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통 Jul 03. 2023

꼭 하이텐션일 필요는 없으니까, 수줍게라도

- <꼭대기의 수줍음>을 읽고



비만한 노인들이 주름 접힌 곳을 펴서 정성껏 닦는다. 이토록 구체적인 시간의 도감을 나는 빠짐없이 나라고 느낀다. 죽은 적도 없이 여러번 다시 태어나 살고 있는 나라고. 동물적인 인간의, 인간적인 동물의, 목욕탕에서. - 39P.


잎사귀의 가장자리가 한입 베어 문 사과처럼 동그랗게 오려져 있었다. 자연이 스스로 오린 것들 중에 멋지지 않은 것은 드물다. 61P.


내가 놀라운 빛에 대해 말해보려 할 때마다 관두게 되었던 이유도 이런 까닭이다. 나 혼자만의 감상이 끼어들어 이야기가 망가져 가는 것을 감지했거나 상대방이 흥미를 가져 주지 않으니 혼자서만 딴 세계를 헤맬 때, 그 소외감이 싫었다. 184P.


#꼭대기의수줍음 #유계영 #에세이


작년 무더위가 찾아오기 전 읽었는데 뭔가 독후감을 남기기 어려워서 쭉 내버려 뒀다. 그 이후로 계속 쳐다보고 다시 펼쳐보고 했지만, 쓰는 게 어려웠다. 수줍어서 그랬나, 꼴에. 시만큼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많았다. 겁나 궁상맞긴 한데 책을 읽고나서, 따릉이 타다가 햇빛에 비친 나무들을 보며 저게 꼭대기의 수줍임인가 하면서 지나다니기도 했고.


사람을 나무나 숲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생각해보니 가지에 비유하는 건 거의 없던 것 같기도 하다. 나무들이 모여있는 숲도 엔간하면 서로 자리를 비켜준다는데, 지하철 9호선 급행을 한 번만 타도 정말 수줍음 따위는 개나 줘버린 순간들을 느끼게 된다. 아직 꼭대기에 이르지 못해서 그런 건가.


유계영이 바라봤던 사람들과 기억들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꼭대기를 향해, 하이텐션을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눅눅히 가라앉는 이야기들도 있고, 조금은 냉소적이기까지 한데, 딱 적당한 표현, 적당한 거리를 둔 것이, 좋았다.


친구가 힘들다고 했을 때, 이 책을 읽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나름 수줍게 보내기도 했는데(상기 문장 중 하나), 보고 나서 거리 두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정답.하고 톡했다가 T소리를 듣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조금은 가라앉아보아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서 보냈는데. 항상 높은 텐션을 유지하는 건 피곤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문예창작학에 대해 ‘불편한 쇠꼬챙이’를 소중히 아낀게 문제였다는 생각이 재밌기도 했는데, 학부 때 복수전공을 하면서 그런 데를 왜 복수전공하냐는 소리를 듣던 기억이 났다. 그냥 듣고 싶었던 건데. 오히려 쇠꼬챙이가 꽂히니 적어도 넋두리를 짜낼 구멍은 생겼으니까 좋은거 아닌가, 곪을 때도 있어서 학점은 망쳐버렸지만. 물론 핑계다.


사회, 언어, 사람에 대해서 예민한 사람이 작가들 같다고 종종 말하는데, 내가 이 예민한 사람들을 좋아해서 그런가, 예민한 걸 수줍음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귀엽지 않을까 싶다. 조심스러워서, 수줍게나마 배려하고, 조금 멀리서 바라볼 줄도 알고. 귀여운게 세상을 구한다면, 귀여움의 덕목 중 하나가 수줍음이었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표지의 색이 밝지 않아서 다 읽고 마음에 더 와닿는데, 수줍음이란 단어가 주는 밝음이 꼭대기가 춥고 좀 어두워도 혼자가 아니란 걸 느끼게 해준 것 같다. 혼자 있으면 수줍어질 일은 없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어린이를 바라보는 어른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