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서 오세요. 우굴 밖 청개구리의 삶을 꿈꾸는 우구리입니다. 오늘도 저의 우물에 놀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년도 한 달이 훌쩍 흘러가는 사이 안녕하신가요? 허망하게 흘러가는 시간, 정해진 시간이 다해가는 건지 자꾸 넘어지시고 다치시는 할아버지 소식에 제 마음은 요즘 자주 헛헛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올라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터라 이러다가 제게 주어진 시간이 훌쩍 끝나버리면 어떡하나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다가도 이 정도면 잘 살았다는 생각에 헛된 미련을 애써 날려 보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참 오래된 고민입니다. 아마 제 기억에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듯합니다. 남들과 똑같이 자고, 먹고, 공부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죽는다면 굳이 제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업적을 쌓아 위인전에 실릴 만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개구리들 중 똑같은 하나가 아니라 특별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깜냥은 부족했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조차도 버거웠습니다. 위인 개구리가 될 만한 거창한 일도 아닌, 고작 저 하나 살아남기 위한 입시 공부 속에서 수없이 좌절했고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올챙이 시절이 지나 개구리가 된 후, 삶에 정해진 의미 따위는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개미가 어쩌다 태어나서 그냥 개미로 살다 가듯이 저 또한 어쩌다 태어나서 그냥 개구리로 살다 가는 거겠지요.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저는 먼지보다 작은 것, 게다가 아주 찰나의 시간 살다가는 존재니까요.
우주의 관점에서 저는 그다지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무의미한 존재에 가깝겠지요. 그래서 늘 갈증이 납니다. 결국 ‘나는 왜 사는가?’란 질문으로 돌아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제 삶이 절망스럽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그다지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삶에 절망이 찾아왔던 때, 그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 룰루 밀러 선생님도 그런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모든 존재는 중요하지 않아’와 절망이 합쳐지던 날 룰루 밀러 선생님은 길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녀는 구원의 빛,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만나게 됩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탠퍼드 대학 초대 총장으로 어류 도감을 만드는 일에 공헌한 사람입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류를 발견하고 발견한 개체에 학명을 붙이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가히 영웅과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수년의 연구 결과가 불타 없어졌을 때, 아내와 딸 그리고 친구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을 때, 수십 년의 어류 콜랙션이 지진으로 바닥에 내팽개쳐졌을 때, 그는 단 한 번도 절망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화재 사고 이후 ‘이 시련에서 얻은 교훈은 딱 하나, 당장 출판하라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아내를 잃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아내를 맞이했습니다. 수십 년의 어류 콜랙션이 지진으로 혼돈에 빠졌을 때 그는 보존액이 오기까지 낮이나 밤이나 물을 뿌리라고 지시했습니다. 보존액이 도착하자마자 그는 기억나는 물고기에 다시금 이름을, 이번에는 지진에도 떨어지지 않도록 바느질하였습니다. 그는 시련이 올 때면 더 거세게 밀어붙였습니다. 어김없이 다시 물고기를 수집하는 여정에 올랐던 것입니다.
룰루 밀러 선생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데이비드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데이비드의 원동력이 궁금했습니다. 망해버린 삶, 처참한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갔던 데이비드에게 숨겨진 희망의 문장은 무엇이었을까요?
룰루 밀러 선생님은 이미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의 삶을 그의 저서로 추적합니다. 그녀는 데이비드의 저서 수십 권을 파헤치며 끝내 숨겨진 희망의 문장을 찾아냅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영웅적인 과학자였습니다. 과학자답게 그 또한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존재가 중요하지 않다는 과학적 세계관을 저서와 강의를 통해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과학적 세계관이 염세주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며 위대한 학자 다윈의 말을 소개했습니다.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있다.
데이비드는 인생의 허망함을 곱씹는 실존적 탐구는 몹쓸 짓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진화가 선물한 소중한 전기, 다양한 경이로운 감각들을 느끼며 과학적 수수께끼를 푸는 데 집중하라고 말했습니다. 몸이 아직 살아있는데도 죽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럼 데이비드는 온갖 시련 속에서도 허망함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걸까요? 그의 연구 결과가 화재로 다 탔을 때도? 소중한 아내가 병으로 죽었을 때도? 사랑하는 딸이 죽었을 때도? 수십 년의 어류 콜랙션이 지진으로 처참히 뒹굴었을 때도? 그의 몸은 아직 살아있었고, 경이로운 감각들을 느낄 수 있었기에 다시금 과학적 수수께끼를 푸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는 건가요? 삶 자체가 경이로우니, 단지 그 때문에 시련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는 건가요?
