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공연을 보러가다

웅이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by 책뚫기

2008년 대학에 입학하고 풍물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면서 웅이를 만났다. 시간이 흘러 웅이와는 벌써 15년 지기 친구가 되었다. 아마 20년, 40년, 60년 지기가 될 거다.


나는 웅이에게 천둥벌거숭이 또라이라고 하고, 웅이는 나를 방구석 소시오패스라고 한다. 외향적이고 늘 친구들 곁에 있으려는 웅이와 되도록이면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나. 우리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대학교 1학년 때, 웅이와 친해진 지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을 때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풍물 동아리 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약 8개의 과가 모인 풍물 연합 패는 월~목요일 중 이틀은 각 과의 소모임 활동, 금요일은 전체 풍물 모임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과 소모임 활동 날도 어차피 연습 장소가 같아서 다른 과와의 교류가 비교적 많았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나를 웅이가 불러 세웠다.


“오늘 우리 과 선배 생일 파티인데 같이 가자!”


“내가 왜?”


웅이는 같은 풍물패여서 서로 아는 사이니 못 갈 이유가 뭐냐고 덧붙였다. 나는 그게 생일파티에 가야 할 이유가 되냐고 되물었다. 아무튼 웅이는 자신이 친한 사람들끼리도 친해지길 바랐다. 자신의 인맥이 하나의 웅이 왕국으로 통합되길 꿈꿨다. 나는 집에 가려고 안간힘이었고 웅이는 나를 데려가려고 안간힘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였나? 주말이었다. 나는 나의 생일을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보내고 있었다. 생일이 뭔 대수인가? 내게는 생일이나 생일이 아닌 날이나 똑같은 하루였다. 그런데 저녁 시간 때쯤 집 초인종이 울렸다. 그 시간에 우리 집에 올 사람이 없었기에 무척 낯선 종소리였다. 문을 열고 보니 웅이가 생일 케이크를 들고 서 있었다. 대뜸 웅이가 생일 축하한다며 생일 케이크를 내게 내밀었다. 얼떨결에 생일 케이크를 받았다.


“어… 고마워.”


웅이는 같이 나가 저녁밥이나 술이라도 먹을 참이었나 보다. 근질근질한 몸으로 서있는 웅이에게 나는 말했다.


“그래 가라”


나는 문을 닫았다.


천둥벌거숭이 또라이 웅이와 방구석 소시오패스인 나는 서로 맞는 구석보다 안 맞는 구석을 찾는 게 훨씬 쉬울 거 같은데, 아무튼 나는 웅이와 15년 지기 친구다.






웅이와 내가 15년 지기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중요한 고리 중 하나는 ‘노래’다. 웅이와 나는 시간 여유가 날 때마다 코인 노래방을 갔다. 발라드, 락, 힙합을 즐겨 불렀다. 둘 다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서로의 노래를 녹음하기도 하고, 서로의 노래를 평가하기도 했다. 천둥벌거숭이 또라이 웅이는 종종 노래 부르는 자신의 모습에 취해 동영상을 찍어 내게 보내기도 했다. 씻고 나온 참인지 대충 거적때기만 걸친 채로.


웅이와 나는 교사가 된 뒤에도 종종 만나 노래방을 갔다. 그리고 보컬 학원에 같이 등록하여 레슨도 받았다. 보컬 학원 선생님의 힘을 업고 지역 축제 무대에 올라가 보기도 했다. 뻗뻗하게 굳은 차렷 자세로 노래 부르는 내 모습을 영상을 통해 보고 웅이와 나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노래를 그만두었고, 웅이는 계속 노래를 불렀다. 여러 밴드를 찾아다니며 보컬로 지원했고, 계속해서 무대 경험을 쌓았다. 웅이는 천둥벌거숭이인 만큼 친구가 많았기에 수많은 친구들의 결혼식 축가를 불러주었다. 시간이 흘러 웅이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점점 웅이가 저 멀리 뚜벅뚜벅 걸어가는 듯했고, 반대로 한참 뒤로 간 내가 보였다.


한 달 전, 오랜만에 웅이 부부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나와 내 와이프가 주선한 소개팅의 연으로 웅이는 결혼을 했다. 나의 짱친 웅이와 와이프의 짱친이 결혼한 덕분에 나는 결혼을 해서도 웅이를 주기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의 아들 담박이와 놀면서 시간을 보내다 문득 웅이가 노래를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달에 공연을 하는데 괜찮은 지 봐달라는 거였다.


