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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이 Oct 11. 2018

그렇게 책을 읽는다

문토 일상회복글쓰기 첫번째 모임

문화살롱 문토 모임 중 수요일 저녁에 모이는 일상회복글쓰기 첫번째 모임을 가졌다.

오랜만에 각잡고(?) 쓰는 시간이었고, 내 집중력은 30분이 한계라는 걸 느끼기도 했다.

날것 그대로의 글을 쓰고 읽으면서 서로 공감하는 좋은 분위기였다.

다음 모임 때는 어떤 이야기를 쓸까, 어떤 이야기를 들을까 기대된다.



무심코 책을 샀다.


무심- 말 그대로 아무 생각없이 몇번의 터치로 오만 원 가량의 책을 주문했다. 택배가 도착해서 뜯는 재미도 잠시, 네 권의 책을 책장에 꽂으려고 가져갔지만 어디도 둘 곳이 없었다. 세로로 꽂힌 책 위에 가로로 몇 권, 그 앞에 또 가로로 몇 권. 모든 칸은 포화상태였고, 5단 책장 5줄은 이미 만원이었다. 세 달 전 분야별로 정리해둔 것도 별 소용이 없었다. 대중없이 아무 곳에나 책을 구겨넣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대단하다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수많은 책 지름 사진 중 실제로 읽은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오피스텔 한켠에 쌓인 사백 권의 책은 남들에게 보여주기식의 자랑은 될 수 있어도 내게는 큰 짐이다. 가끔 책장을 정리하다보면 무려 8년 전에 산 책이 읽히지도 않고 책등만 바랜 채 주인을 기다리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을 모두 읽기 전에는 다시는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프로지름러에게 그런 말이 가당키나 한가. 한달에 한번은 인터넷에서 책을 주문하고, 이주에 한번은 도서관에 들른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은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르는 것이다.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책은 점점 쌓여가고 마음의 부담도 그만큼 자라고, 나중에는 적의까지 든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재밌는 책이 많을까?


적군을 처치하고자 놈들 중 몇을 선별해서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들고가보기도 한다. 책을 한웅큼 집어 중고서점에 넘기고 얼마 안되는 돈을 받고나면, 차라리 돈을 건물 옥상에서 하늘로 뿌리거나 유니세프에 기부해야 했나 후회한다. 읽지도 않을 책을 단순히 보관만 했다는 죄로 책 구매액과 판매액의 차액만큼 벌금형을 선고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인생을 낭비한 자, 유죄. 읽지도 않은 책을 가지고만 있었던 자, 유죄. 땅땅땅.


아주, 나태지옥이 따로 없구만.


수많은 죄책감을 지우려면 책을 읽어야만 한다. 책 마지막 장을 넘기고 간단한 독후감을 남긴다. 취향대로 들인 책들이니 처음에는 재밌다. 하지만 끝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드는 순간, 재미로 시작한 독서와 독후감은 방학 마지막 날에서야 마치는 방학숙제가 되어버린다.


읽기와 쓰기를 너무 혼자만의 숙제로 남겨서일까라는 의문에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매번 다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방구석이 아닌 길거리로 나들이를 나가니 즐거웠다. 오랜만에 직장인이 아닌 사람의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사람 만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새로운 경험은 내 시간을 풍부하게 만들어주었다. 여러 사람이 만나 서로를 흔들며 생각의 거품이 풍성하게 자랐다.


그리고 거품은 언젠가 꺼지기 마련이지. 매달 세 권의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니, 가뜩이나 책 읽는 속도가 느린 나는 정작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손도 못 댔다. 함께 읽은 책이 모두 좋았지만 내 책을 읽고 싶었던 처음의 목표와는 다르게 새 책만 주구장창 사는 것 아닌가! 게다가 책은 책을 부른다고, 모임에서 온갖 좋은 책을 소개받으니 장바구니는 무거워져만 갔다. 오호, 통재라.


부담감이 점점 커지니 모임을 그만 나가야 하나 싶다가도, 1년 넘게 봐와 이제는 동지애가 느껴지는 이들이어서 쉽게 발걸음을 끊기 힘들다. 세상에 재밌는 게 그렇게 많다는데, 이렇게 살다가는 책만 읽다가 죽게 생겼다. 책 읽고 글 쓰고 대화하는 삶. 어라, 쓰고 보니 상당히 마음에 드는 인생이다.


어느 소설에서, 작가는 죽음 앞에서 너무나 글이 쓰고 싶어서 세상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죽어가면서 책장에 꽂힌 책을 그리워하고 세상에 나선 수많은 책을 아쉬워할 것이다. 못다 읽은 책을 읽어달라며 구천을 떠돌지 않을까. 존재가 소멸될 때까지 도서관 지박령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야, 이 도서관에는 150년째 일하는 사서가 있대, 쑥덕쑥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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