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장은 끝났습니다 (2/2)

『비즈니스의 미래』

by 책뚫기

(1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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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즈니스가 해결해야 할 새로운 문제


‘물질적 빈곤’이 이미 해결된 문제라면 더 이상 우리 인류가 해결할 문제는 없는 걸까요?


야마구치 슈 님은 다음 도표를 소개합니다.


새 폴더 1 - 0.jpg 야마구치 슈, ⟪비즈니스의 미래⟫, 김윤경 옮김, 흐름출판, 2022, p.117


가로축은 ‘문제의 보편성’입니다. 보편성이 높다는 것은 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의 수가 많다는 것, 즉 ‘시장이 크다’는 뜻입니다. 세로축은 ‘문제의 난이도’입니다. 난이도가 높다는 것은 해결하는 자원이 많이 든다는 것, 즉 ‘투자 비용이 많이 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시장이 크고 투자 비용이 적게 드는 A 영역에 뛰어듭니다. 인간이라면 일상생활에 필요한 필수 소비재, 즉 에너지·식품·가전 등이 A 영역에 해당합니다. 반면 기업들은 시장이 작고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 C 영역에는 손도 대지 않습니다. 기술 개발 비용은 많이 드는데 실제로 사는 사람은 적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희귀병을 치료하는 약 개발 등이 C 영역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기업들이 해결하려고 뛰어드는 문제의 영역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새 폴더 1 - 1.jpg 야마구치 슈, ⟪비즈니스의 미래⟫, 김윤경 옮김, 흐름출판, 2022, p.118


야마구치 슈 님은 위 곡선을 ‘경제 합리성 한계곡선’이라고 말합니다. 해당 곡선 위쪽으로 가려고 하면 투자 비용이 높아져 어렵고, 해당 곡선 왼쪽으로 가려고 하면 수요가 적어 투자를 회수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인류가 주로 해결해 왔던 사회 문제는 ‘물질적 빈곤’입니다. 이는 ‘경제 합리성 한계곡선’ 안쪽에 해당하는 문제들입니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로 해결가능한 문제들이었습니다. 정부가 내버려 두어도 기업들이 돈을 벌기 위해 알아서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경제 합리성 한계곡선’ 바깥쪽에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더 이상 해결할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그동안 소외되었던 많은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야마구치 슈 님은 ‘물질적 빈곤’을 어느 정도 해결한 선진국이라면 비로소 소외된 문제들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 원리 위에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성장과 돈만 외치는 세상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원리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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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원 사회로 나아가려면


야마구치 슈 님은 우리 사회가 고속 성장기를 거쳐 고원 사회에 도달할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고원 사회란 영원히 순환하는 현재를 풍요롭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회를 말합니다. 이는 물질적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희생한다’는 기존 사회와는 반대입니다. 오히려 매일매일 주어지는 지금을 충분히 누리는 사회입니다.


기존 사회를 고원 사회로 전환하려면 몇 가지가 필요하다는데 그중 두 가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5.1. 보편적 기본 소득 도입


보편적 기본 소득이란 문화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을 모든 국민에게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따라서 기본 소득을 받는 국민들은 생존을 위해 일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고원 사회에 안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경제 합리성 한계곡선’의 바깥쪽에 있습니다. 따라서 해결하기도 어렵고, 해결한다고 해도 큰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문제들을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고원 사회의 문제에 뛰어들게 하려면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살아갈 수 있다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보편적 기본 소득입니다.


나라가 국민에게 보편적 기본 소득을 주기 위해서는 당연히 세금을 올려야 합니다. 세금을 많이 걷는 북유럽 국가들 중에는 세금의 국민부담률이 60%가 넘는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40%가 되지 않습니다. 세금을 많이 걷으면 불행할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국민부담률이 높을수록 국민의 행복도가 높은 경향성을 보입니다.


세금의 국민부담률이 높아지면 국민들의 가치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돈을 위해 악착같이 일해야 한다’는 가치관입니다. 만약 연 2억 이상의 소득에 70%의 소득세를, 연 5억 이상의 소득에 90%의 소득세를 징수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돈을 위해 악착같이 일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야’라는 가치관이 싹틀 수 있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비로소 돈에서 해방되어 ‘자아실현’이란 가치를 추구할 수 있을 겁니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충동,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여 해결하고 싶은 충동 등 다양한 충동이 살아날 겁니다. 돈보다 활동 자체가 주는 즐거움에 빠지는 사람과 기업이 늘어나고, 자연스레 ‘경제 합리성 한계곡선’ 바깥쪽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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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예술과 증여를 아는 개인


