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며느라기』를 읽고,
수신지 작가님의 책 『며느라기』는 사랑하는 무구영과 결혼하여 며느라기를 겪는 민사린의 이야기다. 나는 30대 여성의 남편의 입장에서 민사린을 보았다. 답답, 짜증, 화, 슬픔, 안도, 연민, 공감 등 수많은 감정을 느꼈다. 게다가 만화 형식이어서 몰입하여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읽어버린 탓인지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미처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내 곁을 혼란스럽게 떠돌았다.
『며느라기』를 펼치자마자 고민이 가득 찬 민사린이 그 고민의 깊이만큼 출렁이며 그네를 타고 있다. 이어서 민사린과 무구영의 결혼을 기념하는 웨딩 포토가 펼쳐진다. 자신감과 뿌듯함에 가득 찬 무구영과 어색하지만 잔잔한 사랑을 머금은 민사린의 결혼이다. 무구영과 민사린은 수많은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행진한다.
무구영과 민사린은 웃고 있다.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내 마음 한편은 왜 이리 불안했을까? 두근거리는 내 심장은 무엇을 그렇게나 걱정했을까?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애니메이션 영화 『UP』 (2009)이 떠올랐다.
영화 UP 또한 행복한 두 남녀의 사랑으로 시작한다. 모험을 꿈꾸던 둘은 첫 만남에 파라다이스 폭포에 함께 가기로 약속한다. 결혼을 하고, 파라다이스 폭포에 가기 위한 돈을 저금통에 저축하며 하루하루를 착실히 살아간다. 하지만 자동차가 고장 나는 등 목돈이 들어갈 일이 생길 때마다 저금통을 깬다. 다시 모으고, 깨고, 다시 모으고, 깨고. 결국 노인이 되어서야 둘은 여행 표를 끊지만, 아내 엘리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 남편 칼만 덩그러니 혼자 집에 남는다.
무구영과 민사린은 행복한 결혼식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민사린의 결혼과 책 제목 『며느라기』는 나를 자꾸만 불안하게 만든다. 민사린은 행복할 수 있을까?
사춘기,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 되는 ‘며느라기’라는 시기가 있대. 시댁 식구한테 예쁨 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그런 시기. 보통 1,2년이면 끝나는데 사람에 따라 10년 넘게 걸리기도, 안 끝나기도 한다더라고.
민사린의 무구영의 남편이자 무구영 어머니의 며느리가 된다. 결혼 후 첫 시어머니의 생신. 민사린은 며느리가 된 도리로 시어머니의 첫 생일상을 차려드리기 위해 전날 밤 시어머니댁에 간다. 다음날 새벽, 민사린은 혼자 시어머니의 생일상을 차린다. 시아버지도, 시누이도, 남편도 모두 자고 있다. 자기 부인, 자기 엄마인데 남의 집 딸 혼자 생일상을 차린다.
민사린은 시부모님의 결혼기념일도 챙긴다. 민사린은 결혼기념일을 챙겨드리고 보답으로 시어머니에게 앞치마를 선물 받는다. 민사린은 제사 때도 간다. 남의 집 조상님을 위해 전을 부치고,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답답하고 마음 아픈 장면이 너무나 쉽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던 중 무언가 툭 떨어진다.
민사린과 무구영의 청첩장. 책이 내게 질문을 던진다. ‘민사린은 왜 결혼했을까?’ ‘우리는 왜 결혼을 할까?”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몸을 맡겼던 민사린. 소외되었던 자신의 목소리를 집으로 돌아가는 남편에게는 조심스레 토해내 본다. 하지만 사랑을 약속했던 무구영 마저……
사린이 너랑 결혼하고 집안 분위기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몰라. 그날도 작은 아버지 앞에서 부모님이 당당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그걸 망치고 싶지 않았어.
정말 미안해. 그런데… 그런데 그냥 부모님 만나는 날만,
그냥… 그렇게… 있어주면 안 될까?
그날만.
민사린은 홀로 카페에 가서 단 음료를 주문한다. 지나간 일들을 돌아본다. 자기가 잘못된 건가? 아니면 세상이 잘못된 건가? 민사린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한 순간들이
자꾸자꾸 떠오르는 걸
어떡하지?
결혼을 왜 할까?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매일 헤어질 필요 없이 늘 곁에 함께 하고 싶어서? 분명 그랬을 거다. 두 사람은 배려와 이해를 약속하며 행복을 기대했을 거다.
“결혼은 집안의 결합이야!”
무슨 부족 사회도 아니고, 장사치들의 거래도 아니고, 묘한 것이 끼어든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설, 일 년에 한 번 있는 추석, 일 년에 한 번 있는 어버이날, 일 년에 한 번 있는 시어머니 생신, 일 년에 한 번 있는 시아버지 생신, 일 년에 한 번 있는 김장. 본질은 같지만 껍데기만 달리하여 돌아오는 행사를 거치면서 민사린은 조금씩 조금씩 사라진다. 끝내 진정한 며느리가 된다.
MZ세대 며느리들은?
나는 M세대다. 그리고 나의 아내도 M세대다. 나는 내가 대한민국에서 M세대로 태어나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M세대만 해도 여성들이 자기표현을 훨씬 적극적이고 솔직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세상은 며느리들에게 민사린이 되라고 요구하고, 많은 M세대의 여성들 또한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순간들을 맞이한다.
그러나 나의 아내와 아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이 조금은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의 친구 중 한 명은 명절날 남편과 대판 싸우고 가출을 했다. 그 뒤로 시댁에서 자기 아들이 이혼남이 될까 무서워 며느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내의 친구 중 한 명은 아예 명절날 시댁에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게 싫어서 결혼하지 않는 친구도 있다.
나의 아내는? 민사린만큼은 아니지만 명절에 전을 부칠 때 아내가 도와준다. 조부모님 생신 때 식당에 함께 가준다. 김장 때 어차피 우리가 먹을 김치라며 함께 돕는다. 장인어른, 장모님에게 소중한 딸이 왜 하필 내게 시집을 와서 남의 조상, 남의 조부모님을 위해 시간을 쓰나. 미안하다. 그리고 참 고맙다.
무구영은 민사린에게 가족들이 모이는 그날만은 스스로를 버려달라고 요청한다. 어떻게 사랑하는 자기 아내에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을까 싶은데, 무구영의 마음속에는 오래도록 스스로를 버린 자신의 어머니가 있다. 무구영은 자기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를 버려달라고, 민사린에게 부탁한다.
나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는 연애결혼도 아니었다. 양가 부모님의 정략결혼.
정략결혼
가장이나 친권자가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하여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키는 결혼.
출처: 표준 국어 대사전
애당초 어머니는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결혼했다. 나의 어머니는 민사린을 넘어 한서린이라 해야 적당할까? 만약 우리 집안이 나의 아내에게 민사린을 요구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부모 자식의 연을 끊을 거다. 그러나 유일하게 내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한서린, 나의 어머니다.
나의 어머니, 나의 한서린, 그녀의 마음에 맺힌 한이 부디 풀리기를. 환갑을 맞은 그녀의 삶이 새 출발이 되어 ‘보상받지 못할 그녀의 한’을 쓸어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