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방문』
어서 오세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인생을 바꾸는 ‘우물 밖 청개구리 ‘우구리입니다.
트라우마란 과거에 공포스러운 사건을 경험한 이후로 그와 비슷한 사건을 맞이할 때마다 심리적 불안을 느끼는 심리 현상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릴 때 개에 물린 사건 때문에 개만 보면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트라우마가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지니고 살아가는 듯합니다. 지금은 심하지 않지만 저 또한 중·고등학교 때 경험한 학교 폭력, 입시 폭력 때문에 작은 트라우마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워질까요? 지인의 아들 A군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렸을 때 개에게 덮쳐지는 사고를 경험했습니다. 그 개는 대형견은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밀어 넘어뜨리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다행히 개에 물리지는 않았지만 A군은 이후 길을 가다가도 개만 보면 몸이 얼어붙었습니다.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 A군은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어느새 A군의 키는 170cm를 넘었고, 이제 웬만한 개는 A군을 덮쳐 넘어뜨릴 수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 A군도 개를 보고 얼어붙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개가 A군을 향해 발랄하게 다가왔습니다. A군은 여전히 개를 싫어했던 터라 다가오는 개를 향해 발을 툭 찼습니다. 개는 A군의 발에 툭 차이고는 놀라 후다닥 도망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A군은 더는 개를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지인의 아들 A군의 이야기를 듣고 ‘트라우마보다 강해질 때 비로소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게 아직도 학교 폭력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제 체격이 왜소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도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이 무리 지어 모여있는 모습을 보면 몸이 살짝 경직됩니다. 과거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여전히 저의 생존을 위협합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왜소하기에 언제든 그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저를 괴롭힙니다.
장일호 님은 ⟨시사IN⟩ 기자입니다. 그녀는 10년 넘게 기자로 활동하면서 소외된 이들을 취재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 온 듯합니다.
동시에 장일호 님 또한 우리 사회 속 소외된 이였습니다. 다섯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당시 스물일곱 살의 어머니는 그녀와 세 살 남동생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가난’이었습니다.
장일호 님은 초등학생 때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성폭력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어머니는 딸의 성폭력 사건을 덮었습니다.
장일호 님은 ‘여성’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늘 여성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했고, 그 결과 그녀는 무슨 일이 생기면 뭐든지 자기가 조심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성인이 되어 연애할 때는 성폭력이 트라우마로 따라붙었습니다. 여성으로서 ‘결혼’하라는 압박은 덤이었습니다. 그녀는 여러 이별 끝에 좋은 짝을 만나 결혼했지만, 결혼 후에는 ‘출산’ 압박이 따라붙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수없이 많은 트라우마가 따라붙었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책과 사람을 통해 조금씩 강한 사람이 되었던 듯합니다. 그녀는 점차 강해졌고, 트라우마와 마주할 용기 그리고 싸울 힘을 얻었습니다. 더불어 ‘암’을 얻었습니다.
한부모, 가난, 성폭력, 여성, 결혼, 출산, 암. ⟪슬픔의 방문⟫은 장일호 님의 삶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문장은 간결하고, 글밥도 많지 않은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덤덤하게 간결한 문장, 때로는 개조식 같은 문장의 나열. 어쩌면 친절하지 못하다고 불평할 수 있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긴 시간이 흐르고 있고, 글로는 담을 수 없는 감정이 전해졌습니다.
장일호 님은 몇 권의 책을 인용하며 자기 삶을 풀어냅니다. 장일호 님이 인용한 책들은 대부분 소외된 이의 눈을 가지려 노력하며 소외된 이의 삶을 말하는 책이었습니다.
반면 저는 보편의 눈으로 보편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소외된 경험을 가슴에 묻어둔 채 살아가고 있기에 ⟪슬픔의 방문⟫을 읽는 동안 자꾸만 슬픔이 제 마음을 방문했습니다. 때때로 아프고, 때때로 미안하고, 때때로 우울한.
⟪슬픔의 방문⟫은 제게 무언가 책임을 지라고 말합니다. 동시에 지금의 저를 꼬집기도 합니다.
원하지 않았지만 어느덧 나도 이 사회에 책임이 있는 ‘어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른의 고민이라면 책임감에서 출발해야 하는 법이다.
장일호, ⟪슬픔의 방문⟫, 낮은산, 2022, p.180
“10명 중에 1명은 장애인이다. (……) 1들이 말하는 세상은 야만적이었다. 그러나 내가 자라온 세상은 한 번도 1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그들의 가혹한 세상살이를 알면 알수록 나는 내가 1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했다. 그 차이가 있는 한 저들에게 일어난 일은 결코 나에게로 넘어오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안전한 9였다.”