노래는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었다.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잠깐이면 될 거라고 했잖아
여기 서 있으라 말했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이적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중


피아노 반주와 담백하고 묵직하지만 애달픈 이적의 목소리가 인상적인 곡이다. 나는 이 곡을 흔한 연인 사이의 이별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웅이의 설명과 앨범 커버 사진을 보니 이 곡이 유기견의 입장에서 쓰인 곡이란 걸 알게 되었다. 가사가 다르게 느껴지고, 애달픈 마음이 배가 되는 듯했다.


물끄러미 선 채 해가 저물고
웅크리고 앉아 밤이 깊어도
결국 너는 나타나지 않잖아
거짓말 음 거짓말

이적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중


웅이는 노래를 불렀고, 나는 담박이를 품에 앉은 채 웅이의 노래를 들었다. 담박이는 노래를 부르는 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웅이의 노래는 좋았다. 리듬이 도드라지지 않은 잔잔한 노래는 특히 느낌을 살리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웅이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그 곡의 느낌이 살아있는 듯했다. 다만 이 곡을 꼭 웅이가 불러야 할까? 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내가 나의 고유성(Originality)에 대해 고민하기 때문인지 웅이의 곡에 웅이의 고유성이 드러났으면 했다. 그래서 나는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라 웅이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침 웅이도 보컬 선생님에게 곡의 후반부의 애드립은 웅이의 스타일로 바꿔보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다음날부터 웅이는 유튜브에서 다양한 가수들이 부른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을 들어본 모양이다. 그중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 가수들의 표현을 참고하여 끝내 자신만의 애드립을 만들었다. 하루는 퇴근길에 웅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애드립을 만들었는데 들어달라는 거였다. 나는 여전히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웅이의 노래에 웅이가 느껴지는 듯했다.


“우와! 멋지다! 곡에서 네 느낌이 나!”






다시 시간이 흘러 웅이의 공연 날이 되었다. 웅이의 공연을 찾아가는 건 즐거운 일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혼자 담박이를 돌보고 있을 아내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선뜻 공연을 보고 오라고 해준 아내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낯선 공연장에 들어갔다.


웅이는 밴드 ‘업스트림’의 보컬이다. 2년마다 공연을 한다는데, 밴드 각 멤버들이 십시일반 돈을 걷어 공연장을 빌렸다고 한다. 관객들을 위한 음료와 간식도 준비했다. 관객들은 밴드 멤버들의 지인들이었는데 공연료는 무료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쓰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자 관객들을 모시다시피 한 공연이었다. 문득 그들의 꿈과 열정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밴드 업스트림은 많은 곡을 준비했지만 나는 단연코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을 들으러 공연장에 갔다. 웅이의 고민이 들어갔을 그 곡, 웅이의 고유성(Originality)이 들어갔을 그 곡, 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라 웅이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을 들으러 갔다.






행복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슬픔? 아니다. 사랑과 증오가 동전의 양면인 것처럼 행복과 슬픔도 그런 관계이다.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게 완벽한 예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고, 행복의 반대는 반박의 여지없이 지루함이다.

흥분이야말로 실질적인 의미에서 행복의 동의어이고 당신이 추구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흥분은 만병통치약이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열정’이나 ‘행복’을 추구하라고 권할 때, 사실 그들은 똑같은 하나의 개념에 주목한다. 그건 바로 ‘흥분’이다.

다시 우리 이야기로 되돌아오자. 당신이 물어야 할 것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나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나를 흥분시키는가?”이다.

출처: 팀 페리스, 나는 4시간만 일한다, 최원형 윤동준 옮김, (다른상상, 2017), 63


로봇과 인공지능이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에 사람에게 꼭 필요한 능력은 ‘잘 노는 능력’이라고 말하곤 한다. 자본가들의 욕망 때문에 과연 그런 세상이 올까 싶지만 잘 논다는 건 자신을 흥분시키는, 자신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닐까? 상상만 해도 기대되는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닐까?


꿈과 목표에 대해 고민하는 요즘, 나는 잘 노는 사람들이 무척 부럽다. 자신의 심장이 뛰는 일을 하는 웅이가 그래서 부럽다. 점점 더 노래를 잘하는, 점점 더 노래로 잘 노는 웅이가 부럽다. 점점 더 노래로 잘 놀기에 더욱 가치 있는 보컬이 되어가는 웅이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