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과 울림』
어서 오세요. 우물 안 개구리 우구리입니다. 날이 풀려 곧장 여름을 향해 가는 듯하더니, 서두르지 말라며 꽃샘추위가 지나갑니다. 환절기에 감기 없이 무탈하신가요? 저는 방심만 했다 하면 병치레를 하는 편입니다만 다행히 이번에는 긴장을 풀지 않은 덕에 무탈히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계절은 왜 반복될까요? 환절기를 만들어 감기 걸리게 하려는 속셈일까요? 지구는 왜 돌까요? 어지럽게. 태양은 왜 빛날까요? 눈부시게. 어떤 목적이라도? 어떤 의도라도 있는 걸까요?
김상욱 물리학자님의 책 『떨림과 울림』을 읽었습니다. 최근 유튜브에서 이런저런 강의 영상을 보다 보니 유튜브가 김상욱 물리학자님의 영상을 추천해 주더군요. 게다가 『떨림과 울림』을 읽고 있는 저를 보더니 아내가 ‘우와! 나도 읽고 싶던 책인데. 다 읽고 나면 나도 읽어볼래.’라고 반색을 하더라고요. 저는 잘 몰랐는데 김상욱 물리학자님은 꽤 인기 있는 분인가 보죠?
“김상욱에게 배웠다면 물리를 다정하게 대했을 텐데”
유시민 ⟪알쓸신잡 3⟫에서!
게다가 표지에는 제가 좋아하는 유시민 작가님의 말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물리를 다정하게’ 김상욱 물리학자님은 딱딱한 물리를 다정하게 풀어내는 능력이 있으시리라. 그런 기대를 품고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떨림과 울림』을 읽으며 제 마음속에 남은 몇 가지 물리 이야기를 전해드려 볼까 합니다.
‘우주는 팽창한다.’
이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면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드시나요? 저는 우주라는 좁은 방에 백여 명의 사람이 모여 있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오밀조밀 모여 있어야 하고, 뛰기는 커녕 돌아다니는 거 조차 자유롭지 못해 무척 답답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점점 방이 커집니다. 비로소 사람들은 각자가 필요한 만큼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숨 쉬기도 편하고, 온도도 다소 선선해집니다.
그런데 방이 계속 커집니다. 헤어지는 사람들이 생기고, 굉장한 우연이 아니고서는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마주치기 어려워집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외로워집니다. 그런데 방은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계속 커지고 커집니다. 사람도, 숨 쉴 공기도, 따뜻한 온도도, 환한 빛도 희미해집니다. 우주라는 방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희미해집니다.
과학자들은 과거에도 우주가 팽창했고, 지금도 팽창하고 있고, 앞으로도 팽창할 거라 말합니다. 따라서 우주는 점점 희미해져서 결국 언젠가는 어떤 것도 느끼기 어려운 무(無)의 세계가 될 겁니다.
한편 과학자들은 반대로도 상상을 이어갑니다. 팽창하는 우주를 되감기 해보는 겁니다. 시간을 반대로 돌리면 우주는 어떻게 될까요?
‘우주는 수축한다.’
시간을 반대로 돌리면 우주는 줄어들 겁니다. 희미했던 것들이 선명해지기 시작하다가 이내 답답해집니다. 모든 것이 한데 뭉그러지는데 그래도 우주는 계속 줄어들어 결국 하나의 점에 이를 겁니다. 빅뱅, 바로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과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했고,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는 관측 결과로 138억 년 전, 우주의 탄생 순간을 추론합니다.
입자물리란 대상을 쪼개어 부분으로 나눈 다음, 이들로부터 전체를 이해하려는 방법입니다.
