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어서 오세요. ‘진짜 나’를 찾아가는 우물 안 개구리, 우구리입니다. 오늘도 찾아와 주셔서 무척 감사드립니다. 다만 오늘 이야기는 다소 무겁고 우울할지 모릅니다. 혹시 요즘 힘든 일이 많으셨거나 슬픈 일이 있으셨거나 우울한 일이 있으셨다면 죄송하지만, 오늘은 그냥 돌아가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제게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마음의 여유가 있으시다면 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야기를 꺼내 보겠습니다.
옛날에 저의 외할머니께서는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셨습니다. 벌써 이십 년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매일 외할머니께서는 구멍가게에서 고스톱을 치셨습니다. 외할머니의 구멍가게는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자 술집이자 오락실이었고, 외할머니의 가게에서는 늘 담배 냄새가 났습니다. 어느 날 외할머니는 폐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외가 친척들은 덩달아 긴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통원 치료였고, 나중에는 입원 치료였고, 마지막에는 치료 없는 입원이었습니다.
저 또한 스러져가는 외할머니를 종종 뵀습니다. 처음에는 힘겹게 움직이시는 외할머니를, 나중에는 초점 잃은 눈동자로 앉아계시는 외할머니를, 마침내 결국 침대에 누워만 계시는 외할머니를 마주했습니다. 외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최악이 이 전의 최악을 덮었습니다. 매번 외할머니는 지금이 최악일 거란 저의 생각을 가볍게 가볍게 부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외할머니를 만났던 날, 상상조차 못 했던 최악이었습니다. 암은 외할머니의 모든 살을 거두어 간 듯했습니다. 뼈에 찰싹 달라붙은 피부는 몸을 전혀 보호해주지 못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직 숨을 쉬시는 외할머니가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울컥 터져 올라오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외할머니의 딸, 저의 어머니. 그 당시 자신의 삶을 바쳐가며 외할머니를 돌보던 저의 어머니. 어머니의 마음이 무너질까 두려워 울지 못했습니다. 저는 곧장 병원 복도로 뛰쳐나왔습니다. 짧은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심호흡을 했습니다. 오고 가는 친척들의 눈을 피하며 눈을 연신 깜빡이며 눈물을 말렸습니다.
마침내 외할머니는 마지막 긴 숨을 들이마셨고, 그 숨을 내뱉지 못하셨습니다. 곧장 장례식이 이어졌습니다. 장례식장은 이별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게라도 하려는 듯 바빴습니다. 어영부영 지나가버린 시간과 외할머니의 무덤,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수십 시간 달리다 보면 어딘가에 외할머니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무덤에 묻기 전, 외할머니의 뼛가루가 든 함에 손을 얹었습니다. 차가울 줄 알았던 함이 무척 따뜻하여 놀랐습니다. 화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뼛가루의 온도였겠지만, 제게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외할머니의 체온 같았습니다.
최근 알베르 카뮈 선생님의 책 『페스트』를 읽고, 펑펑 울었습니다. 사형 선고와 같은 열병 페스트, 사형 집행을 당하듯 고통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 사형에 저항하는 의사 리유(리외)와 동료들. 그들의 삶에서 외할머니와 저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리유는 1940년대 프랑스의 한 도청 소재지인 오랑시의 의사였습니다. 그는 매일 왕진을 다니며 환자를 돌보았습니다. 마치 공장의 기계처럼 환자들을 한결같이 치료해 주었고, 때로는 사정이 어려운 이에게 치료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죽은 쥐들이 도시를 뒤덮기 시작했습니다. 그 수가 날로 늘더니 하루에 6000마리, 8000마리의 쥐 시체가 수거되고 소각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내 곧 죽은 쥐는 사라지고, 대신 괴이한 열병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덮치기 시작했습니다. 괴이한 열병은 한 번 잡은 사람의 목숨을 이삼일 내에 끊어버렸고, 조금씩 조금씩 한 번에 더 많은 사람들을 덮쳐갔습니다.
괴이한 열병에 페스트란 이름이 붙었고, 끝내 오랑시는 봉쇄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오랑시 시민들 그리고 의사 리유는 긴 전쟁에 들어섰습니다.
