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스를 죽였을까? (1/2)

『수레바퀴 아래서』

by 책뚫기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인생을 바꾸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오늘은 헤르만 헤세 님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들려드리는 내용은 철저히 저의 관점으로 재해석된 내용이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따라서 책을 먼저 읽고 제 글을 읽어보시거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지 않으실 거 같다면 제 글로 대신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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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자그마한 마을에 태어난 뛰어난 영재


1890년 즈음,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자그마한 마을 슈바르츠발츠.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구두 수선가, 정육점 주인, 피혁공, 대장장이, 빵집 주인과 같은 수공업과 상업으로 살아갔습니다. 그중에는 지난 20여 년 동안 수공업자에서 공장주로 탈바꿈한 사람이 더러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 특히 공장주들은 자기네들끼리 어울릴 때 관료들을 인색꾼이니 서기 종놈이니 하며 무시하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기 아들은 가능하면 대학 공부를 마치고 관료가 되기를 바라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공장주처럼 부유한 사람들은 돈을 써서라도 자기 아들을 김나지움(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내고 싶어 했지만, 이들의 아들들은 정작 라틴어 학교(초등학교)도 힘에 겨워 끙끙거리며 낙제를 거듭한 끝에 겨우 졸업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슈바르츠발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가 나타났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한스 기벤라트’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늘 병들고 근심 쌓인 모습으로 살다 벌써 여러 해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중개업과 대리업을 하며 속물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 아래 어떻게 한스 기벤라트와 같은 영재가 태어났는지 의아스러워했습니다.


하여튼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한스 기벤라트의 재능을 인정했습니다. 한스는 가난한 집안에 유일하게 허락된 길, 국비장학생을 모집하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그리스어, 라틴어, 문법과 문체론, 산수와 암기 공부, 한스는 신학교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매일매일 밤 10시, 때때로 새벽까지 자기 삶을 쏟아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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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한스 기벤라트의 원동력, 우월감


아마도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기 전, 한스는 별로 존재감 없는 아이였을 겁니다. 여러 해 전에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한스의 양육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을 겁니다. 그나마 늙은 가정부 안나가 먹여주고 재워주었을 거고, 다행히 한스는 천성이 드세지 않아 고집부리는 일 없이 순종적으로 살았을 겁니다.


하지만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면서 한스는 엄청난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순종적으로 지식을 흡수하고, 그 지식을 막힘없이 출력해 내자 최우등생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마을 역사상 최초의 신학교 입학시험을 보러 가는 영예도 얻었습니다.


한스는 신학교 입학시험에 붙어야만 했습니다. 신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지면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한스는) 신학교나 김나지움이나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될 경우에 어떻게 될지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아마 치즈 가게나 사무실의 견습생으로 일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여지껏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던 바로 그 가련한 여느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귀엽고 영특한 소년 한스의 얼굴이 분노와 고뇌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한스는 ‘우월감’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우월감’은 최우수학생에게만 주어진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스는 최우수학생이어야만 했습니다. 나아가 신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해야만 했습니다.


한스는 병적으로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한스의 몸은 무척 말라갔고, 반면 그의 눈빛은 더욱 빛났습니다. 다만 한스는 두통을 느꼈고, 그 두통은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아무도 한스의 영혼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도, 학교 선생님들도, 교장 선생님도 공부에 매진하는 한스를 뿌듯하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물론 한스 스스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학교 입학시험은 예정대로 치러졌고, 한스는 예정대로 신학교 입학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신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것도 무려 2등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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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신학교가 학생을 다루는 방식


유일하게 한스의 영혼을 신경 썼던 분이 있었습니다. 구둣방 아저씨 플라이크였습니다. 그는 올곧은 기독교 신자로서 늘 영혼을 깨끗이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융통성이 없는 꼰대라고 놀릴 정도였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슈바르츠발츠를 떠나기 전, 한스는 플라이크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플라이크 아저씨는 바짝 마른 한스를 걱정했습니다. 한스가 시험 합격 후 쉬는 기간마저 숙제 더미에 깔려 지냈다는 걸 알고는 화를 내며 다그쳤습니다. 그리고 응원을 건넸습니다.


