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즐거움』
어서 오세요. 우물 안 개구리 우구리입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패딩 옷들이 작별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고, 길거리 어린이들의 꺄르륵 웃음소리가 봄기운을 만나 훈훈하고 활기차게 퍼집니다. 이렇게 좋은 날, 누추하지만 아늑한 저의 우물에 들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훈훈하고 향그러운 차 한 잔 내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손님, 손님은 누구십니까? 누구… 세요?
하핫! 당황하셨나요?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질문이 늘 고팠습니다. 되돌아보면 아기 개구리 시절을 거쳐, 학생 개구리 시절을 거치고, 교사 개구리, 남편 개구리, 아빠 개구리를 거치는 동안 “너는 누구니?”라고 물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식으로서, 학생으로서, 교사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는 사람은 참 많았는데 정작 제 자신이 누구인지 물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해내느냐에 따라 보상받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고용한 사람들, 우리의 동료들, 친구들, 그리고 심지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우리가 정신을 갈고닦을 때보다는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우리를 칭찬합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게, 편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무언가를 깊이 생각할 때가 아니라 무언가를 생산할 때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요.
출처: 수잔 와이즈 바우어, 독서의 즐거움, 이옥진 옮김, (민음사, 2020), 4-5
잠깐 딴 소리를 하자면, 한 때 불교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불교의 공 사상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법문이 떠오릅니다.
한 젊은이가 신문을 배달하러 절에 들렀습니다. 그는 때마침 걸어오는 노승에게 물었습니다. “부처란 어떤 사람입니까?”
노승이 다소 날카로운 말투로 되물었습니다. “그걸 묻는 너는 누구냐?”
젊은이는 공손하게 답했습니다. “저는 신문 배달부입니다.”
“누가 너의 직업을 물었느냐? 너는 누구냐?”
젊은이는 조금 어벙벙한 표정으로 다시 답했습니다. “저는 스무 살 청년인데요.”
“누가 너의 나이를 물었느냐? 너는 누구냐?”
젊은이는 답답한 지 조금 언성을 높이며 답했습니다. “남자요!”
“누가 너의 성별을 물었느냐? 너는 누구냐?”
젊은이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말 끝을 흐리며 답했습니다. ”이순자 씨 아들이요…?”
노승은 여전히 같은 말투로 물었습니다. “누가 너의 어미를 물었느냐? 너는 누구냐?”
이제 젊은이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한참을 가만히 서있으며 미간을 찌푸렸다가 풀었다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눈썹을 들었다가 내리기를 반복하더니 이내 말문을 열었습니다. “저라고 할 게 없는데요?”
노승은 한번 씨익 웃더니 젊은이의 손에 들린 신문을 홱! 낚아채 사라졌습니다.
이 법문이 말하고자 하는 건 ‘존재란 본디 공하다. 본질적으로 나라고 고집할 게 없다.’입니다. 이 말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 의미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다.’라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나는 마음먹기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나는 자유로운 존재다.’에 가깝습니다.
그 당시 저는 ‘나는 누구일까?’란 고민을 품고 있었기에 이 법문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법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저는 허무주의에 빠져버렸습니다. 저라고 고집할 게 없으니 저에 대한 탐구를 멈춰버리고 그냥 사회가 시키는 대로 살아버린 겁니다.
만약 제가 그때 법문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사회가 그어놓은 수많은 선들을 매 순간 알아차렸을 겁니다. 나아가 제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본연의 목소리를 찾아 헤맸을 겁니다. 사회가 그려놓은 삶이 아닌 제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을 찾아갔을 겁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이 더 궁금하시다면 제가 예전에 쓴 글 ‘굳이 살아야 할까? 나답게 살기『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람은 거의 매 순간 평가하고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평가와 판단에는 필연적으로 ‘기준’이 필요합니다. 기준이 있어야 옳고 그름을, 좋고 나쁨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을 다른 말로 ‘관점’이라고 합니다.