아니었습니다. 룰루 밀러 선생님은 영웅적인 과학자 데이비드의 모순을 발견하게 됩니다. 데이비드는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그가 수십 년간 수집한 어류들이 나뒹굴었던 때를 에세이 속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재앙 앞에서 그렇게 푸념하지 않는 인간을 만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평범한 한 남자가 자기 자신에게 그토록 희망차고, 그토록 용감하며, 그토록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는 모습을 보여준 일은 그전엔 결코 없었다. 왜냐하면 결국 살아남는 것은 사람이고,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도 사람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도 사람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세계관에 따르면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자연은 사람의 사정 따위에 관심이 없으며 당연히 사람의 사정을 봐주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사람의 의지가 강하더라도 자연이 “그래 네 의지가 가상하니 너의 운명을 살펴주마”라고 호의를 베풀지 않습니다. 그러나, 데이비드 또한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그 거짓말이 진실이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룰루 밀러 선생님은 위대한 과학자 데이비드 조차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을 속여야 했다는 사실을 마주했습니다. 시련을 이겨내려면 자신을 속여야 함을, 자기기만이 필요하다는 걸 발견하였습니다. 과학적 세계관 안에는 결코 사람을 위한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과학적 세계관을 속여야만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걸…
기만의 과학적 표현은 ‘긍정적 착각’입니다. 룰루 밀러 선생님은 데이비드가 ‘별 근거는 없더라도 막연하게 자신의 미래가 낙관적일 거라 믿는 긍정적 착각’의 수준이 높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데이비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옳은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하는 ‘낙천성의 방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끔찍하게도 데이비드는 ‘자연의 사다리’를 믿었습니다.
데이비드는 ‘자연의 사다리’라는 청사진을 찾고 싶어 했습니다.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지위가 정해져 있는지를 찾아내려 했습니다. 그 청사진을 통해 열등한 것과 우월한 것을 찾아내고자 했고, 인간이야말로 사다리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인간에게 남겨진 열등한 속성을 제거하고 우월한 속성을 보존 및 계발함으로써 인류를 보다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데이비드는 우생학을 선도했습니다. 열등한 인간 개체를 없애고, 우월한 인간 개체만 남겨야 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데이비드는 장애아, 기형아를 넘어 도둑질한 사람, 거짓말한 사람 등 비도덕적인 사람들까지도 거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이르렀습니다. 그게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데이비드의 주장은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룰루 밀러 선생님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더는 영웅으로, 자신의 길잡이로 여길 수 없었습니다. 우생학의 피해자인 애나와 메리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는 데이비드에게 분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룰루 밀러 선생님은 다시 길을 잃었습니다. 과학적 세계관 안에는 희망이 없고,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기만이란 긍정적 착각에는 파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답답함에 우생학의 피해자 애나에게 묻습니다. 찰나의 먼지 같은 존재, 의미도 없는 존재, 게다가 엄청난 시련과 폭력에 희생당한 애나에게 묻습니다. 그건 룰루 밀러 선생님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습니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애나가 답을 하지 못하며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때 함께 살아남았던 메리가 불쑥 말했습니다.
“나 때문이지!”
애나가 웃으며 답했습니다.
“그렇지. 물론이지. 메리 때문이야.”
룰루 밀러 선생님은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또한 나비에게 민들레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고 덧붙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적 세계관에서 애나는 먼지보다 작은 찰나의 존재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우생학의 관점에서는 거세해야 할 존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생학의 지옥에서 애나를 보살펴준 메리의 관점에서 애나는 돌보아 줄 존재이자 삶의 의미, 나아가 자신의 생명끈을 잡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룰루 밀러 선생님은 그 깨달음을! 애나도 중요하고, 메리도 중요하고, 이 책을 읽고 있는 저 또한 중요한 개구리라는 깨달음을 전해줍니다.
진화론을 쓴 생물학자 다윈이 룰루 밀러 선생님에게 전합니다. 그리고 룰루 밀러 선생님은 제게, 그리고 저는 오늘 우물에 찾아와 주신 당신께 전합니다.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입니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이 문장을 읽고 제 마음이 너무나, 너무나… 아팠습니다. 미안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사 개구리입니다. 벌써 교사 생활을 한 지 십 년이 흘렀습니다. 저도 마음이 있는 생물인지라 어린 인연들을 미워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티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분명 미운 마음은 어떻게든 새어나가 어린 인연의 마음에 톡톡톡 닿았을 겁니다.