의사 리유는 늘 그랬듯 공장의 기계처럼 자신이 맡은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다만 그의 역할은 더 이상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역할은 진단하는 일이었습니다. 페스트 환자를 발견하고 기록하고 등록하고, 다음에 선고를 내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럼 어김없이 구급차가 달려와 환자를 격리 병원으로 이송했고, 이후 환자의 숨이 끊어지면 시체는 커다란 구덩이에 묻히거나 소각되었습니다.
“선생님, 살려주세요! 저 사람 좀 살려주세요!”
“동정해 주세요, 선생님!”
환자의 가족들은 리유 손을 붙잡고 사정했습니다. 그러나 리유는 그들을 치료해 줄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는 마치 공장의 기계처럼 자신이 맡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뿐이었습니다. 환자들에게 리유는 더 이상 구원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 명의 저승사자, 사형 선고인이었습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리유에게 증오의 말을 던졌고, 리유는 아무 소용없는 동정심과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리유의 마음은 서서히 닫혀 갔고, 리유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임무가 수월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리유는 예나 지금이나 의사로서 본분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페스트에서 도망치지도 않았고, 페스트를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페스트를 거부했고, 있는 힘껏 싸웠습니다. 그는 페스트와의 전쟁 최전선에서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고, 동시에 원래 자신이 하던 왕진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돌아오는 것이 증오와 원망뿐이더라도…
신문기자 랑베르는 취재차 오랑시에 들렀다가 뜻하지 않은 귀양살이를 시작했습니다. 랑베르는 파리에 두고 온 아내를 하루빨리 만나고자 오랑시에서 탈출하는 데 집착했습니다.
랑베르는 리유를 원망했습니다. 시 당국이 오랑시 봉쇄를 결정한 데에는 리유의 주장이 한 몫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랑베르는 리유에게 자신은 페스트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서류를 써주라고 요구했습니다. 공장의 기계처럼 자신의 역할에 성실했던 리유는 당연히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랑베르는 어떤 것이든, 하물며 그게 페스트라 할지라도, 가장 인간다운 가치인 ‘사랑’을 방해할 권한은 없다고 따졌습니다. 동시에 그런 인간다운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리유가 영웅놀이에 빠져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장 인간다운 가치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리유는 왜 페스트와의 전쟁 최전선에 나서는가? 리유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위대함을 뽐내려고 최전선에 서고 있다!’
탈출하려는 랑베르의 집념은 끝내 암거래상들과 맞닿았습니다. 몇 번의 시도와 실패, 그리고 마침내 성공이 머지않아 보였습니다. 랑베르는 마음속에 찝찝함이 있었는지 틈틈이 리유를 찾아가 본인의 탈출 계획을 이야기했습니다. 예상과 다르게 리유는 단 한 번도 랑베르의 계획을 비난하지도 않았고 당국에 신고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리유는 한 판사가 랑베르의 탈출 계획을 알아차린 듯하니 서두르라고 조언했습니다. 랑베르는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선생께서는 내가 떠나는 것을 말리지 않으시나요? 말릴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요."
그것은 랑베르의 문제이고 랑베르는 행복을 택한 것이며, 리유 자신은 그에 반대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고, 그 문제에 관해서 자기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왜 저에게 빨리 서두르라고 하시나요?"
"아마 나 역시 행복을 위해서 무엇이고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겠죠."
리유가 공장의 기계처럼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던 건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랑베르의 생각은 오해였습니다. 랑베르가 쫓았던 건 부인을 향한 사랑이었다면, 리유가 쫓았던 건 오랑 시민들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리유는 랑베르에게 자신의 사랑을 강요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리유는 자신의 가치관이 옳다는 확신이 없었고, 그랬기에 랑베르의 사랑을 응원했습니다. 어쩌면 랑베르의 사랑은 리유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리유 또한 도시가 봉쇄되기 직전 시골 마을로 요양 보낸 아내를, 서서히 죽어가는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유가 원했던 건 오랑 시민들의 건강과 행복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공장 기계처럼 자신의 역할에 성실했습니다. 그는 가장 앞장서서 페스트와 싸웠고, 사람들의 죽음과 증오에 흔들리지 않으려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렸습니다. 그게 리유의 사랑이었습니다. 리유의 사랑은 끝없는 패배였습니다.