쿼크를 이해하면 이들이 모인 원자핵을 이해할 수 있고, 원자핵과 전자를 이해하면 원자를 이해할 수 있고, 원자를 이해하면 DNA를 이해할 수 있고, DNA를 이해하면 단백질을 이해할 수 있고, 단백질로 이루어진 세포소기관을 이해하면 세포를 이해할 수 있고, 세포를 이해하면 인간을 이해할 수 있고, 인간을 이해하면 사회를 이해할 수 있고…
김상욱, 떨림과 울림, (동아시아, 2018), 186
즉 입자물리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 단위를 찾아내고, 그 단위를 설명하는 법칙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가장 기본 단위를 설명할 수 있으면 기본 단위의 집합인 우주 전체도 설명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예를 들어, 장난감 레고에 기본 블록이 있다고 해봅시다. 기본 블록의 모양을 이해하면 기본 블록의 변형 블록들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기본 블록의 홈과 돌기를 이해하면 블록들이 조립되고 분해되는 과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즉 기본 블록 하나를 정확히 알아내면 레고의 어떤 구조물도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 레고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최초의 입자를 알아내면 우주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 - 입자물리
반면 응집물리는 입자물리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입자에서 원자, 화학, 생명, 인간으로 층위가 높아짐에 따라 이전 층위에서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법칙이 출현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원자 각각을 들여다본들 소화불량이 무엇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분명 위장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장의 기능이나 성질을 원자로부터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 다른 예로, 공기 분자가 홀로 덩그러니 있을 때는 압력과 온도가 없습니다. 반면 공기 분자가 셀 수 없이 모이면 압력과 온도가 생겨납니다. 공기 분자들이 우리 피부에 평균적으로 가하는 충격을 압력, 그들이 가진 평균 운동에너지를 온도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많이 응집하면 새로운 현상이 탄생한다. - 응집물리
입자물리에 따르면 우주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야구공의 궤적이 투수의 손을 떠나는 순간 정해지듯이, 우주는 정해진 대로 법칙 대로 흘러갑니다. 물리학자는 법칙의 눈으로 미래를 예측합니다. 빅뱅 이후 우주는 팽창하고 있고 앞으로도 팽창할 것이며, 언젠가는 무의 세계에 이를 겁니다.
그러나 입자물리로는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습니다. 동전 열 개를 동시에 던지면 앞면이 총 몇 개 나올까요? 정확히 예측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직접 던져보았더니 앞면이 3개 나왔습니다. 자! 그럼 똑같은 방법으로 한 번 더 던지면 다시 앞면이 3개가 나올까요? 던져보았더니, 아니! 이번에는 5개가 나왔습니다. 분명 똑같은 방법으로 던졌는데요?
동전을 잡은 손모양, 손에 잡힌 동전의 배치, 던지는 방향과 세기 등 모든 초기 조건이 똑같다면 결과는 똑같이 나올 겁니다. 하지만 초기 조건이 아~~~~~~주 미세하게만 달라져도 결과가 달라지는데 이를 ‘카오스’라고 합니다. 사실상 그토록 미세한 조건까지 완벽히 똑같게 한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카오스’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던지는 동전의 개수를 열 개가 아닌 백 개, 천 개, 만 개로 늘리면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동시에 던지는 동전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앞면이 나오는 동전의 개수가 50%에 근접한다는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카오스가 통계적 예측 가능성을 보장한다는 의미입니다. 카오스가 있다면 초기 조건에 상관없이 결국 50 대 50이라는 통계적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수가 많아지면 그 자체로 새로운 현상이 만들어지는데 이런 것을 다루는 분야를 ‘통계물리’라고도 한답니다.
통계물리의 핵심은 경우의 수가 많은 것이 쉽게 일어난다는 겁니다. 수없이 많은 동전을 던졌을 때 모든 동전이 앞면이 나올 경우의 수는 딱 하나입니다. 반면 절반은 앞면, 절반은 뒷면이 나올 경우의 수는 수없이 많습니다. 따라서 경우의 수가 많은 50 대 50에 가까워지는 겁니다.
물병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렸을 때 잉크가 물병 전체에 천천히 퍼져나가는 현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잉크 한 방울이 그대로 뭉쳐있는 경우의 수보다 전체로 퍼져나가는 경우의 수가 훨씬 많기에 잉크는 물병 전체에 퍼집니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거도 마찬가지입니다. 큐브의 색이 맞춰진 상태가 ‘과거’, 큐브의 색이 흐트러진 상태가 ‘미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큐브의 색이 맞춰진 상태의 경우의 수는 딱 하나, 큐브의 색이 흐트러진 상태의 경우의 수는 수없이 많기 때문에 시간은 역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우연히 운이 좋게도 큐브의 색이 딱 맞아떨어지면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김상욱 물리학자님이 말합니다.
