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부사장의 해고, 내 목소리는?

내 목소리 내기 1

by 책뚫기

몇 주 전 즐겨보는 유튜버의 영상이 올라왔다. 애플이 조달 부사장인 토니 블레빈스를 해고했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애플이 그 사람을 해고한 이유는 SNS에 올라온 한 영상 때문이다.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어떻게 비싼 차를 타고 다닐 수 있었는지 인터뷰하고, 그 영상을 SNS에 올리는 인플루언서가 있는 모양이다. 인플루언서는 문제의 그 애플 부사장을 인터뷰했고, 인플루언서와 애플 부사장은 1981년 코미디 영화 Arthur의 대사를 패러디했다. 어떤 일을 하냐는 인플루언서의 질문에 애플 부사장은 차에서 비싼 차를 몰고, 골프를 치고, 가슴 큰 여자를 만진다고 답했다. 애플 부사장의 차에는 그의 아내가 타고 있었고, 그의 아내 또한 둘 사이에 오가는 농담에 호탕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영상 속 애플 부사장은 좋은 차와 호탕하게 웃어주는 아내, 그리고 유머까지 겸비한 성공한 사람처럼 보였다.


애플의 최근 신제품 애플 워치에서는 여성의 생리 주기를 체크해주는 기능을 추가했다. 그만큼 여성의 건강을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이자 가치로 삼고 있다. 그런 와중에 애플 부사장이 여성의 가슴을 소재로 장난스러운 농담을 SNS에 올렸고, 애플은 해당 부사장을 해고하였다. 애플의 가치와 그 부사장의 언행이 심각하게 충돌한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유튜버는 영상 속에서 가슴 큰 여자를 만지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유머에 자신도 그러고 싶다고 농담을 던졌다. 효과음으로 웃음소리를 더해서 웃자고 하는 소리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유튜버는 영화를 패러디한 장난스러운 유머에 죽자고 달려드는 애플이 너무 오버한 것 아니냐는 뉘앙스를 덧붙였다. 더욱이 애플 부사장의 발언이 SNS상에서 문제가 되거나 기사화되지도 않았다고 소개했다. 과연 그런 애플의 결정이 바람직한가?




그럼 이 사태에 대한 나의 생각, 나의 목소리는 무엇인가?


나는 30대 중반의 남성이다. 한 여성의 남편이고, 이제 갓 돌이 된 아이의 아빠다. 나와 아내는 매일 저녁 산책을 나간다. 유아차에는 아이를 태우고, 인적이 드문 한적한 길을 선택하여 1시간 정도 산책을 한다. 최근 해가 짧아지면서 우리의 산책길은 더더욱 어두워졌고, 종종 아내는 “혼자라면 이런 길은 산책 못할 거 같아.”라고 말한다.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대한민국 이삼십 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대부분의 문항에 비슷한 답을 했지만 유독 안전과 관련해서는 남성과 여성이 큰 차이를 보였다. 이삼십 대 남성은 70~80%가 범죄·전쟁·사고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반면 여성은 50%만 범죄·전쟁·사고에서 안전하다고 답했다. 반대로 말하면 여성은 절반 정도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물론 나도 어두운 길을 혼자서 걸으면 조금 무섭다. 그러나 그것은 귀신이나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심에 가깝다. 그렇기에 나는 혼자서 어두운 길을 걸을 수 있다. 상상 속 공포에 질려 가고자 하는 길을 걷지 못할 만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아내가 어두운 길을 혼자 걸으며 느끼는 공포는 조금 다르다. 상상 속 공포가 아니다. 심심치 않게 뉴스에서 접하는, 사람에 대한 공포다.


음성학자 신지영 교수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언어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말을 할 때는 말을 하는 자신의 감수성보다 말을 듣는 상대의 감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방송에서 떼쓰는 어린아이에게 “땡강”이라는 자막을 달곤 한다. 하지만 땡깡은 일본어 덴칸에서 비롯된 말이고, 이는 뇌전증을 뜻한다고 한다. 즉 떼쓰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뇌전증 환자가 발작하는 모습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듣는 아이에게도 실례가 되는 말이지만, 방송에서 쓴다고 한다면 실제 뇌전증을 겪는 환자분이나 그 가족분들에게 큰 실례가 되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파행’이라는 표현도 문제가 되는데 이는 절뚝거리는 걸음, 절름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애플 부사장이 ‘가슴 큰 여자를 만지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하는 장면을 SNS에 올렸다. 처음에 나도 ‘저 정도 농담이야 할 수 있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를 중심으로 생각했을 때다. 나는 성적 놀잇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는 남성이다. 나는 상상으로도 그런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다. 하지만 SNS는 불특성 다수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수많은 여성, 심지어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의 상처를 지닌 여성도 적지 않을 거다. ‘가슴 큰 여자를 만진다는 말’을 대중 앞에 떠드는 게 유머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 사실과 그들의 상처는 만나도 괜찮을 걸까?


나는 애플의 해고 결정에 적극 찬성한다. 나아가 나의 아내가 두려움 없이 어둑한 길을 혼자 걸을 수 있는 세상을 찬성한다. 여성이 장난감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유머가 되지 않는 세상을 찬성한다. 지나친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 아니냐는 비판을 받더라도 나는 찬성에 한 표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