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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이 Jan 24. 2019

2019. 1. 24. 목요일 잡담

일상의 반복과 단조로움, 그리고 책까지 짬뽕 뒤죽박죽

요즘 꽤나 단조로운 생활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나름 열심히 일하고 저녁 늦게서야 퇴근, 바로 운동을 한다. 집에 와서 씻고 30분 정도 책을 읽다가 슥 잠이 든다. 다시 아침이 찾아오고 일어나서 회사로 향한다. 밖에 나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집돌이고 취미도 많지 않으며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적기에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생활의 단조로움은 작년 여름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부터 더욱 심해졌다. 탄수화물을 적게 먹으니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지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엄두를 못 낸다. 그러니 여태까지 하던 행동만 계속 반복할 뿐이다.


단조롭다고 해서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행동과 식사 루틴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체중도 착실히 줄여가고 있고 책도 어찌 됐든 읽어내고 있다 - 물론 작년 하반기부터 독후감은 완전히 멸망 수준 -. 지금까지 나름대로 잘해왔기 때문에 루틴을 비트는 일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부서 후배가 이번 달 초에 내가 다니는 크로스핏 박스에 등록했으나 두 번 나가고는 깜깜무소식이다. 매번 바쁘다, 친구와 술 약속이 있다, 내일 오후 근무다, 라는 이야기로 출석도장을 못 찍고 있다. 물론 운동이 최우선 순위는 아니지만, 당장 3월에 여자 친구와 발리에 놀러 가 멋진 몸을 보여준다는 - 적어도 군살은 걷어내 슬림 바디를 자랑하겠다는 다짐은 어디로 간 것인가!


루틴이 아무리 지겹고 남들이 미련하다고 수근수근대도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절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건강과 다이어트라는 최대의 목표 때문에 심심하고 지루하고 외롭더라도 꾹 참고 버텨야 한다.


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루틴을 유지하는 게 굳은 내 의지 때문인지, 아니면 나를 감싼 방어기제인지 헷갈린다. 새로운 일은 시작하거나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게 두렵고 무서워서 ‘나는 인생 최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내하며 한 가지에 집중하고 있어’라는 변명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도, 아빠도, 친구들도, 살이 어느 정도 빠졌으니 외형이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라고 권한다. 그때마다 준비가 덜 됐다고 말한다. 관계에서 상처를 주고받는 일보다, 혼자 루틴을 계에에에에속 반복해가며 혼자 외로워지는 게 낫다. 상처의 크기가 얼만큼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슬픔을 곱씹는 건 나 혼자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그런데… 나보다 잘하면 질투하고 나보다 못하면 깔보는, 요상한 기질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취미가 아예 엇갈리면 만나는 데 무슨 낙이 있을까도 싶고… 나는 변태 싸이코인 게 분명해.


반복에 반복이 계속되니 한번 우울함에 빠지고 나서 그 기운이 계속 되먹임 돼 헤어날 수 없었다. 덕분에 책도 잘 못 읽었는데 나름 가벼운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으니 조금 상쾌해졌다. 하정우의 글도 얼마 남지 않아 다음 읽을 책을 골라보았다. 밝고 블링블링한 친구를 선택하고 싶었지만 내 감정을 대변하듯이 <로미오와 줄리엣>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딸려 나왔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은 어디서 보고 읽은 내용이지만 책 그대로를 읽는 건 거의 처음이다. 희극을 읽으려고 했으나 어쩌다 보니 비극이 손에 잡혔다. 베르테르는, 몇 년 전 연애는커녕 여자와 눈도 잘 못 마주치는 나로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책이었지만 근래에 느낀 복잡한 감정이 있었으니 꽤나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다음은 시집. 박준 시인의 대표 시집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를 두 달 넘게 읽으면서, 대중적이고 잘 팔리는 시집이어도 나는 이해를 못하는구나, 좌절감을 느꼈더랬다. 그래도 읽어가야겠지. 이 시집의 마지막에 발문을 쓴 시인이 얼마 전 작고하신 허수경 시인이다. 나는 무식해서 시인의 별세 소식을 듣기 전까지 알지 못한 분이었지만, 여기서, 또 신형철 평론가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도 그 이름을 봤을 때 문득 슬퍼졌다. 슬픔 감정으로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으로는 매월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열다섯 권이 나오는 동안 겨우 세 권 읽은 릿터 15호와, 그래도 꾸준히 읽는 뉴 필로소퍼 5호, 민음사에서 새로 펴낸 비평 무크지 크릿터도 2월까지 함께 한다. 감정의 여유가 되면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도 펴볼 생각이다.


어쩌다 보니 다섯 권 중 네 권이 문학이다. 내 독서의 기초가 문학이기는 하지만 매년 초는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과학 등 마음이 더 동하는 분야가 많았는데. 책도 결국 루틴에 빠지게 된 건 아닐까. 이게 오늘 잡담의 마지막 줄인데 유독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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