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2편에서 이어집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입니다. 더불어 불교 저술가 마쓰바라 다이도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네가 정녕 큰 지혜에는 이르겠으나 큰 어리석음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라.”
어리석음의 반대가 지혜입니다. 지혜에 이르면 당연히 어리석음에서 멀어지는 게 이치인데, 어리석음에 이르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스승의 마음이라니.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변상욱 님이 이야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두 수도승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훌륭한 스승을 찾아 나섰습니다. 두 수도승은 소문을 나침반 삼아 훌륭하다는 사람을 찾아갔지만 매번 실망했습니다. 소문은 모두 과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승이 자빠지고 엎어지면서 허겁지겁 산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두 수도승은 채신머리없는 그 노승을 보고 혀를 찼습니다. 그때 노승이 두 수도승을 발견하고는 곧장 외쳤습니다.
“여보시오, 거기 떠내려가는 배춧잎 좀 잡아주시오.”
두 수도승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그렇게나 찾고 싶었던 스승을 비로소 찾았기 때문입니다.
겨우 배춧잎 한 장을 잡기 위해 허겁지겁 산을 내려오는 노승이 참 어리석어 보입니다. 배춧잎 한 장 정도야 포기하면 그만이니까요. 그런데 노승은 심지어 자빠지고 엎어지면서도 배춧잎 한 장을 따라갑니다.
배춧잎은 내가 마련한 저녁 반찬거리가 아니라 내게로 온 소중한 하나의 존재이다. 나의 필요에 의해 따지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는 그런 존재로 노승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변상욱,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멀리깊이, 2021), 121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사람들은 ‘어리석음’을 무시, 조롱, 혹은 교육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저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수없이 많은 어리석음을 가르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제 뜻대로 바뀌지 않는 어리석음을 볼 때면 속으로 짜증을 내기도, 답답함에 가슴을 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그 자체로 존엄한 것이라고 교사인 제 입으로 떠들지 않았던가요? 심지어 불교 이데올로기에서는 작은 배춧잎 하나도 그 자체로 존엄하게 여기는데, 하물며 사람인데……
스즈키 선사는 1904년생으로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반전운동 그룹의 정신적 지주였고, 전쟁 후에는 미국에 불법을 전하러 떠났습니다. 영어를 할 줄도 모르면서 사전 한 권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갈 때 그의 나이는 57세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즈키 순류 선사(스님)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요? 어떻게 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참선을 하면 뭐가 좋나요? 참선을 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참선을 한 번 하면 얼마나 해야 하나요? 참선을 오래 하셨을 텐데 어떤 경지에 이르셨나요?”
그러면 스즈키 선사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그만 좀 물어보고 제발 좀 앉으라.”
우리는 ‘노력한 만큼 얻는다’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늘 자기 밖에 있는 걸 원합니다. 돈, 음식, 집, 인정, 명예, 지위 등 우리는 늘 우리 밖에 있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때로는 차지하기 위해, 때로는 뺏기 위해 애씁니다. 끝없이 노력하고 경쟁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몸과 마음의 목소리에 소홀합니다. 게다가 우리 몸이 가는데 마음이 없고, 마음이 가는데 몸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하나로 만드는 참선에서조차 이익을 원합니다. 참선을 한 만큼 그에 맞는 보상을 기대합니다.
변상욱 님은 앉음은 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가 선이라고 설명합니다. 몸이 앉으면 마음도 앉는 것이고 몸과 마음이 앉았다면 그 자체로 이미 진리를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라 말하며 스즈키 선사의 말을 덧붙입니다.
“ 우리는 조동종 신도도 아니고 선불교 수행자도 아닙니다. 불교는 이렇고 저렇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할 바를 온몸 온 마음으로 하고 있는 것이 불교입니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진정한 불교도입니다.”
변상욱,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멀리깊이, 2021), 187
변상욱 님은 시중에 나와있는 자기 계발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이들 책은 대개 목표를 분명하게 세워라, 열정적으로 실천하라, 포기하지 마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설득한다. 시간 아껴 쓰고 효율은 높이되 효율을 확 높이는 방법은 역시 인맥이라는 걸 강조한다. 그걸 습관처럼 만들어 살라는 것이다.
변상욱,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멀리깊이, 2021), 58
그런데 목표가 있어도 방황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목표가 있는데 목표를 달성할 경로와 시스템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집안일과 가족 부양 외에 다른 곳에서는 자기 계발과 자아실현이 허용되지 않았던 여성, 일생 밭농사와 부업으로 자식을 가르치고 도시로 내보낸 시골의 부모들, 살아남기 위해 하루 종일 뛰어야 하는 플랫폼 노동자에게 성공의 철학은 멀다. 이들의 희생으로 마련된 부와 가치를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소수가 독과점한다면 이 체제는 정의로운가?
변상욱,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 (멀리깊이, 2021), 61
누구나 자기 계발서처럼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 그 메시지가 감추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 우리는 자기 계발을 위해 어떤 이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요?
변상욱 님은 멘털 갑이 되려면 ‘긍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변상욱 님이 말하는 ‘긍정’이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걸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면서 적응해 나가는 태도입니다.
따라서 변상욱 님이 말하는 긍정의 첫 단계는 어려운 상황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희망이 사라졌을 때, 불행이 가득할 때, 답답함에 눈물이 차오를 때, 또는 낯선 곳에 놓였을 때, 좀처럼 적응하지 못할 때. 우선 그 상황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상황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오래도록 며칠이고 걸어보는 겁니다. 낯설고 어지러운 나의 주변을 계속 계속 배회하는 겁니다. 낯설고 어지러운 길에서 결국 나를 만나게 될 테고, 언젠가는 모든 것이 익숙해지는 순간이 올 겁니다.
현실을 부정하여 떨어져 있던 나의 몸과 마음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마침내 하나가 됩니다. 나의 몸과 마음을 떨어뜨려놓았던 건 어쩌면 이데올로기였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몸, 나의 처지가 이데올로기에 꼭 맞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이제 나의 몸과 마음이 한 곳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