만약 자수성가한 엄청난 부자가 아주 가난한 사람과 몸이 바뀌었다고 상상해 볼까요?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가난한 처지에 절망하여 인생을 포기할까요? 아니면 평생 가난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까요? 저는 아마 높은 확률로 그가 다시 부자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자수성가한 부자의 핵심 자산은 자신의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관점’은 세상을 보는 눈입니다. 자수성가한 부자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돈을 벌기 위해 집중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습니다. 그는 그 눈으로 수많은 선택을 할 거고, 그 선택은 결국 부자가 되는 방향으로 인생을 흘러가게 할 겁니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 핵심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관점을 바꾸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관점을 바꾸면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점을 바꿀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들었던 바로 ‘독서’입니다. 한 권의 책에는 하나의 관점(주제)이 담겨 있습니다. 훌륭한 책에는 훌륭한 저자의 관점이 녹아들어 있기 마련입니다. 제가 독서를 통해 저자의 관점을 찾아낸다면, 저는 그 관점으로 저의 삶을 돌아볼 수 있을 겁니다. 비로소 새로운 눈으로 저의 인생을 성찰할 수 있고, 나아가 한 단계 성장한 관점을 지니게 될 겁니다. 아주 조금씩, 때로는 급격하게 인생의 축이 흔들릴 겁니다.
고전 교육과 근대 교육의 차이가 무엇인지 고민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산업화 이전과 산업화 이후 교육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산업화 이전 시기, 고전 교육의 주인공은 상류층 자제였습니다. 고전 교육은 차세대 지도자, 리더를 만들기 위한 교육이었습니다. 반면 산업화 이후 시기, 근대 교육의 주인공은 반대입니다. 근대 교육은 차세대 노동자, 피고용인을 만들기 위한 교육입니다. 그제야 돈 많고 지위가 높은 상류층이 왜 학교 교육 외 사교육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는 제 인생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를 경영할 수 있는 리더가 되고 싶기에 고전적인 교육 방법에 관심이 갔습니다. 그리고 마침, 『독서의 즐거움』 책에서 그 방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고전적인 인문학 교육 기관에서 공부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맛보기’는 학습 주제에 관한 기본 지식 획득하기이다. 두 번째 ‘삼키기’는 지식의 평가를 통해서 스스로 이해하기이다. 이 지식은 타당한가? 사실인가? 이유는? 세 번째는 ‘소화하기’로, 주제를 자신만의 이해 방식 속에 접어 넣는 것이다. 여기서는 생각의 통로가 바뀌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가치가 없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맛보기, 삼키기, 소화하기는 사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평가하고 자신만의 의견을 형성하는 단계이다.
출처: 수잔 와이즈 바우어, 독서의 즐거움, 이옥진 옮김, (민음사, 2020), 23
베이컨 같은 고전적인 교사는 학습을 3학과로, 즉 세 단계로 나눈다고 합니다.
첫 단계는 문법 단계(맛보기)입니다. 문법 단계는 학습 주제에 관한 기본 지식을 획득하는 단계입니다. 대표적인 학습법으로는 암기와 반복이 있습니다. 이때 아이들은 관련 지식에 친숙해질 뿐, 아직 지식을 분석하지는 않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논리 단계(삼키기)입니다. 논리 단계는 지식을 평가하여 스스로 이해하는 단계입니다. 이때 아이들은 정보를 분석하는 기술을 배웁니다.
세 번째 단계는 수사 단계(소화하기)입니다. 수사 단계는 두 번째 단계에서 분석하고 평가한 지식에 대해 자신만의 의견을 표현하는 단계입니다. 비로소 아이는 자신만의 관점을 갖거나 보다 성장한 관점을 지니게 됩니다.
제 식대로 정리하면
첫 단계는 무작정 읽기 단계
두 번째 단계는 읽은 내용을 분석하여 작가의 관점(주제) 찾기 단계
세 번째 단계는 작가의 관점으로 나를 돌아보고 나의 생각 갖기 단계입니다.
제 생각에 고전적인 학습 단계와 우리나라 공교육의 학습 단계는 완전 반대인 듯합니다. 우리는 초등학생 아이에게 자기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라고 격려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교과서나 공책에 자기 생각을 한두 마디라도 쓰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정작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아이에게 정답을 찾으라고, 작가 또는 출제자가 원하는 답을 찾으라고 강요합니다. 지식을 습득하고 평가할 줄 알게 된 뒤에서야 자신만의 의견을 표현하게 하는 고전 교육과는 정반대의 패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초등학교에서는 고전적인 학습 방법의 첫 단계와 두 번째 단계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사 단계를 등한시한다는 건 아닙니다만 뿌리 깊은 나무가 좋은 결실을 맺는 법이니까요.
