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는 것이 인간이다』, 픽사피치
안녕하세요? 잘 들리시나요? 아, 네네! 저는 우물 밖 청개구리의 삶을 꿈꾸는 우물 안 개구리 우구리입니다. 오늘은 손님께 간단한 말하기 전략을 소개해드리려고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네? 관심 없으시다고요? 뚜 뚜 뚜… 엇! 저기… 크흠…
어라? 아이고! 어서 오세요. 언제… 오셨나요? 혹시… 다 보고 계셨나요? 하하하, 거절당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는 않았는데. 뭐 하는 수 없지요. 네? 말하기 전략에 관심이 있으시다고요! 아이고, 이런 귀인이 오시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보셨겠지만 제가 워낙 인기 없는 말쟁이인지라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래도 저에게는 도움이 된 전략이어서 꼭 나눠보고 싶었거든요. 손님 덕분에 설명할 수 있어서 무척 감사드립니다.
혹시 ‘픽사 피치’라고 들어보셨나요? ‘픽사 피치’는 픽사에서 스토리 아티스트로 일했던 에마 코츠라는 분이 이름 붙인 말하기 방식입니다. 에마 코츠는 모든 픽사 영화가 동일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요. 그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에 .
매일 . 어느 날
. 그래서 .
그래서 . 마침내
.
예를 들어, 픽사 애니메이션 <업 Up>을 픽사 피치를 이용하여 설명하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옛날에 칼 프레드릭슨은 파라다이스 폭포를 모험하는 꿈을 꿨고, 같은 꿈을 가진 엘리를 만나 결혼했다. 매일 그들은 파라다이스 폭포에 갈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성실히 살았다. 어느 날 둘은 노년에 이르러서야 파라다이스행 표를 끊었지만, 아내 엘리가 세상을 떠나면서 칼은 혼자가 된다. 그래서 칼은 홀로 노년을 보내다 한 사건을 계기로 파라다이스 폭포로 여행을 떠난다. 칼은 가는 도중 시끄러운 꼬마 러셀 그리고 동물 두 마리와 합류하게 되는데, 칼은 그들이 위기에 처하자 자신과 상관없다며 그들을 버리고 홀로 파라다이스 폭포에 도착한다. 그래서 칼은 평생의 소망을 이루었지만 무언가 헛헛함을 느꼈고, 그동안 차마 열어보지 못했던 엘리의 모험일지를 들춰본다. '모험을 하게 해 줘서 고마워. 그럼 이제 새로운 모험을 즐겨봐!’ 마침내 칼은 파라다이스 폭포를 탐험하는 것만이 모험이 아니라는 것을, 아내와 함께 했던 삶이 전부 모험이었음을 깨닫고 꼬마 러셀과 두 동물을 구하러 간다.
저는 책 『파는 것이 인간이다』에서 픽사 피치를 만났습니다. 책의 저자 다니엘 핑크는 자신의 책을 픽사 피치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옛날에 일부 사람들만 세일즈를 했다. 매일 그들은 물건을 팔고, 우리는 그 물건을 사며 모든 이들이 행복했다. 어느 날 모든 게 바뀌었다. 누구나 세일즈를 하게 되었고, 세일즈는 구매자 위험부담 원칙에서 판매자 위험부담 원칙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우리는 동조, 회복력, 명확성이라는 새로운 ABC 원칙을 배워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피치, 즉흥연기, 기여라는 새로운 기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마침내 우리는 세일즈가 냉혹한 시장 문화에 암울하게 순응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일즈는 우리 존재의 일부이고, 따라서 보다 더 인간다울수록 더 잘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다니엘 핑크, 파는 것이 인간이다, (청림출판, 2013), 231-232
한 가지 예시만 더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픽사 피치를 활용하면 다음과 같은 회의 발표를 상상해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옛날에 경쟁사에서 A라면을 출시하였습니다. 매일 A라면은 시장에서 1위를 유지했고, 사람들은 A라면이 맵고 얼큰한 맛이 일품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A라면에 대한 시장 조사를 하던 중 A라면을 먹고 속이 불편하다는 사람들을 꽤 만났습니다. 또한 부모님이 A라면을 매번 사서 습관처럼 A라면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 제품 중 속이 편안한 제품과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B라면과 C라면을 후보로 찾았고, 이 제품들의 마케팅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마침내 저는 우리 회사 라면 또한 시장을 보다 점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이미 갖춰진 훌륭한 제품에 적절한 마케팅을 더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아, 맞습니다. 물론 현실은 위의 예처럼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소리 내어 읽어보면 힘이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짧은 내용 안에 나름의 기승전결이 갖춰져 있어서 말에 힘이 실리는 듯합니다. 각 문장이 어떤 역할을 하기에 기승전결이 느껴지는 걸까요?
픽사 피치에 담긴 각 문장의 역할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옛날에: 핵심 과거를 소개하는 문장입니다.
매일: 핵심 과거로 인해 벌어진 일상 등을 부연 설명하는 문장입니다.
어느 날: 변화의 시작! 핵심 변화를 소개하는 문장입니다.
그래서: 핵심 변화로 인해 달라진(또는 달라질) 일상 등을 부연 설명하는 문장입니다.
그래서: 핵심 변화로 인해 달라진(또는 달라질) 일상 등을 부연 설명하는 문장입니다.
마침내: 결론 또는 달라질 미래를 설명하는 문장입니다.
각 문장의 역할만 잘 파악한다면 다양한 변주도 가능할 듯합니다. 예를 들어, 핵심 과거를 소개하는 문장을 꼭 ‘옛날에’로 시작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핵심 과거를 소개하는 데는 ‘2000년에’, ‘4월에’, ‘며칠 전에’ 등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어느 날’ 대신 ‘그런데’를 사용할 수도 있고, ‘마침내’ 대신 ‘결국’을 사용할 수도 있으며, 때에 따라서 연결하는 말을 생략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혹시 저의 바로 직전 글, 읽어보셨나요? 무겁고 우울할 수도 있는 글이어서 마음이 심란하시면 읽지 않기를 부탁드렸던 글인데요. 네 맞습니다. 「끝없는 패배에 숨은 아름다움」 이란 글입니다.
「끝없는 패배에 숨은 아름다움」을 쓸 때는 무척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반면 쓰고 나서는 무척 뿌듯했고, 힘들었던 만큼 글에 저의 혼이 조금이나마 담긴 듯했습니다. 글을 쓸 때 무척 괴롭고 힘들었던 이유는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입니다. 제 뜻을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전하기가 쉽지 않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중 ‘픽사 피치’를 알게 되었고, ‘픽사 피치’를 사용하여 글을 쓰다 보니 엉킨 실타래가 하나씩 하나씩 풀리는 듯했습니다. 물론 이후에도 쓰고 지우기를 여러 번 반복했지만 끝내 글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눈치채셨나요? 이 문단에도 픽사 피치를 활용했습니다.)
궁금하시다면 「끝없는 패배에 숨은 아름다움」 글도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글에는 다양한 변주의 픽사 피치가 틈틈이 숨어 있습니다. 아참! 물론 요즘 마음이 심란하시다면 읽지 않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 글에서 제가 전하고자 하는 건 희망이지만, 자칫 손님께 어두운 에너지를 드릴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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