홍은전, ⟪노란들판의 꿈⟫, 봄날의책, 2016
저는 10명 중에 9명입니다. 학창 시절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는데, 어쩌다 보니 그 현장을 선택하여 교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늘 트라우마 없는 교실을 만드리라 다짐합니다. 하지만 갈수록 어려워지는 교육 환경 속에서 자꾸 세상 탓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제 마음에 울리는 메아리 ‘이 정도면 됐어.’ 왜냐하면 저는 10명 중에 9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면 됐어. 나는 이제 1이 아니잖아. 나는 안전한 9가 되었잖아.’
소외를 경험했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했고, 책 그리고 동료와 함께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장일호 님. 그녀의 꿈은 무엇일까요?
나는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원했다. 고통으로 부서진 자리마다 열리는 가능성을 책 속에서 찾았다. 죽고, 아프고, 다치고, 미친 사람들이 즐비한 책 사이를 헤매며 내 삶의 마디들을 만들어 갔다.
장일호, ⟪슬픔의 방문⟫, 낮은산, 2022, p.10
누군가 목숨 걸고 투쟁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전해야 한다. 이 ‘당연한’ 문장이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람이 죽어, 몸으로 쌓아 올린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장일호, ⟪슬픔의 방문⟫, 낮은산, 2022, p.161
‘누군가 목숨 걸고 투쟁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전해야 한다. 하지만 이 ‘당연한’ 문장을 위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들의 몸으로 이 ‘당연한’ 문장은 쌓아 올려지고 있다. 여전히 이 ‘당연한’ 문장에는 마침표가 찍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죽은 이들의 몸으로 쌓아 올려진 세상 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잘 들리지 않습니다.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자세히 발밑을 내려다보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내려다보면 분명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죽은 이들의 몸 위에 쌓아 올려져 있습니다. 멀미가 납니다. 무언가 속에서 올라옵니다. 그래서 황급히 다시 시선을 올립니다. 최대한 먼 곳을 바라봅니다. 고마움. 미안함. 그러나 왠지 그 말이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강한 사람은 아닙니다.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의 고난, 노력을 배신하지 않았던(?) 각종 시험 결과. 저의 트라우마는 사소한 것이나, 여전히 움찔거리는 제 몸은 사소한 트라우마보다 여전히 약합니다.
반면 장일호 님은 제가 상상하지 못할 엄청난 괴로움과 외로움을 겪었을 겁니다. 사소하지 않은 트라우마가 덕지덕지 그녀의 삶을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앞으로 걸어갑니다. 트라우마가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합니다.
그녀의 삶에 비추어 보니 저의 삶은 굉장히 유복합니다. 제가 잘 나서 이 정도의 삶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둥지였던 어머니와 아버지, 경쟁 사회에서 교사라는 타이틀을 쥘 수 있을만한 머리, 저의 지질함과 고집을 덮어주고 도리어 빛나게 해주는 아내. 제 힘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결과적으로 저의 삶을 대부분 만들었습니다.
양창모는 왕진을 통해 환자의 자리에 자신을 놓아 보는 경험을 한다. (중략)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일상이 있다는 걸 헤아렸다. 그 과정에서 ‘증상의 뿌리’가 사회임을 마주한다. 그는 ‘내가 아프다’는 것이 곧 ‘우리가 아프다’는 일임을 알게 된다. 전문가에게 부족한 것이 “자기 지식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지식을 바라보는 태도”임을 깨닫는다.
장일호, ⟪슬픔의 방문⟫, 낮은산, 2022, p.238
‘고집스럽고 인정받고 싶던’ 이십 대를 지나, ‘나라고 고집할 게 있을까?’라는 삼십 대 초반의 질문을 지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는 겸손함이 비로소 찾아오는 듯합니다. 허무하다는 건 아닙니다. 제게 주어진 모든 게 제가 이룬 것이 아닌 듯하다는, 아직은 미약한 느낌입니다.
앞으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나 역시 1인분의 책임이 있는,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진짜’ 어른이 됐다. 빈부 격차가 가져온 기회의 차이는 단시간에, 단 하나의 정책으로 해소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어른인 내가, 또 우리가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어린 사람에게 ‘운’이 되어 주는 일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아이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의 삶에 ‘얼굴을 내밀어 주는’ 의지할 만한 어른의 존재다.” 너무 빨리 어른인 척해야 했던 스무 해 전 나 같은 사람에게 나는 ‘곁’이 되어 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 방법을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찾으면 좋겠다.
장일호, ⟪슬픔의 방문⟫, 낮은산, 2022, p.54
수많은 이들이 저의 ‘곁’이 되어주어 저는 평온한 마음을 지닌 어른이 되었습니다. 종종 제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힘이 될 수 있었던 건 ‘저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받은 증여’ 때문입니다. 1인분의 책임이 있는 어른, 의지할 만한 존재, 어린 사람의 곁. 이제는 제가 증여받은 것을 그대로 증여하는 삶을 살아야 할 때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