리유가 수많은 패배를 경험하고서야 페스트가 힘을 잃어갔습니다. 시 당국은 별 일이 없다면 2주 뒤에 도시의 봉쇄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날이 다가올수록 리유 또한 희망을 품었고, 희망을 품는 자신을 기쁘게 맞이했습니다. 아내의 병이 호전되고 있다는 전보만 온다면 리유는 새 출발을 할 수 있으리라, 오랑 시민 모두가 기쁘게 새 출발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리유에게 마지막 패배가 찾아왔습니다. 최전선에서 늘 함께했던 소중한 친구, 타루가 페스트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타루는 페스트와의 내기에서 이기고 싶다고 했지만, 끝내 그는 내기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패배의 침묵, 리유에게는 결정적인 패배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리유는 자신의 아내가 사망했다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누구보다 오랑 시민을 사랑했던 리유, 그는 페스트와의 전쟁 최전선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끝내 페스트는 힘을 잃었고, 도시는 개방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축배를 들고 축하의 불꽃을 쏘아 올렸습니다. 마땅히 리유는 이 전쟁의 영웅이어야 했으나 그는 결코 승리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리유의 사랑은 끝없는 패배였습니다.
리유는 페스트와의 내기에서 이겼습니다. 내기에서 이겨 남은 것은 추억뿐이었습니다. 리유는 우정을 알게 되었고 그것에 대한 추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리유는 애정을 알게 되었고 그것에 대한 추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희망 없는 추억이었지만 리유에게 남은 건 고난과 비난이 아닌 추억이었습니다.
도시는 개방과 동시에 희생자들을 잊었지만, 리유는 기억되기를 바랐습니다. 페스트가 유일하게 남긴 인간다운 것인 추억이 잊히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추억은 인간에게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증거였기에, 끝없는 패배 속 유일한 아름다움이었기에, 이를 남기기 위해 리유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외할머니의 투병 생활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저는 드문드문 외할머니를 뵈러 갔을 뿐이었지만,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함께 호흡했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셨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지만, 어머니 또한 끝없는 패배를 마주했을 겁니다.
어머니는 친척들과 함께 더 많이 더 자주 외할머니와 여행을 갔습니다. 거의 매일 외할머니를 지켰고, 더없이 사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하루하루 굽어가고 말라가고 누워가고 기억을 잃어갔을 것입니다. 외할머니는 한 명씩 한 명씩 사람들을 잊어갔고, 끝내 사랑하는 딸마저 잊어버렸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향해 매일매일 “엄마, 저 왔어요.”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꽤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최근 외할아버지께서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혼자 집에서 넘어지시고 수술을 하신 뒤로 자꾸 넘어지시고, 지금은 혼자 걷기도 어려워하십니다. 저는 어머니가 외할아버지를 다른 친척들에게 맡기든 어쩌든 어머니의 인생을 사시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가 모시기로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힘을 잃어가시며 불쑥 많아진 외할아버지의 투정과 짜증이. 친척들이 무심코 건넬지 모르는 “이런 건 조금 더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닐까요?”와 같은 주제넘은 말 하나하나가. 집안일을 별로 하지 않는 아버지가. 제 눈에는 어머니가 마주할 끝없는 패배들이 보였습니다. 어머니에게 남을 건 희망 없는 추억뿐일 거라는 걱정.
아마 리유는 페스트가 다시 온다고 해도 다시 공장의 기계처럼 자신의 역할에 성실할 것이라 믿습니다. 그게 리유의 사랑이고, 끝없는 패배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이는 게 리유일테니 말입니다. 저는 그 모습에서 감히 평가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걱정이란 먼지를 털어내고 나자 비로소 어머니란 위대한 존재를 마주하게 됩니다. 다시 외할아버지와 함께 호흡하기로 한 우리 어머니. 그게 어머니의 사랑이고, 끝없는 패배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이는 게 바로 우리 어머니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존재 자체로 제게 영웅이며, 아름다움입니다. 이 글을 빌어 분명히 전합니다. 어머니는 참 대단한 분입니다. 저는 그런 어머니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