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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통 Jul 05. 2023

눈 맞은 이야기

- 단골의 익숙함과 허전함

왜 이리 요즘 단골에 꽂힌 건지, 분명 책에서 본 건 확실한데 어떤 책인지는 조금 헷갈린다. 기억나면 독후감이라도 쓰겠지. 


종종 단골 가게들을 서로 이야기하는 순간이 오면, 내가 좋아하는 단골 바에 관해 이야기하곤 한다. 원래는 카페인데, 나는 바 자리에서 술만 먹어서 바라고 소개하는데 이걸 사장님께서 좋아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곳을 갈 때마다 ‘옮기시면 미리 언질이라도 해줘요’라고 말을 하는데, 이곳은 내가 다녔던 대학교 근처에 있어, 내가 지금도 대학교 근방에 출몰하게 하는 큰 일조를 하는 곳이다. 학교 쪽에 들러, 혼자서(궁상맞게) 추억을 얼핏 훑어보고 후딱 지나가는 게 나쁜 건 아니고, 사장님과 학생 때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내가 이 장소에서 눈 맞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눈 맞은 ‘장소’가 아닌가 싶다. 비워진 순간을 참 많이 채워주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런 단골들이 뭐가 있나 생각해보다가, 눈 맞았던 경험 중 가장 강렬했던 경험을 간단히 얘기해보려고 한다.


2017년, 군대에 복무 중일 때였다. 특이하게 당시 대대장은 캠핑에 병사들을 한 번씩 데려갔었고, 막내 탈출을 한 지 얼마 안 됐던 여름이었다. 대대장과 대대장의 아들과 중대장, 선임, 나, 후임 5명의 캠핑은 생각보다는 재밌었고, 멋대로 사용된 내 외박에 대한 불만도 조금 줄어 가는 시간이었다.


저녁 준비를 위해 7살쯤 됐던 대대장의 아들은 잠시 혼자서 배드민턴을 하며 놀게 하고, 고기를 굽기 위한 불을 피우고 저녁 먹을 준비를 마쳐, 나는 대대장의 아들을 찾으러 갔다. 배드민턴을 혼자 하던 아이가 왜 나무 위를 보고 있을까, 셔틀콕이 걸쳐 있었다. 당연히 내가 꺼내주고,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일단 소리가 먼저 들렸다.



땅에는 라켓이 떨어져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왼눈 가를 양손 모아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왜 딱 소리가 났을까, 라켓이 정확히 왼쪽 안경알을 맞췄으니까. 얼마나 정확했는지 살갗이 찢어지긴커녕 피도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욕은 못하고 “잠시만 혼자 있겠습니다”하고 혼자서서 눈가를 움켜쥔 손을 펼쳤는데, 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한 것이 아니라, 입김을 분 창문을 바라본 것처럼 뿌옜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진다고, 일 벌이고 싶지 않은 어른들의 말을 듣고 술을 먹고 취하고 다음 날 아침, 종종 뿌예지는 눈을 뒤로하고 외박을 즐기다가 찜찜하게 들어갔는데, 월요일에도 계속 왼눈이 안 보여, 의무대에 가니 안에 눈 안에 피가 맺혀 있단다.

움직이면 눈이 망가질 거라고, 누워있으면 괜찮아진다고 바로 입실(원)하라고 했다. 이주일을 냅다 눕게 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이주일 중 삼 일 차까지 부대 어른들의 사과를 받기도 하고, 집과 연락을 하며 울먹이는 가족의 소리를 들으며 정말로 ‘분노’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이 주간 누워있으면서 꽤 중요한 단골과 눈을 맞추는 순간이 있었다.


누워있기는 만은 심심해서 동기나 후임에게 책을 가져다 달라하고 욕을 먹기도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고분고분 들어주는 시기였고, 큰 병원을 들락날락하며 문득 생각했다. 눈, 시각을 잃으면 어떨까 하고, 책, 영화(상) 그리고 풍경을 보는 것을 사랑하는 내가 이것들을 잃는 것을 상상하니 정말 처참한 시간을 보낼 것 같았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다 딱 멈췄긴 했다. 어쨌든 눈이 나아지고 있었으니까.     


내가 단골로 가는 곳들도 있지만, 나에게 가장 단골인 가치는 결국 ‘보는 것’이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것들을 보는 것, 나만의 단골손님을 맞이하는데 알아는 ‘봐야’ 하니까. 신체검사 재검사 요청이 올 정도로 떨어지는 내 시력이기에 내가 가진 오감 중 가장 애틋한 것 같기도 하다. 노안이 오면 덜 애틋해질지도 모르지만.


그러니까 매번 보는 단골손님인 줄도 모르고, 존재감 없다고 무시했던 격이었다. 없어지면 그 무엇보다 허전할 텐데. 단골을 상상하면 장소와 사람을 먼저 떠올렸는데 흔히 말하는 오감이나 신체만큼 나와 밀접한 단골이 있을까 했다. 사라진 부위에 대해 환상통을 느낀다고 하지만, 감각이 없으면 이도 불가능하다. 


몸을 막 다루는 동시에 게을러 운동도 하지 않다 보니, 종종 몸이 어그러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하반기에 가장 단골이 되어야 할 곳은 술집들이 아니라, 지인의 권유로 인해 신청해버린 헬스장일 것이다. 단골들을 더 잘 맞이해보고자 노력을 하고자 한다. 물론 아직 헬스장은 익숙해지지 않는 공간이지만.


이런 나를 보고는 편하게 살아서 배부른 소리 한다는 지인들도 종종 있는데, 맞다. 배부른 소리. 배가 너무나도 부풀어 올라서 독기도 빼야 하고, 더 노력해야 배고픔도 이해하고 부족함도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는 것’들이 편안한 단골이지만 내가 ‘못 본 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단골일 수도 있으니까.

  

좀 어색하고 허전할 순 있어도, 각자의 익숙함을 생각해보고 싶다.


돌고 돌아 눈은 결국 완치 판정을 받긴 했는데, 이미 낮은 왼눈의 시력이 0.1 떨어졌다. 이게 완치 맞나, 안경 빼면 –10 이상이니. 사실 큰 차이는 없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에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말해보자면,

안경을 오랜만에 맞추게 돼서다. 매번 바꿀 때마다 어지럽고, 어지럽게 비싸다. 그래도 보임에 감사해야지.


렌즈값 덕분에 통장이 허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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