.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다. 이 모든 건 정답에 맞추어 살아온 내게 주어진 권리다.
작년 10월,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아빠가 되었고 한 해 동안 내 삶의 중심 대부분을 아이에게 두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무척 소중해졌다. 하루에 한두 시간, 아이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그 마저도 없었다. 소중한 개인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기 위해 나는 지금껏 내가 누렸던 것들에 우선순위를 매겨야 했다. 우선순위에 밀린 것들을 하나하나 포기하고 정리했다. 그동안 해왔던 연구회 활동도 모두 정리했다.
나는 우구리. 교사 우구리. ㅇㅇ 연구회 회원 우구리. ㅁㅁ 연구회 회원 우구리.
나는 우구리. 우구리.. 우구리… 우구리….?
교사, 연구회 회원, 내 이름 앞에 붙은 타이틀을 떼 보았다. 그리고 공허한 나를 발견했다. 나는 뭐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은 뭐지? 나는 누구야? 혼란스러웠다. 나라는 개인 위에 타이틀을 쌓은 게 아니라, 타이틀 위에 나를 얹혀놓고 살아온 삶 같았다. 타이틀을 떼어내도 ‘나’라는 개인이 올곧게 서있어야 하는데, 타이틀을 떼어내니 ‘나’라는 개인이 사라져 버린 거 같았다.
아직 정답에 물들지 않은 아가가 내 옆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울었다. 나는 진짜 내 목소리를 혼신의 힘을 다해 내 본 적이 있던가? 나는 정답에 물들기 전에 분명 존재했을 내 목소리를 기억하는가? 아이는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떤 아빠가 되어야 하는가? 그전에, 나는 지금껏 어떤 사람이었는가?
아이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성찰 거울과 같았다. 아이를 통해 나를 보고, 아이를 통해 내 삶을 돌아보았다. 나아가 아이를 통해 나와 아내의 차이를 확인하고, 차이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다. 비로소 나는 나에 대해 알기 시작했고, ‘나는 지금껏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란 후회 섞인 질문을 던졌다.
나는 마리오네트. 내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머리에 달린 실. 그 실에 따라 움직였다. 나는 뛰어난 마리오네트. 나는 실이 나를 어떻게 조정할지 미리 파악하고 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었다. 박수와 환호, 칭찬과 보상. 내 머릿속은 온통 실뿐.
실이 아닌 올가미. 깜짝 놀라 끊어버렸다. 바닥에 축 늘어진 몸 덩어리. 넌 이제 자유야. 가고 싶은 데로 가. 어디로? 여기는 어딘데? 그런데 몸은 어떻게 움직여? 네가 알아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