야마구치 슈 님은 사회를 바꾸는 데 있어 자신의 외부에 있는 시스템을 바꾸려는 시도보다 시스템 내부에 있는 자신을 바꾸려는 시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인류는 늘 보다 나은 시스템, 보다 나은 이데올로기를 찾아 헤맸습니다. 여기에는 시스템이 ‘주’이고 인간이 ‘종’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즉 좋은 시스템을 만들면 인간은 저절로 바뀐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어떤 시스템을 이용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바뀌지 않으면, 인간은 시스템을 악용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까’하는 물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사고와 행동 양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하는 물음입니다. 즉 인간이 ‘주’이고 시스템이 ‘종’이어야 합니다. ‘주’인 인간들의 가치관이 모여 ‘종’인 새로운 시스템이 갖춰져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영원히 순환하는 현재를 풍요롭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고원 사회를 꿈꾼다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행동을 실천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 모두 예술가가 되어야 합니다. 현대 예술가들은 그들 나름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문제’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는 충동을 느낍니다. 비즈니스가 ‘사회 문제의 발견과 해결’이라 정의한다면, 비즈니스는 본질적으로 예술가들이 하는 일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충동’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성취를, 어떤 사람은 조화로움을, 어떤 사람은 화합을, 어떤 사람은 정의를 추구합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충동에서 발견한 문제들을 다른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게 표현 또는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각자 자신의 충동에서 시작한 일이니 활동 그 자체가 즐거움이고 행복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을 잘 이해하고, 각자가 원하는 삶을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모두가 예술가인 세상에서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개성이 되고, 개성은 특이함 아니라 특별함이 됩니다.


둘째, 증여 감각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번 돈은 자신이 자유롭게 사용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선조에게 증여받은 감각을 잃어버린 사람을 ‘자만에 빠진 철부지’라고 명명했습니다.


우리 존재는 ‘사자(死者)’와 ‘자연’에서 증여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번 돈은 결코 자신의 힘으로만 번 돈이 아닙니다. 증여받은 돈이고 또 미래 세대에게 증여할 돈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책임 있는 소비’를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번 돈을 마약을 사는데 쓴다면 우리가 사는 만큼 마약에 가치가 붙습니다. 그 가치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 전해집니다. 우리가 번 돈을 책을 사는데 쓴다면 우리가 사는 만큼 책에 가치가 붙습니다. 그 가치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 전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거 세대의 소비가 쌓인 결과이고, 지금 우리가 쓰는 돈은 미래 세대가 사는 세상입니다.


고원 사회로 나아가려면 ‘책임 있는 소비’를 실천해야 합니다. 야마구치 슈 님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응원하고 싶은 상대에게 돈을 지불하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소비는 곧 누군가의 충동을 응원하는 일이자 응원하는 가치를 미래 세대에 증여하는 길이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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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리는 고원 사회로 넘어갈 수 있을까?


야마구치 슈 님이 꿈꾸는 고원 사회, 우리는 고원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다소 비관적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그 욕망은 늘 상대적입니다. 그런 인간의 욕망이 반영된 이데올로기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때문에 사람들이 욕망의 노예가 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욕망의 노예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태어난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 자체에 재미와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많습니다. 혼자 잘 살기보다 다 함께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남보다 잘 나가고 싶은 사람, 남보다 더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은 듯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굳건히 자리 잡았고, 덕분에 이만큼의 경제 성장과 기술 혁신을 이루어낸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의 이런 생각 또한 자본주의에 절여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사람들과 문화에 너무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변상욱 님의 책 ⟪두 사람이 걷는 법에 대하여⟫에서 한 인류학자의 연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부족의 삶에 대해 연구를 하던 중 부족 아이들을 모아놓고 게임 하나를 제안했습니다. 멀찌감치 과일 바구니를 매달아 놓고 아이들에게 경주를 요청한 것입니다. 인류학자는 아이들이 경쟁적으로 달려갈 거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아이들은 손을 잡고 함께 달리거나 달리다가 친구를 기다렸습니다. 당황한 인류학자가 아이들에게 왜 손을 잡고 달리느냐고 물었고, 아이들은 되물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아이들이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이 좋을 수가 있는 거죠?”


예전에 아프리카 부족의 삶을 취재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부족인지, 어떤 TV 프로그램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딱 하나의 장면이 머리에 박혀 있습니다. 부족 남자들이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숲으로 향했습니다. 나무와 풀이 우거진 탓에 남자들은 한 줄로 줄지어 이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참 이동하던 중 한 사람이 말도 없이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이를 본 다른 남자들은 말없이 멈추어 서더니 그 사람이 다 쉴 때까지 기다려주었습니다. 그들 표현으로는 각자 자신의 신을 만나는 시간이 있고, 신을 만나는 시간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다시 일어서자 부족 남자들은 다시 먹거리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같은 일은 여러 번 반복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재촉하거나 짜증내거나 화내는 사람 없이 평온했습니다.


매 순간을 인내와 노력으로 채우며 미래의 부귀영화를 꿈꾸었던 저의 삶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동시에 제가 경험한 인간 사회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그런 세상이 올 지도 모릅니다. 이만큼 성장했으면 이제 분배에 대한 고민도 시작하는 대한민국. 아이 하나하나 자신의 고유한 충동을 알아차리고, 그 충동을 실현하도록 응원하는 대한민국. 서로의 충동이 다르고 다름이 개성이라 인정하며 각자의 개성이 실현되기를 응원하는 대한민국. 실패하더라도 먹을 걱정, 씻을 걱정, 따뜻하게 잘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대한민국. 경쟁과 성장이 아니라 공감과 응원이 가득하길.


그래서 실천합니다. 제게 온 모든 것이 증여받은 것임에 감사하고, 책임 있는 소비로 좋은 증여를 물려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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