“넌 나중에 목사님이 될 거잖니. 그건 근사하면서도 힘든 일이지. 올바른 일꾼이 되기 위해선 네 또래인 대부분의 젊은 애들과는 달라야 하는 거란다. 아마 너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언젠가는 너도 영혼을 구제하고 교육하는 일꾼이 되겠지. 그렇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할게.”


플라이크 아저씨의 엄숙한 태도와 진심을 담은 기도가 한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스의 마음속에 피어오른 건 고마움이나 따뜻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답답함과 곤혹스러움이었습니다. 플라이크 아저씨 마저 몰랐을 겁니다. 한스가 신학교에 가는 건 ‘영혼을 구제하고 교육하겠다는 꿈’이 아니라 한낱 ‘우월감’ 때문이었다는 것을요.


한스는 우월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가 학생을 다루는 방식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신학교는 모든 학생 내면에 거칠고 야만적인 무질서가 숨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위험한 불꽃이기에 밟아서 꺼버려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마치 원시림의 나무를 베고, 깨끗이 치우고, 강압적으로 제어해야 하듯이 학교는 자연인으로서 학생을 깨부수고, 굴복시키고, 강압적으로 제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은 교사가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평가받고, 벌을 받았습니다. 군대 같은 기숙사에서 정해진 시간표대로 먹고, 자고, 공부했습니다. 다행히 숨 쉴 틈은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점심시간과 수업이 끝난 개인시간에 동아리를 만들거나, 산책을 하거나,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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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천재 외톨이 둘의 만남


기숙사 친구들은 삼삼오오 우정을 나누었지만, 한스는 외톨이였습니다. 일찍이 어머니를 잃었던 한스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친구의 감정을 받아주는 것도 서툴렀기 때문이었습니다. 한스가 할 줄 알았던 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거뿐이었습니다. 한스는 늘 최우수학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주변 친구들은 그런 한스를 존경하는 눈치였습니다.


또 한 명의 외톨이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헤르만 하일너였습니다. 헤르만 하일너는 정서가 풍부하여 곧잘 시를 썼고, 입학날부터 문예 애호가이자 시인이라는 소문이 떠돌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예술적인 성향만큼 괴짜 같고 감정이 들쑥날쑥하여 마음에 맞는 친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헤르만 하일너는 매일 외출 시간에 홀로 숲길을 거닐었고, 어느 날 홀로 산책길에 나선 한스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모든 과목을 흡수하는 ‘인풋 천재’ 한스 기벤라트와 자기 나름대로의 사고와 언어를 가지고 있었던 ‘아웃풋 천재’ 헤르만 하일너는 그날로 친구가 됩니다.


한스 기벤라트는 헤르만 하일너의 ‘우월함’에 반하게 됩니다. 헤르만 하일너는 어지간히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매우 박식하여 어떤 질문에도 훌륭하게 대답할 줄 알았습니다. 문학 작품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았고, 자신의 감수성을 담은 시를 창작하여 낭송할 줄 알았습니다. 헤르만 하일너의 세계에는 스스로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고, 반면 의미 없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거부했습니다.


헤르만 하일너는 ‘인풋 천재’ 한스 기벤라트에게 쓸데없는 것에 목숨을 걸지 말라고 조롱하며 다그치곤 했습니다. 또한 헤르만 하일너는 감정이 들쑥날쑥하여 친구들과 싸움을 피하지 않고, 선생님에게 반항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스는 도저히 자신의 세계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하일너에게 점점 더 끌렸습니다.


어느 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헤르만 하일너는 큰 사고를 치게 됩니다. 그 사고로 하일너에게는 무거운 금고형이 내려졌습니다. 여전히 최우수학생이 되고 싶었던 한스는 우정과 평판 사이에 갈등했습니다. 친구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면 하일너를 찾아가 위로해야 했지만, 그랬다가는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스는 하일너를 버리고 학업을 선택했습니다. 한스의 마음에도, 하일너의 마음에도 큰 상처가 새겨진 채 둘은 겨울 방학을 맞이했습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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