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헌이 Nov 15. 2018

고시원 안 다채로운 세계 - 소설 <고시원 기담>

고시담 기담 - 전건우 (캐비넷, 2018)

소설집 <밤의 이야기꾼들>의 작가 전건우의 2018년 신작 소설이다. <밤의 이야기꾼들>은 리디북스에서 할인 이벤트만 하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고, 정액제 서비스인 리디셀렉트에 이 책이 론칭되자 출간된 지 4년이 됐음에도 판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전자책 카페에서도 재미있는 소설로 심심치 않게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보니, 전건우 작가는 국내 장르문학계에서- 특히 전자책 시장에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것 같다.


전작이 공포와 스릴러의 기조를 담았는데, 이번 신작 <고시원 기담>은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렵다. 고시원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장소에 공포, 추리, 히어로물, 무협, 판타지, 느와르 등 장르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영역의 이야기를 한 데 버무렸기 때문이다.


책은 아주 좁고 지저분한 고문 고시원이에서 서로 일면식도 없던 이들의 이야기다. 이곳에는 옆방에 살다가 사라진 남자를 찾는 추리소설 마니아, 99번 면접에서 떨어져 마지막 100번째 면접을 준비하는 무도인, 사고가 생겨 갑작스레 초능력이 생긴 외국인 노동자,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채무자, 고등학생 킬러(?)가 산다. 그리고 소름끼치는 기운을 풍기는 정체모를 이도 산다. 그들은 서로의 삶만을 살다가 고시원 아래층에서 느껴지는 어둠의 기운 때문에 한데 모이게 된다.


작품의 배경을 고시원으로 고른 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고시원은 거주빈끼리 거주민끼리 거리적으로는 상당히 가깝게 사는 곳이다. 하지만 서로 살기 바빠 소설에서처럼 서로 이름은 커녕 얼굴도 모르면서 살기 일쑤다. 이런 공간적 특수서 때문에 각 호실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 서로 다른 장르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전건우 작가다. 각 단편이 재미 측면에서 괜찮은 편이다. 따로국밥처럼 흐르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한 줄기로 모인다. 많은 소설에서 차용하는 장치임에도 <고시원 기담>이 더 특별하게 다가어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 장르의 혼합이다. 매 장마다 인물과 더불어 장르가 바뀌어버리니, 장르소설에서 정말 중요한 캐릭터 구축이 아주 잘 이루어진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 인물을 머리속에 잘 못 그리는데 <고시원 기담>의 인물들의 이미지가 머리에 쏙 박혔다.


동시에 장르의 혼합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작가는 전작의 큰 성공을 뒤로 하고 공포소설 작가라는 타이틀을 땠다. 공포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도 이렇게 쓸 수 있다! 고 선언하는 셈이다. 작가는 자신의 장르적 역량을 최대한 욱여넣었겠지만, 아쉽게도 어떤 한편도 강한 펀치를 날리지 못한다. 뭘 보여주려고 하다가 뚝 끊기고, 어느 정도는 재밌는데 딱 거기까지이다.


소설 마지막에 가서는 모든 인물이 모여 팀업을 이루게 되는데, 단편들을 아우르는 중요한 부분분임에도 매우 아쉬운 마무리를 보여준다. '어벤저스'를 기대했는데 '저스티스 리그'가 나온 느낌이다(미안해요 DC). 각자의 이야기에서는 생동감 있게 느껴지던 인물들이 마지막에는 서로의 능력만 발휘하느라 기능적으로 소비된 느낌이 든다.


<밤의 이야기꾼들>도 마무리가 아쉬웠다고 기록을 남겼는데 재밌게도 <고시원 기담>도 마찬가지다. 좋은 인물, 좋은 이야기를 조금만 더 잘 꿰었다면 평이 바뀌었을텐데, 아쉽다. 이 마음 그대로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만화로 만나는 고전문학 - 에세이 <퇴근길에 카프카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