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어서 오세요. 그려놓았던 삶이 아닌 원하는 삶을 꿈꾸는 우물 안 개구리 우구리입니다. 아직 2월이지만 언뜻언뜻 찾아오는 따뜻한 공기에 저는 섣부른 봄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 다만 오늘은 무척 춥네요. 밝은 태양과 고요한 나뭇가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분명 봄 같은데 평소보다 가볍게 입었다가 된통 당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날씨도 흐려지더라고요. 어휴… 저는 단 하루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고 대비하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개구리입니다. 그래도 덕분에 잠깐이나마 제 마음은 봄이었고, 다시 겨울이었기에 따스한 상쾌함을 느꼈습니다.
‘소년 문장은 있어도 소년 명필은 없다.’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저는 고등학생 때 미술 선생님께 이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말을 ‘소년 천재는 있어도 소년 대가는 없다.’는 말로 바꾸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재능을 보고 감탄할 뿐 감동하지 않습니다. 반면 뛰어난 재능은 없더라도 오랜 세월 자신을 갈고닦은 사람 또한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그 삶을 보고 감동합니다. 흔히 그런 사람들을 대가라고 부릅니다.
영역과 분야에 상관없이 대가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느껴집니다. 물론 대가들이 그 분야의 전문 지식이나 기술, 안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영역과 분야가 다른데도 그들의 삶과 태도에서 비슷한 냄새가 난달까요? 전문성에 깃든 겸손함이랄까요? 오늘은 그런 냄새가 나는 분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우종영 선생님은 나무 의사입니다. 혹시 나무 의사를 직접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만큼 제게는 생소한 직업이고, 그만큼 저는 나무에 관심이 없습니다. 나무가 다 거기서 거기인 거 같고, 학창 시절 배운 침엽수나 활엽수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게 나무는 하나의 덩어리일 뿐, 제 머릿속에는 나무 하나하나의 개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면 우종영 선생님에게 나무란 수없이 많은 개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나무란 때로는 돌보아줄 환자이자 때로는 친구이고, 심지어 때로는 스승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종영 선생님은 수십 년, 때로는 백 년이 넘는 세월을 고스란히 살아낸 나무들 삶의 흔적을 읽어내고, 그 흔적에서 삶의 지혜를 찾아냅니다. 길을 잃은 우종영 선생님은 나무 덕분에 길을 찾기도 하고, 마음을 잃은 순간에 나무 덕분에 마음을 찾으며, 나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세월을 고스란히 살아갑니다. 어느덧 그의 삶은 나무를 닮아가고, 그에게서 전문가를 넘어 대가의 냄새가 풍깁니다.
대가들의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특정 종교에서 믿는 ‘신’은 아닙니다. 대가들은 직접 부딪치고, 깨지고, 일어서는 삶 속에 무언가를 깨닫고, 이를 ‘신’이란 말을 빌어 표현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신’이란 단어 안에는 겸손함과 소명 의식 그리고 자연의 이치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우종영 선생님 또한 ‘신’ 이야기를 꺼냅니다. 신을 대신해 사람 목숨을 다루는 게 의사의 소명이라면, 자신의 소명은 신을 대신해 나무의 목숨을 다루는 것이라 말합니다. 신을 대신하여 나무의 목숨을 다룬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우종영 선생님의 답에서 책임감을 넘어선 겸손함과 깨달음이 느껴집니다.
너를 못살게 구는 벌레 하나를 잡더라도, 이제는 그게 단순히 병충해를 예방하는 게 아니라 새를 대신하는 일이라는 명제가 붙었단다. 벌레가 생긴다는 건 그 벌레를 잡아 줄 새가 주변에 없다는 얘기니까 내가 새를 대신하는 거지. 가지 하나를 떨어뜨릴 때도 마찬가지다. 산에 있었더라면 바람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떨어져 나갔을 가지들을 쳐내면서, ‘이건 바람 대신이야’하고 되뇌인단다. 같은 길이어도 마음을 달리 먹으니 모든 게 경이롭게 느껴지더구나. 그리고 억지로 너를 살리겠다는 생각 따위는 버리게 되었다. 모든 걸 자연의 순리대로, 수억 년 전부터 이어져 왔던 삶의 원칙대로 행할 따름이지.