저는 초등학교 교사 개구리입니다. 국어시간에 꼭 ‘온 책 읽기’를 하곤 했습니다. 몇 주 정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한 권의 책(주로 어린이용 소설)을 반 아이들과 함께 독서하는 교육 방법입니다.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인물, 사건, 배경(소설의 3요소)을 찾아보게 하고 그중 핵심 사건을 찾아 요약하라는 과제를 내주곤 했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고전적인 학습 방법의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 과제를 무척 어려워했습니다. 인상 깊은 구절과 그 이유를 말하는 과제는 그럭저럭 쉽게 해결했지만,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며 핵심 사건을 찾는 걸 무척 어려워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각 장의 핵심 사건을 찾을 수 있도록 징검돌을 놓을 수 있을까? 늘 고민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인물의 말이나 행동이 바뀌는 부분이 있는가?’란 힌트 질문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인물이 변화하는 소설의 절정과 결말 단계에는 유용했지만 인물이 변화하지 않아 갈등이 점차 고조되는 발단, 전개, 위기 단계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독서의 즐거움』이란 책 속에 유용한 힌트 질문이 무더기로 있었습니다. 우와! 이 책을 조금만 더 빨리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각 장의 핵심을 찾는 힌트 질문 중 하나를 꼭 소개하고 싶습니다.
중심인물이나 등장인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전략을 구사하는가?
어째서 저는 이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요? 소설은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평가와 판단에 필연적으로 기준이 필요하듯, 갈등에는 필연적으로 대립하는 두 기준이 필요합니다. 즉 기준 대 기준, 관점 대 관점의 대결인 셈입니다.
가상으로 작가의 머릿속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관점(아이디어, 주제)을 작품에 담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두 인물을 설정합니다. 한 인물에게는 작가의 관점을 주고, 다른 한 명에게는 작가와 대비되는 관점을 줍니다. 작가는 두 인물의 관점이 상반되어 도드라질 수 있는 배경과 소재를 만듭니다. 작가가 두 인물을 그 배경과 소재 속에 넣습니다. 두 인물은 각자의 관점으로 다양한 사건을 만들어내고 갈등하기 시작합니다. 작가는 다양한 사건의 순서를 재배치하고 끝내 원하는 결말을 만들어 궁극적으로 자신의 관점을 작품에 녹여냅니다.
중심인물의 말과 행동에는 중심인물이 원하는 것이 숨어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에는 필연적으로 중심인물이 원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어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중심인물은 장애물을 만나고 다양한 전략을 구사합니다. 회피할 수도 있고 순응할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투쟁할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어떠한 결말에 이를 겁니다.
우와… 다시금 마음에 새겨봅니다. 각 장의 핵심을 찾는 힌트 질문!
중심인물이나 등장인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전략을 구사하는가?
책을 통해 인생을 바꾸고 싶은 분들께는 수잔 와이즈 바우어 작가님의 책 『독서의 즐거움』을 정말 정말 추천드립니다. 리더를 만드는 고전적인 학습법, 즉 고전 독서법이 매우 구체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고전 소설을 이해하려면 고전 소설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소설의 역사란 사실 인류의 생각 발달 역사이기도 합니다. 시대별 소설에는 그 시대 인류의 고민이 듬뿍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독서의 즐거움』에는 소설의 역사, 소설을 제대로 읽는 법, 마지막으로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추천 소설까지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형식으로 자서전, 역사서, 희곡, 시, 과학서의 역사와 읽는 법, 추천 책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지금도 조금씩 읽고 있는 중입니다. 마치 대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 기초 교양과목을 이수하는 느낌이랄까요? 때로는 지루한 잔소리 같기도 하고, 때로는 이해가 잘 안 돼서 정신줄을 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책을 읽든 간에 제 곁에는 『독서의 즐거움』이 늘 함께할 듯합니다. 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거 같거나 도저히 작가의 관점을 파악하지 못할 때, 저는 『독서의 즐거움』을 꺼내며 미소 지을 겁니다.
자! 이제 내 비장의 무기를 꺼낼 때가 왔군! 인생을 업그레이드할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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