제가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저는 몰랐습니다. 학교 교육 속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미움이었던 그 어린 인연이, 누군가에게는 꿈이자 희망이고, 누군가에게는 친구이자 버팀목이고, 누군가에게는 미소이자 행복이었을 텐데… 저는 그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렸기에 마치 우생학을 신념으로 삼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잠시 맺혔다 지나간 수많은 어린 인연들에게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룰루 밀러 선생님은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희망을 찾았습니다. 세상에는 우주의 관점이 아닌 수많은 관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관점에 따라 우리 모두는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오히려 그것이 과학적 세계관임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찰나의 먼지’라는 과학적 세계관이 무너지고, ‘우리 모두는 수많은 의미를 지닌 장엄한 존재’라는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이 룰루 밀러 선생님 마음속에 자리합니다.
그러나 룰루 밀러 선생님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녀의 절망스러운 현실이 해결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녀는 무엇을 향해, 어디를 향해 가야 할까요? 그녀의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육신이 죽고, 시간이 흘러 그의 정신마저 죽게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분기학자들의 과학적 발견이 세상에 나온 순간입니다.
룰루 밀러 선생님의 쉬운 설명을 전해드려 보겠습니다. 수천 년 동안 우리가 산꼭대기에 사는 모든 생물을 ‘산어류’라고 불렀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산에 사는 어류인 산어류에는 산염소, 산두꺼비, 산독수리, 그리고 산사람 등이 포함되겠지요. 그런데 이들은 산꼭대기 고도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비슷한 피부, 격자무늬 피부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눈에는 산꼭대기라는 서식지와 격자무늬 피부라는 외모가 같다 보니 모두 산어류라는 동일한 종류의 생물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지금껏 어류라고 불렀던 것들이 바로 그와 같은 경우입니다. 물에 살고 격자무늬 비늘을 가지고 있어 모두 같은 종으로 보이지만 사실 염소, 두꺼비, 독수리, 사람 관계처럼 진화적으로 전혀 관련이 없거나 몇몇은 오히려 사람과 가까운 종도 있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룰루 밀러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그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주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서 그가 사랑하는 물고기를 빼앗는 모습을 지켜보며 느끼는 약간의 병적인 만족감을 제외하면, 내게 그것이 중요한 일인가?’
인간이 그려놓았던 ‘물고기는 존재한다’는 선이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인간의 편리를 위해, 인간의 직관에 의해 그어진 수많은 선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그녀는 인간이 자연 위에 그려놓은 선들 너머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윈이 거기 있을 것이라 약속했던 땅, 분기학자들이 볼 수 있었던 땅, 어류는 존재하지 않으며 자연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경계가 없고 더 풍요로운, 아무런 기준선도 그어지지 않은 그곳에 답이 있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어느 해 7월이었습니다. 룰루 밀러 선생님은 바에서 일곱 살 연하의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그녀에게 키스했습니다. 그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룰루 밀러 선생님은 여자에게 키스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룰루 밀러 선생님은 일곱 살 연하의 그녀와 함께 살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룰루 밀러 선생님은 자신이 남자를 필요로 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크고 나쁜 세상에 맞서 자신이 작고 보호받는 존재라는 느낌을 갖게 해 줄 남자가 필요하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도 안 되게, 그녀에게서는 정말 좋은 맛이 났다.
룰루 밀러 선생님은 연하의 그녀와 함께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건 내가 그려왔던 인생이 아니었다. 체격이 아주 작고, 나보다 일곱 살이 어리며, 자전거 경주에서 나를 이기고, 툭하면 나를 향해 어이없다는 듯 눈동자를 굴리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것은. 그러나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다.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자연이 프린트된 커튼 뒤를 들춰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았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었다.
이건 내가 그려왔던 인생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다.
저는 그려온 인생을 살고 있을까요?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을까요? 손님은 어떠신가요?
우주의 관점에서 저는 찰나의 먼지 같은 존재입니다. 우생학의 관점에서 저는 몸집도 작은 데다 동양 출신 개구리이기에 거세 대상에 가까울지 모릅니다. 우리 사회의 관점에서 저는 돈 주면 가르치는 교육 공무원입니다. 제 아내의 관점에서 저는 소중한 남편입니다. 제 아이의 관점에서 저는 밥 주고 안아주고 재워주는 존재입니다. 손님의 관점에서 저는 말이 많은 시끄러운 개구리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하나를 놓치고 살아왔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바로 저의 관점. 저의 관점에서 저는 어떤 존재일까요? 우주, 우생학, 사회, 결혼, 자녀, 타인이 제게 그려놓은 수많은 선들 너머, 아무런 기준선도 그어지지 않았던 태초의 그곳, 바로 ‘나’.
저는 그려온 인생을 살고 있을까요?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을까요? 손님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