우종영 선생님의 책을 비롯하여 여러 책을 읽다 보니 ‘시야가 좁고 얕은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안락하고 안전한 우물 안에만 살다 보니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 바쁩니다. 우물 밖의 넓은 세상을, 그리고 아주 가까운 미래조차 내다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가의 냄새를 풍기는 분들은 자기 우물만 열심히 판 분들인데도 넓고 깊은 시야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여기 수목원에 나무만 사는 게 아니잖아요? 약을 치면 나무는 살릴지 몰라도 나무가 뿌리내리고 있는 흙이 죽을 테고, 그다음엔 나무와 더불어 살던 작은 곤충도 사라질 겁니다. 그러면 자연히 둥지를 틀고 있던 새들도 떠나가겠죠. 나무가 아름다운 건 그 곁에 작은 풀이 있고, 밤새워 우는 작은 벌레가 있고, 날개 접고 쉬는 작은 새가 있어서입니다.”
대가들은 관계를 보는 듯합니다. 우종영 선생님은 나무를 이해하기 위해 나무와 관계된 것들을 봅니다. 흙, 곤충, 새, 햇빛, 바람, 나아가 주변의 다른 나무들까지. 하나의 나무를 이해하기 위해 나무를 둘러싼 것들로 눈을 넓힙니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봅니다. 그들이 관계 맺고 살아온 모습이 우종영 선생님의 머릿속에 다시 살아납니다. 과거들이 쌓여 우종영 선생님의 머릿속에서 현재가 되고, 다시 가야 할 미래가 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나무가 됩니다.
평소 흠모하는 ‘유현준 건축가’님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건축 전문가인 유현준 건축가님은 인류의 역사에도 해박하십니다. 건축이란 사람들 삶의 양식이기에 건축은 기술, 예술, 문화 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유현준 건축가님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단순히 건축물을 설계하고 짓는 것만이 건축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 삶의 모든 것이 건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렸을 적 아주 아주 오래된 세월을 고스란히 머금은 고목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꿈꿨습니다. 조금 뒤틀렸지만 듬직하고 굵은 줄기, 넓게 넓게 뻗은 가지에 딸린 수많은 잎이 딸린 큰 고목.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겨울에는 아늑한 지붕을,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고목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즉 대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나무가 내린 깊고 굵은 뿌리를 보지 못했습니다.
우종영 선생님과 유현준 선생님, 두 분에게서 대가의 냄새가 나는 건 그들이 내린 깊고 굵은 뿌리 덕분이겠지요? 그 뿌리에서 뻗어 나온 줄기와 가지, 잎들이 사람들에게 감탄과 더불어 감동을 주는 거겠지요? 우종영 선생님에게는 나무, 유현준 선생님에게는 건축. 그렇다면 우물 안 개구리 우구리에게는? 저에게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 무엇이 요즘 저의 고민입니다. 저는 교사 개구리이기는 하지만 교육을 사랑하는 거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른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요즘은 독서와 글쓰기가 재밌기는 하지만 작가가 될 정도는 아닌 거 같고…
아참, 그리고 고목의 깊고 굵은 뿌리 말고도 제가 보지 못했던, 중요한 게 또 하나 있습니다. 고목을 둘러싼 햇빛, 바람, 비, 벌레, 새, 그리고 주변의 다른 나무들. 대가의 삶을 둘러싼 수많은 존재들. 왜 대가들에게서 겸손함의 냄새가 풍기나 했더니, 어쩌면 대가들은 혼자 힘으로 살아온 게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감사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문득 떠오른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당신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