운이 어마어마하게 좋아 색이 저절로 맞는 경우의 수가 생길 수도 있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시간이 거꾸로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큐브를 70억 개쯤 준비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준다. 이들이 모두 무작위로 큐브를 돌렸을 때 70억 개의 큐브가 한꺼번에 색이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사실 시간이 반대 방향으로 흐를 확률은 이보다 훨씬 낮다.
김상욱, 떨림과 울림, (동아시아, 2018), 111
‘특정 경우의 수보다 많은 경우의 수가 쉽게 일어난다.’ 이를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 한답니다. 시간도, 물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도, 공중에 던져진 동전들도 모두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겁니다.
그럼 다시, 우주를 되감으면 어떻게 될까요? 시간을 다시 반대로 돌려보는 겁니다. 이제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겁니다. 시간이 반대로 흐르고, 잉크가 다시 한 방울로 모이고, 동전들이 다시 던지기 전으로 돌아갑니다. 나아가 우주 자체가 과거로 과거로 돌아갑니다. 엔트로피가 감소하고 감소하다 결국 0이 되는 상태, 단 하나의 가능성만 있는 상태에 도달하게 될 겁니다. 바로 한 점, 우주가 한 점에서 출발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금 빅뱅입니다.
입자물리든 응집물리든 우주는 법칙대로 흘러간다고 설명합니다. 그런 법칙이 왜 존재할까요? 법칙은 왜 수많은 존재를 만들고 없앴으며, 하필이면 법칙에 의문을 던지는 인간을 탄생시켰을까요? 혹시 인류가 마지막 숨겨진 법칙까지 발견해 내면 무언가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라도 하는 걸까요?
김상욱 물리학자님이 답합니다.
결국 물리학이 우주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물리는 한마디로 우주에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해 준다. 우주는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뜻하지 않은 복잡성이 운동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거기에 어떤 의도나 목적은 없다. 생명체는 정교한 분자화학기계에 불과하다. 초기에 어떤 조건이 주어졌는지는 우연이다. 하루가 24시간이거나 1년이 365일인 것은 우연이다.
(중략) 진화의 산물로 인간이 나타난 것에는 어떤 목적이 있을까? 공룡이 멸종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화에 목적이나 의미는 없다. 의미나 가치는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우주에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없다.
김상욱, 떨림과 울림, (동아시아, 2018), 251
우주에 어떤 의도나 목적은 없습니다. 다만 우연일 뿐입니다. 우연히 검은 나방과 하얀 나방이 생겨났을 뿐입니다. 다만 어두울 때는 천적의 눈에 띄지 않는 검은 나방이 살아남고, 밝을 때는 하얀 나방이 살아남을 뿐입니다. 모든 것은 우연히 일어나고, 법칙에 마땅한 일이 선택될 뿐입니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누구인가?’
과학적 세계관 아래에서 저는 우연히 존재할 뿐 어떤 의도도 목적도 없는 무의미한 존재입니다. 삶이란 애써 행복할 필요도, 애써 사랑할 필요도 없는 것. 반대로 애써 불행할 필요도, 애써 절망할 필요도 없는 것. 무척 헛헛한, 또는 가벼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허망함을 예상하기라도 했는지, 김상욱 물리학자님이 한 마디 덧붙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
김상욱, 떨림과 울림, (동아시아, 2018), 251
[상상]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봄 (출처: 네이버 사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 (출처: 위키낱말사전)
어쩌면 인간은 평생 상상 속에 살다가는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심지어 인간은 상상을 공유하고 나아가 상상을 현실로 만듭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법, 도덕, 경제, 문화를 상상으로 만들어가고,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상상의 사회를 만들고, 상상의 사회에 구속받으며 살아갑니다.
상상력, 어쩌면 인간의 정신을 쪼개고 쪼개다 보면 드러날 가장 기본 입자는 상상력이 아닐까요?
[추신]
과학적 세계관 속 찰나의 순간 살다가는 무의미한 존재, 인간.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 끝에 과학적 세계관을 무너뜨린 한 여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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